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 원의 사나이

김윤경 글 쓰는 엄마 / 기사승인 : 2020-10-15 00: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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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기

사흘 만이다. 크림을 듬뿍 찍어 발랐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움푹 파였다. 이마에 가로 주름이 한 줄 늘었다. 입가 주름도 더 길게 내려왔다. 몸에서 쉰내가 난다. 검은 치마와 저고리를 벗었다. 한 사람의 세상이 끝났다. 두 발로 걸어 들어갔던 병원에서 아빠의 숨이 멎었다. 65년을 살다 간 아빠 통장에는 500만 원이 전부였다. 딱 그만큼 아프다 가셨다. 12일간 병상에서 입원비 걱정만 했던 아빠다. 


아빠는 자연치유에 매달리셨다. 오랜 당뇨 끝에 신장이 망가졌다. 작년부터 의사가 신장투석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아빠는 약마저 끊으셨다. 햇볕을 쬐고 운동을 하고 식이요법을 하셨다. 아빠는 점점 까맣게 말라갔다. 수치가 전보다 나아졌다고 좋아하셨다. 신장이 망가지면 수치는 별 의미가 없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올 여름부터 가슴에 통증이 심해지더니 발목부터 서서히 부어올랐다. 70세까지 다닐 수 있다던 직장을 8월 마지막 날에 그만두셨다. 9월에는 허벅지까지 부어오르고 먹고 걷는 것도 힘들어하셨다. 밥을 두세 숟갈 먹다가 죽으로 넘어갔다. 병원에 빨리 가시라 해도 아빠는 멀리 있는 큰 병원만 다니셨다. 그러다 결국 가까운 병원에 부랴부랴 입원하셨다. 


65번째 생신에 아빠는 생애 첫 입원을 하셨다. 입원하기 전날 저녁에 생신을 축하해드렸다. 발이 부어서 불편하다며 생신축하금으로 운동화를 사고 싶어 하셨다. 일주일간 일반 병실에서 지내다가 아빠가 퇴원을 결심한 날,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아빠는 줄곧 집에 가고 싶어 했다. 신장뿐만 아니라 심장, 폐, 위도 망가진 상태로 담당 과가 3번 바뀔 때마다 의사는 위중하다고 했다.


돌아가시기 3일 전까지만 해도 아빠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새벽 3시가 넘어서 온 아빠의 마지막 연락은 병원비를 걱정하는 내용이었다. 보험이 없었던 아빠는 통장 잔액보다 병원비가 더 나올까 봐 걱정하셨다. 중환자실에서 할머니 산소 밑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기셨다. 병상에서도 강직했던 아빠의 눈물을 처음 보았다. 간호사가 하루에 한 번으로 면회를 제한했지만 아빠는 본인의 죽음을 직감했는지 그 날만은 한 번 더 가족을 불러들였다. 


아빠는 중환자실에서 가장 위중한 환자였지만 인공호흡기를 쓰기 전까지는 의식이 말짱했다. 의식이 없을 때도 면회할 때 눈물을 닦아주면 다시 눈물이 맺혔다. 아빠의 온몸이 퉁퉁 부었다. 병원에서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렵다는 연락이 왔다. 아빠의 부은 손끝이 점점 파래지기 시작했다. 얼굴도 부분부분 파래졌다. 온기도 점점 줄었다. 아빠에게 주렁주렁 달린 줄이 많았다. 수혈을 42번 받을 만큼 위장 출혈이 멈추지 않았다. 오빠와 중환자실 앞에서 대기했다. 새벽 3시 40분에 아빠의 임종을 지켜봤다. 의사는 사망선고를 내렸고 아빠 머리맡에 있던 기계는 한 줄로 쭉 이어졌다. 


아빠 몸에 달려있던 줄을 다 떼고 다시 봤다. 인공호흡기만큼의 입을 벌린 채로 돌아가셨다. 의료진의 손길이 아빠 몸 여기저기에 흔적으로 남았다. “우리 아빠 많이 아팠겠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다 차가워져도 아빠의 뒷목은 마지막까지 따뜻했다. 아빠는 흰 시트에 꽁꽁 싸여진 채 병원 밖을 나갔다. 아빠의 시신을 확인하는 절차가 있었다. 장례식장으로 옮기고 나서 보니 그 사이에 붓기가 다 빠져 바싹 마르고 얼굴 전체가 파랬다. 


코로나 중에 장례식이라 더 경황이 없었다. 부고 소식을 알리기가 미안했다. 누구한테까지 알려야 할지도 혼란스러웠다. 소식은 건너건너 몇 년간 왕래가 없었던 지인의 얼굴을 보게 했다. 누군가는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12살 어린 동생을 먼저 보낸 내 큰아버지는 자주 우셨다. 아빠의 유언은 남은 유가족의 마음을 담아 할머니 산소 옆에 평장으로 해드렸다. 다음에 아빠 만나러 갈 때 딸기를 사갈 거다. 병상에서 딸기를 찾으셔서 냉동딸기 5개를 씻어 드렸다. 그것이 내가 아빠에게 해드린 마지막 효도다. 


김윤경 글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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