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야 새야 파랑새야

정익화 울산생활과학고 교사 / 기사승인 : 2020-11-19 00: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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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여행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 장수 울고 간다” 전국적으로 불리는 이 노래는 녹두장군 전봉준에 대한 애틋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국가 존망이 위태롭고 농민의 삶이 피폐한 상황에서 일어선 농민군이 외세의 총칼 앞에 스러져간 한을 피맺힌 가슴으로 불렀습니다


경주 용담정에서 뜻을 세운 동학 교주 수운 최제우는 처가인 울산 유곡동 여시바위에서 득도했다고 하는데 교육청 뒤편 원유곡에 유허지가 정비돼 있습니다. 언양에는 인내천이라는 글자를 새긴 큰 암반이 있고 구미, 선산 등 경상도를 비롯해 충청, 황해도까지 전국에 동학의 세가 상당했다고 합니다. 경상감영 감옥이 있었던 대구 종로초등학교의 400년 된 회화나무는 수운 선생이 처형당할 때 나뭇잎을 떨어뜨리고 수액을 눈물처럼 흘렸다고 전해지며 2012년 대구시에서 최제우 나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전두환이 1994년 모교를 방문했다는 표지석이 있어 씁쓰레합니다.


키가 작아 녹두장군이라는 별칭으로 불린 전봉준은 장군이라기보다는 한학자, 선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학난이라고 불렸던 관군과의 전투로 장군이라 후세에 불렸지만 농민군의 지도자이지 총칼을 들고 싸움에 앞장선 무관은 아니었습니다.


고부 군수 조병갑의 탐학으로 불씨가 당겨져 봉건질서 타파를 부르짖게 됐고 집권의 아집에 빠져있던 지배층은 민중의 뜻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오히려 외세인 청나라를 불러들여 자국민을 진압했습니다. 그 후 일본군까지 개입해 청일전쟁이 유발되고 일본군은 학살에 가까운 진압 작전으로 농민군을 궤멸시켰습니다. 


그때 나온 노래가 “새야 새야 파랑새야”인데 파랑새는 청군을 의미하고 녹두장군은 전봉준을 의미했다고 합니다. 파랑새를 팔(八)왕(王)새로 성씨 전(全), 전봉준이라고 억지 해석하기도 합니다.

 

▲ ‘백산격문’ 내용. 위부터 손화중, 김개남,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등과 더불어 사발통문을 만들어 주모자를 숨기는 기지를 발휘한 동학군은 반봉건 반외세를 기치로 내걸고 탐관오리 숙청과 보국안민이 거사의 목적임을 알렸습니다. 황토현에서 승리한 농민군은 전주성을 점령했으나 조정이 청군 파병을 요청해 아산에 청군이 상륙하고 뒤따라 일본군이 인천에 상륙함에 따라 농민군은 폐정개혁안에 합의하고 해산합니다. 그 후 폐정개혁을 촉구하며 전라감사 김학진과 더불어 집강소를 설치해 전라도 전체의 민심을 반영했습니다. 그러나 민씨일족의 개화파 정권은 경군과 일본군으로 하여금 동학군 토벌을 명합니다. 전봉준은 충청감사에게 일본군에 대항할 민족연합전선을 제의했으나 거부당하고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결정적으로 패해 순창군 피노리에서 피체, 압송됩니다. 고문으로 하반신을 못 쓰고 가마에 실려 가면서도 쏘아보는 형형한 눈빛은 지금도 각종 그림과 조각에 이용되는데 앉아서 비스듬히 쏘아보는 형상 그대로 정면에서 사선으로 직시하는 인물상으로 표현하니 어색하게 보입니다. 백말을 탄 그림, 사모관대를 쓴 그림 등으로 표현하는 전봉준은 우리가 생각하는 농민 지도자 이미지와 달라 부자연스럽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전두환이 같은 전 씨라고 기념관 건립에 우호적이었다는 야사도 있습니다. 


정읍 황토현 전적지에 있는 동학혁명기념관은 공주 우금치, 장성 황룡, 장흥 석대 등지와 함께 4대 전적지로 기념되고 있으며 정읍에는 쌍화차 거리가 조성돼 답사에 지친 발걸음을 쉬어가게 합니다. 

 

▲ 정읍 쌍화차거리 표지판

2019년 국무회의에서는 125년 만에 동학농민군이 황토현에서 대승을 거둔 5월 11일을 동학농민혁명 기념일로 제정했습니다. 동학 농민의 횃불이 촛불로 승화됐습니다. 


정익화 울산생활과학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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