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늦은 가지산 눈꽃 산행

노진경 시민 시민기자 / 기사승인 : 2021-01-06 00: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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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산행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해가 왔다. 연도가 바뀌는 것은 밤이 지나고 낮이 오듯,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듯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매년 낯설게 느껴진다. 특히 2020년이 끝나는 것이 유별나게 낯설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과 자연재해 때문이리라. 마스크를 쓰고 밖을 나서는 것이 당연해졌고, 사람이 많은 곳은 피하게 됐으며, 많은 것들이 멈춰졌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자연 앞에 한없이 작고 미미한 존재이며, 세상은 예측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두 가지 사실을 온 마음과 몸으로 익히며 한없이 겸허해졌던 한 해였다. 


지난주, 비와 추위 소식이 같이 들려왔다. 분명 산정은 하얀 상고대 소식이 들려올 터였다. 가슴이 콩닥거리고 엉덩이가 들썩인다. 매년 이맘때를 고대하던 팔랑거리는 마음과 다르게 머리는 멈춤을 외쳤다. 급증하는 확진자 수와 그로 인해 고통받는 많은 이들이 떠올랐다. 다른 많은 산객도 산을 찾고 싶을 터다. 하나의 숫자라도 군중에 보탬 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눈이 오고 며칠이 지난 평일 오전, 벗과 함께 조심히 나선다. 한파 소식으로 아이젠과 방한용품을 단단히 챙긴다. 보온병에 팔팔 끓인 뜨거운 물도 챙긴다. 벗은 병원 소아과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다. 요즘 병원에 환자가 급감해 재정이 어려워졌다고 했다. 권유에 의한 무급휴가로 쉼의 시간을 갖고 있던 터였다. 올해는 부쩍 그이 말고도 주변에 생계가 어려워진 이들의 소식을 반복해 접하고 있다. 

 

▲ 운문령에서 산행을 시작하며

 

▲ 운문령 초입에서 산행을 시작하며

 

▲ 길가에 쌓인 눈더미

추위와 평일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산객들의 발걸음을 뜸하게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늦은 오전 운문령에 도착하니 도로가에 주차된 차들이 스무 대가량 보인다. 예상한 것보다 많은 숫자다. 역시 머리로 하는 예상은 이렇게 힘이 없다. 출발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시계를 보다가, 오늘이 한 해의 마지막 날임을 안다. 쉼의 시간을 보내던 우리가 날짜 관념을 잊고 산 탓이다. 분명 날짜를 확인하기 전과 후는 같은 날인데도 날짜를 확인한 뒤로 오늘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한 해의 마지막을 함께하게 된 우리는 서로에게 가벼운 덕담을 건넨다. 

 

차에서 내리니 운문령을 넘어가는 바람이 매섭다.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라는 것이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구나.”하고 벗이 말한다. 걸친 모든 것을 동여맸다. 점퍼의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모자도 쪼맸다. 지난 며칠간 눈이 제법 녹고 잔설이나 남아있으려나 생각했지만 한파에 모든 것이 얼어버려 바닥 이리저리로 바람에 따라 눈이 풀풀 날리고 있었다. 땅에 쌓인 눈 위로 바람의 흔적이 파도처럼 이리저리 남는다.

 

▲ 응달에 남은 솔잎 위 귀여운 눈뭉치

바람에 옮겨져 쌓인 눈을 골라가며 푹푹 밟으니 기분이 상큼하다. 우리는 흰 눈밭을 처음 보는 강아지마냥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추위로 콧물이 마스크 속에서 흐르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한참을 눈을 푹푹 밟으며 올랐다. 미처 두터운 옷으로 가리지 못한 외기에 놓인 몸의 감각이 무뎌졌다. 


운문령을 한참 벗어나서야 해가 들고 바람이 잦아지는 곳을 만났다. 콘크리트 임도 위 따뜻한 겨울 볕을 맞으며, 잠시 한숨 돌린다. 이곳은 길 위로 쉬기 적당한 터가 아니니 조금 더 오르자고 벗이 제안한다. 제안하는 말에 거친 숨이 섞여 있다. “나중보단 지금 쉬고 싶지 않아? 여기 볕도 너무 따스하고 바람도 조용한데.”하고 제안한다. 타인의 말에 항상 잘 귀 기울여 주는 벗은 흔쾌히 “그러자!” 대답해 준다. 

 

▲ 볕이 따뜻한 콘크리트 임도

 

▲ 볕이 드는 흰 눈길을 걸으며

배낭을 벗고 방석을 꺼내 바닥에 털썩 앉는다. 볕을 바라보고 앉으니, 흰 눈에 반사된 볕의 따스한 기운도 느껴진다. 보온병과 목련꽃차 티백을 꺼낸다. 컵에 따르니 거센 김이 난다. 휘익 불어 김을 날리고 호호 불어 뜨거운 차를 조심히 한 모금 넘긴다. “아 좋다.” 동시에 한 말 덕에 웃음이 난다. 

 

▲ 보온병과 목련꽃차와 함께 쉬어가며

다시 배낭을 꾸려 쌀바위로 향한다. 따뜻한 차와 햇볕 덕에 몸이 녹았다. 발걸음이 가볍다. 힘들 땐 쉼이 이렇게 중요하다. 사람도 기계도 너무 많이 움직여 과부하가 걸리면 탈이 난다. 모든 것에는 적당한 쉼이 필요하다. 어쩌면 지금의 세상도 너무 열심히 달려와서 쉼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볕에 반짝이는 흰 길을 따라 계속 걷는다. 때가 늦어 상고대는 이미 흔적이 없다. 그래도 그 덕에 인적 드문 길을 걷는 발걸음이 한결 더 가볍다. 

 

▲ 쌀바위 대피소 인근 조망바위에서

 

▲ 임도따라 쌀바위로 향하는 길

 

▲ 쌀바위에 있는 새천년정상석에서

 

▲ 인적이 드문 쌀바위 대피소

 

▲ 쌀바위에서 내려다본 상북의 이이벌 방향

노진경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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