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전태일이 나에게 맡긴 덩이

김형균 전국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정책기획실장 / 기사승인 : 2020-11-18 00: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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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사회연대

전태일 서거 50주기를 통해 전태일 정신이 재조명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근로기준법 책과 자신을 함께 불태워 한국사회 노동운동에 큰 전환점을 만든 인물로 기억할 것이다. 내가 전태일을 만난 것은 다른 노동자들처럼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87년 투쟁의 역사적 배경에 전태일 정신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난 전태일이 자신의 여동생 뻘이었던 어린 여공들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버스비를 모아 풀빵을 사주고 자신은 먼 거리를 걸어서 집에 갔다는 이야기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공부하고 바보회라는 활동 조직을 만들어 치열한 활동을 한 사실을 접하면서 그의 인간적인 마음에 존경심이 우러났다.


우리는 매년 전태일 정신을 이어받고자 11월에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있다. 전태일이 분신 항거하며 ‘근로기준법을 지켜라’고 외쳤던 그 마지막 외침은 50년 동안 어떻게 바뀌었을까? 결론적으로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노동법을 개악하려는 정권과 자본에 대한 투쟁의 역사가 더 많다.


올해도 역시 마찬가지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라는 국제사회의 통상 압력에 더 이상 비준을 미룰 수 없게 되자 문재인 정부는 자본가들이 요구하는 노동조합 파괴법을 슬며시 끼워 넣었다. 단체협약 갱신 기한을 1년 더 늘리고 파업은 자신이 일하던 사업장 밖에서 해야 하며, 산별노조 연대활동을 가로막는 악법을 만들어 상정했다.


민주노총이 올해 전태일 3법을 만들어 10만 명이 서명해서 상정했는데 집권 여당은 이 법을 논의하기는커녕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무력화하고 있다. 또한 특수고용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라는 상정안은 아예 무시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다. 주말마다 시린 손 부벼가며 삼산동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함께 했던 노동자들의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노동존중의 시대를 열겠다”, “소득주도성장을 하겠다” 등 수 많은 노동 관련 공약들도 모두 폐기되면서 문재인 정부에 걸었던 기대도 모두 무너져가고 있다.


다시 전태일 정신으로 돌아가 보자. 전태일은 다른 노동자들을 또 다른 나로 인식했다. 그래서 다른 노동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겼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노동자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 현실, 아무리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해도 번번이 거절당하고 오히려 노동탄압의 칼날이 드리우는 현실, 그 사회구조의 모순이 전태일을 분신 항거로 내몬 것이다. 그 후 50년이 지나면서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는 얼마나 많은 전태일이 있었는가? 그 많은 노동 열사들의 외침도 전태일의 외침과 다르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회 구조적인 모순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분노해야 할 것은 노동자의 죽음과 고통 뒤에 가려진 구조적인 모순에 저항하지 못한 채 노예처럼 길들여진 우리의 모습이어야 한다. 우리가 또 더욱 분노해야 하는 것은 노동자 스스로 충분히 존중받을 가치를 가지고 있음에도 존중받을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나는 50년 전 전태일만큼 치열한 고민을 하며 살고 있는가? 전태일이 지극한 동지애를 나눴던 것처럼 나는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무엇을 얼마나 나누고 연대하고 있는가? 또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뉜 차별적인 고용구조를 없애기 위해 대중적인 진보정치 체제 구축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자문해 본다.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쉬러 간다네…”-전태일 유서 중에서.


50년 전 전태일이 또 다른 전태일인 나에게 덩이를 맡겼다. 나에게 존경심을 우러나게 했던 그 훌륭한 정신은 또 다른 전태일에게 면면히 흐르고 흘러 그가 맡긴 덩이를 함께 굴리고 또 굴려 갈 것이다.


김형균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정책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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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균 전국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정책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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