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신부

황은혜 기억과 기록 회원 / 기사승인 : 2020-12-09 00: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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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

 

태평양의 아름다운 섬 하와이는 1900년 초 한국 이민자들에게는 지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당시 하와이로 이주한 사람들은 몇 년 동안 고생해 많은 돈을 벌면 고국에 돌아가 집도 사고, 논도 사려는 희망에 찬 사람들이었지만 농장주들에게는 그저 중국인 노동자들을 대체할 수 있는 값싼 노동력에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땡볕의 농장에서 온종일 일만 하며 인간다운 삶과는 거리가 먼 일상을 보내야 했습니다.


초기 이민자 7000명 중 부녀자는 500여 명, 심지어 결혼할 수 있는 처녀는 10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당시에는 누구든 타국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금기시했기 때문에 나이든 홀아비들이 매우 많았다고 합니다. 집도 가족도 없었던 이들은 농장의 고된 노동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술과 노름을 일삼았고, 아편에 중독되기도 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체적인 일의 능률이 떨어졌고 탈선하는 한국인 노동자들도 늘어났습니다. 이에 농장주들은 앞장서서 ‘사진결혼’을 주선합니다. 


사진결혼은 미국에 노동 이민 간 남성과 한국에 사는 여성이 사진을 교환한 뒤 부부의 연을 맺는 것으로 일제 초기에 존재했던 결혼 방식입니다. 하와이 정부는 결혼하려고 하와이에 오는 여성들의 입국을 법적으로 허가했는데 이렇게 하와이로 건너온 ‘사진 신부’의 수는 1910~1920년대에 약 600~1000명으로 추산됩니다. 이들 대부분은 가난에서 벗어나겠다는 경제적 이유와 교육에 대한 열망으로 결혼이민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신랑은 사진보다 훨씬 늙어있었고, 교육도 자유도 누릴 여유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고된 농장 일과 잔뜩 쌓인 세탁물만 눈앞에 가득했습니다.


여기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네 권의 책이 있습니다. 첫 번째 책 <하와이 사진신부 천연희의 이야기>는 결혼이민으로 하와이에 정착한 천연희 씨가 직접 남긴 24개의 구술 녹음테이프와 7권의 노트에 남긴 기록에 근거한 책입니다. 그녀의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해있던 하와이 한인사회의 동향과 독립운동 단체의 활동, 개인적인 정치적 의견 등이 자세하게 담겨있습니다. 그동안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던 ‘사진 신부’의 이야기를 보다 현실적으로 마주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책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얼굴이 동그란 세 명의 여인이 찍힌 사진 한 장으로부터 시작된 소설입니다. 작가가 참고한 도서목록에는 앞서 언급한 <하와이 사진 신부 천연희의 이야기>가 있는데 여기에 실린 많은 사진 중 하나가 모티브가 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한 시대를 살아 낸 선대 여성들의 연대와 사랑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세 번째 책 <사진신부 진이>는 부모로부터 받은 ‘섭섭이’라는 이름 대신 ‘진이’라는 이름으로 살고자 했던 조선인 여성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진 신부’라는 특수한 상황과 그 배경이 되는 한국의 역사를 섬세하게 다루고 있지만 놀랍게도 이 책은 미국인 작가가 쓴 이야기입니다. 

 


네 번째 책 <시선으로부터>의 주인공이자 모든 기억의 출발점인 ‘심시선’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도 바로 하와이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20세기의 기억들을 꺼내어 각자의 삶의 방식으로 새롭게 해석해내는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황은혜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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