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을 읽고

이해규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회원 / 기사승인 : 2020-12-24 00: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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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겨울의 추위가 정점으로 치닫고 모든 생명이 움츠러드는 계절이다. 두꺼운 외투와 목도리와 귀마개, 장갑으로 무장하고 모진 날씨에도 기꺼이 밖으로 나와 걷는 사람들을 보면 실내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될 것이다. 그렇지만 따스한 곳으로 숨고 싶은 본능을 거부하고 이 한파와 맞서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숭고한 행위가 아닐까? 

 

요즘 태화강변이나 솔마루길에서 가족단위로 젊은 세대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걷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울산이라는 도시는 걷기에는 최적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영남알프스에서 발원한 태화강이 시내를 가로지르면서 큰 강물을 만들어내며 동해로 흘러간다. 태화강을 따라 자전거도로와 나란히 걸을 수 있도록 보행로도 잘 닦여있어서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차를 타고 조금만 집을 벗어나면 지천으로 걷기 좋은 곳이 수두룩하다. 동해안 해파랑길 4코스~8코스도 지나고 있고, 솔마루길, 선암호수공원, 명덕저수지, 송정에 위치한 박상진 호수공원, 반나절 만에 올라갈 수 있는 고만고만한 산들도 많아서 가볍게 걷기에는 더없이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걷기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은 걷기가 가져오는 매력을 잘 알기에 걷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필자도 걷기를 너무 좋아해서 하루라도 한두 시간씩 걷지 않으면 머리가 찌뿌둥하고 마음도 답답함을 느낄 정도이다. 코로나로 인해서 일상생활의 답답함을 벗어버리고 밖을 나가 잠시라도 걸어보자. 기분도 맑아지고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 

 

오늘 걷기를 애정하는 필자가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걷기 예찬>이다. 이 책은 몸을 이용한 운동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걷기'를 다각도에서 예찬한 산문집으로 2002년도 우리나라에 번역된 이래 지금까지 31쇄를 찍어내고 있고 걷기와 관련된 수많은 책 중에서 고전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저자의 이름은 ‘다비드 르 브르통’이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걷기에 대한 철학적 사색을 섬세한 필체로 써내려간 이 책은 걷기와 관계된 다양한 책의 내용을 문장 속에서 인용하고 있다. '걷기'를 통해 본 독서에세이로 보아도 좋고 한 주제를 가지고 깊게 파고든 산문집으로 불러도 좋다. 걷기가 뭐 그렇게 큰 대수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걷기에 대한 의미 부여에 경탄을 하게 된다. 글은 자상하고 나긋하게, 속삭이듯이, 잠언의 문체로, 유려하게 풀어내고 있다. 가볍게 읽기에는 내용이 너무 진중해서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데 번역자의 매끄러운 번역으로 가독성은 충분히 있어서 집중하다 보면 책속으로 빠져드는 맛이 있다. 각주로 달아놓은 수많은 참고도서의 양에 놀라고 ‘걷기’라는 한 가지 주제를 파고드는 철학적 상상력과 관찰력은 감탄을 자아낸다. 

 

이 책은 ‘걷는다’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동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찾는 것이라는 인상적인 글귀로 시작한다.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발로 걸어가는 인간은 모든 감각기관의 모공을 활짝 열어주는 능동적 형식의 명상으로 빠져든다.'(p9) 또한 저자의 사물에 대한 세밀한 표현력은 범상치 않음을 확인하게 된다. ‘길이란 인간들이 지나가든 말든 아무런 관심이 없는 식물과 광물의 세계 한복판에 남겨진 흙의 상처다. 너무나도 짧은 한순간 무수한 발자국들이 찍혀진 땅바닥은 인류의 징표다. 자동차의 타이어는 마음가짐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길에서 마주치는 것은 무엇이나 다 납작하게 깔아뭉개버리는 공격성을 발휘한다.’(p119), ‘그러나 발이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것은 모래나 자잘한 돌이 약간 섞인 바닥을 싸각싸각 소리 내어 걸으며 마치 앙탄자 위를 걷듯 약간씩 발이 빠지는 맛을 음미하는 것이다. 발은 탄력이 없는 모진 바닥을 밟고 튀어 오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해가 날 때 약간의 먼지, 비가 왔을 때 약간의 흙탕은 삶의 질 일부를 이룬다.’(p121), ‘우리들의 발에는 뿌리가 없다. 발은 움직이라고 생긴 것이다.’(p123)

 

저자는 우리가 운동으로서 생각하는 걷기가 생각보다 많은 본질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발견하고 있다. ‘걷기는 시간과 공간을 새로운 환희로 바꿔놓는 고즈넉한 방법이다. 그것은 오직 순간의 떨림 속에만 있는 내면의 광맥에 닿음으로써 잠정적으로 자신의 전 재산을 포기하는 행위다. 걷기는 어떤 정신상태, 세계 앞에서의 겸손, 현대의 기술과 이동수단에 대한 무관심, 사물에 대한 상대성의 감각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근본적인 것에 대한 관심, 서두르지 않고 시간을 즐기는 센스를 새롭게 해준다.’(p25)

 

저자는 실용적인 관점에서 걷기의 효용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생각하는 훈련에는 더 할 수 없이 좋은 순간임을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우리는 소크라테스와 그 제자들이 보여준 수많은 강의들이 많은 산책과 길 가다가 만난 사람들과의 우연한 대화, 그리고 발걸음의 리듬에 맞추어 거닐면서 전개된 논리들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 인간의 몸의 척도에 알맞은 세계는 곧 생각하는 즐거움이 이처럼 시간과 발걸음의 투명함 속에서 만들어지는 세계다.’(p94), ‘니체는 <환희의 지혜(GaiSavoir)>의 한 아포리즘에서 이렇게 잘라 말한다. ‘나는 손만 가지고 쓰는 것이 아니다. 내 발도 항상 한몫을 하고 싶어한다. 때로는 들판을 건너질러서, 때로는 종이 위에서 발은 자유롭고 견실한 그의 역할을 당당히 해낸다.’ <차라투스트라>에서 그는 이렇게 적는다. ‘심오한 영감의 상태. 그것은 모든 것이 오랫동안 걷는 길 위에서 떠올랐다. 극간의 육체적 탄력과 충만’.’(p95)

 

언제부터 ‘걷기’를 인간의 일상적인 행동이 아닌 특별하게 시간을 내어서 해야 하는 행동이 되었을까? 오히려 ‘걷기’보다 ‘타기’에 더 익숙해져 있는 인간이 아닌가 싶다. 그나마 요즘 들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쉬고만 있는 몸을 위해 일부러 움직여 주는 건강을 위한 운동에 관심이 많아져, ‘걷기’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듯하다. 도시인들에게 걷는다는 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일부러 마음을 먹어야만 우리는 걸을 수 있다. 그것도 자가용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중간 중간, 혹은 점심 먹으러 움직이는 것이 고작이다. 오죽했으면 만보계라는 것이 나왔을까. 하루에 만보도 걷지 못하는 우리에게 <걷기 예찬>은 과하다. 그러나 저자는 걷는다는 것은 ‘가장 인간적인 몸짓’이라고 말한다. 육체적 에너지보다 신경에너지를 더 많이 소모하는 도시인들에게 과연 인간의 두 다리, 두 발이 어떤 의미인지 묻는다. 하루 30분이라도 좋다. 점심을 먹고 용기 내어 한번 걸어 보자. 매일매일 조금씩 걷다 보면 습관이 되고 나중에는 나도 모르게 운동화 끈을 쪼여 매고 밖으로 나가게 될 것이다.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가. 그러면 집밖으로 나가보자. 먼 곳이 아니라도 동네 한 바퀴라도 좋다. 그곳을 거닐게 되면 자동차로 보이지 않은 이웃을 만나게 되고 진정한 나를 만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해규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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