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지역 정체성을 꿈꾸며

원영미 기억과기록 회원 / 기사승인 : 2020-10-21 00: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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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

가을이 성큼 우리 곁으로 왔으나, 이 멋진 계절을 마음껏 즐길 수 없어 안타까운 시간입니다. ‘집콕’의 시간이 계속되다 보니, 잡념만 늘어납니다. 넋 놓고 있다 보면 생각은 강바람에 하늘거리는 억새 마냥 방향 없이 왔다갔다 합니다. 그러다 바람에 실려 오는 이런저런 소식들을 듣습니다.


울산에 학공원이 만들어진다는군요. 울산시는 학공원을 만들기 위한 준비단계로 울산대공원 동물원에 학을 한 쌍 들여와 케이지 사육을 할 예정이랍니다. 한 지역신문에서 시 관계자는 “사실 고래가 울산을 상징하는 동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고래는 장생포가 있는 남구를 상징하는 동물이고, 우리 시로서는 학이 특징물(캐릭터)”이라며 경북 구미시의 조류생태환경연구소 측과 협의해 학 한 쌍을 들여와 부화를 통해 개체 수를 계속 늘려나갈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습니다(울산제일일보, 2020.7.30. 기사). 또 중구청은 ‘울산동백’과 ‘학’을 중구의 브랜드로 개발하려고 노력 중이랍니다. 과거 울산의 다른 이름이 학성이고, 그 중심이 중구에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이쯤에서 학이 울산의 정체성 또는 중구의 브랜드로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고려의 역사를 기록한 <고려사>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울주는 본래 굴아화촌으로, 신라 파사왕 때 신라가 차지하여 현(縣)을 두었다. 경덕왕 때 이름을 하곡(하서로도 적는다)으로 고치고, 임관군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 초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현종 9년(1018)에 방어사를 두었다(경덕왕 때 우화현을 우풍현으로, 율포현을 동진현으로 고치고, 모두 합속(合屬)시켰는데, 태조 때 이 고을 사람 박윤웅이 큰 공적을 세웠으므로, 하곡·동진·우풍 등의 현을 병합하여 흥례부(興禮府)를 두었다. 뒤에 공화현으로 강등하였다가 다시 지울주사(知蔚州事)로 고쳤다. 신라말에 학이 날아와 울었다고 해서 신학성(神鶴城)이라 불렀다고 한다. 계변성이라고도 하며, 개지변이라고도 하고, 화성군(火城郡)이라고도 한다). 다른 이름은 학성(성종 때 정하였다)이다. 속현(屬縣)이 2개이다.”


다소 긴 설명이지만 요약하면 그 내용은 간단합니다. 고려시대 울주로 불린 울산은 신라 파사왕 때 완전히 신라 중앙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됐고, 태조가 고려를 건국할 때 울산 지역의 세력가인 박윤웅이 태조에 협조해 울산의 행정단위가 ‘부’로 승격했다가 곧 다시 ‘현’으로 강등됐다는 내용입니다. 울산이 학성으로도 불리는 것은 학이 내려와 울었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학이 날아와 울었다고 해서 신학성이라 불렀다’는 것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학은 신선이 타고 다니는, 장수(長壽)를 상징하는 새로 그림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지요. 고려청자 운학문매병에는 구름과 학이 반복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구름은 흘러가는 찰나의 순간을, 학은 영원의 시간을 상징하니, 온 세계를 청자 하나에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학의 우리말 이름은 두루미입니다. 시베리아, 만주, 일본 홋카이도 등지에서 주로 번식하는 두루미는 겨울을 나기 위해 남쪽으로 오는데 우리나라로는 철원, 인천, 파주 지역으로 내려온다고 합니다. 신라말과 현재 울산의 기후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큰 차이가 없다면 울산에서 두루미를 보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어떤 이유에서 두루미가 날아왔다면 울산에서만 산 사람들은 난생처음으로 학을 본 것이었겠지요. 


특별한 경험은 신기하게 여겨지며, 거기에 의미가 덧붙여지기 마련입니다. 신라말 울산지역에 박윤웅으로 대표되는 호족이 있었고, 국가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박윤웅 세력은 고려라는 새로운 권력에 협력했지요. 이런 상상은 어떨까요? 학이 날아올 즈음 때마침 울산의 세력가로 떠오르는 강력한 인물(박윤웅)이 있었고, 신선이 타고 다니는 신비한 학의 상징성이 그에게 덧붙여져 신격화된 것은 아닐까! 그래서 박윤웅이 계변천신이라 불린 것은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은 ‘울산의 정체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라는 데에 닿습니다. 울산의 정체성은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과거 학과 관련한 특별한 경험이 현재 울산 그리고 울산 사람들과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새장 안에 있는 학과 새장 밖의 우리는 어떻게 만나서 하나가 될까! 새장 안에서 사육되는 학처럼 지역 정체성이 과거에 갇혀 버리면 어쩌지! 발 없는 생각은 끝도 없이 흘러갑니다. 


원영미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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