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휴전선에 남아있는 분단의 흔적들

서민태 울산저널 대표 시민기자 / 기사승인 : 2020-11-18 00: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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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지난 10월 27일부터 11월 5일까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퇴직교사 30여 명이 ‘철책선을 평화통일의 둘레길로’라는 주제로 강원도 고성에서 철원까지 휴전선을 따라 걸었다. 나도 모처럼 시간을 내서 장장 200km 이상을 걷게 됐는데 이렇게 긴긴 걸음은 내 생애 처음이었다. 걸으면서 느끼는 자연 경관과 주변의 농촌 풍경, 자주 스치는 군인과 군부대, 농민과 상인들 모두 따뜻하고 평온하기만 했다.


이번 걷기 행사에서 개인적으로 얻은 것이 너무나 많았지만 가슴 아픈 풍경들도 있었다. 특히 지금도 내 뇌리에 남아 있는 몇 가지가 있다. 모든 생명체는 생로병사를 거치고, 생각은 생주이멸의 과정을 거친다. 사상이나 문화도 생겨나 이어지다가 바뀌고 소멸되는 과정을 거친다. 어제의 생각이 오늘 바뀌기도 하는 발 빠른 세상에 아직도 옛날로 돌아간 듯 시대착오적인 분단의 흔적을 발견하고 걷는 내내 너무나 가슴이 시리고 아팠다. 


첫 번째 가슴 아픈 단어가 ‘파로호(破虜湖)’다. 화천군에서도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곳곳에 식당 이름이나 지도와 안내판에도 나와 있다. 화천댐이 완성될 때는 대붕호(大鵬湖), 혹은 화천호(華川湖)로 불리다가 1955년에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전쟁 때 중국 ‘오랑캐’를 격파했다고 해서 파로호라고 부르게 됐고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1992년에 국교가 수립됐지만 30년이 지나도 중국을 오랑캐라고 비하하고, 2만4000여 명의 중국 군인을 죽인 것을 자랑이나 하듯이 사용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이것은 중국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진작 사라져야 할 ‘파로호’라는 말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2019년에 파로호 명칭 변경 여론조사 결과 70%가 반대했고 지금도 명칭 변경이 추진 중이나 반대 여론이 너무 많은 것은 우리들의 가슴 속에 아직도 ‘분단의식’이 너무 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 아닐까?


두 번째 가슴을 아프게 한 말은 ‘멸북’이다. 어느 부대 표지석에 새겨진 ‘멸북통일 최선봉 천하무적 승리부대’를 본 순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군부대라지만 어찌 이런 단어가 가능하단 말인가? ‘멸북’이라 함은 전쟁으로 북을 괴멸시킨다는 뜻인데 헌법에도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마당에 이 부대는 반 헌법 부대란 말인가? 더욱 기가 찬 것은 따로 있다. 표지석을 세운 날짜를 확인하니, 1987년 민주항쟁이 끝난 지 10년이 지난 1998년 1월 11일이었다. 남북은 이미 2018년 9.19 남북군사 분야 합의서에 남북 불가침과 적대행위 중단을 합의했다. 


마지막으로 반공소년 이승복 동상이다. 지금은 체험마을로 변한 초등학교에 이승복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이승복 동상은 1968년 당시 초등학교 2학년 이승복 어린이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해서 죽임을 당한 후 전국 초등학교에 세워진 대표적인 반북한교육의 상징물이다. 나도 국민학교 때 반공웅변대회에 나간 기억이 있고 또 내가 로보트 태권브이를 타고 북의 지도자를 죽이고 북한 주민들을 고통 속에서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기억난다. 또 교사로 발령받은 후 6월마다 치러지는 각종 반공행사에 나 또한 아이들에게 내가 배운 대로 반공교육을 시켰다. 참으로 부끄럽고 어리석었던 내 과거다. 백지장처럼 순수한 초등학생이 공산당을 어찌 안단 말인가? 타자의 나쁜 점만 부각하고 좋은 점은 왜곡해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모든 교육은 반 교육이다. 당시 나에게 반공교육을 받은 제자들에게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 


분단의식은 결국 남북한 대결을 합리화시킬 뿐 아니라 그만큼 통일도 늦어지고, 분단 고착과 긴장 고조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외세들만 이익을 볼 뿐 우리 민족은 피해자가 될 뿐이다. 내 눈에 들어 온 이 세 가지보다 더 많은 잔재들이 존재하겠지만 이것만이라도 하루빨리 해결되기를 바라면서 나름대로 해결방안을 제시해 본다. 


‘파로호’는 행정기관이 앞서 시민들에게 먼저 개칭의 필요성을 설득해 ‘화천호’나 ‘대붕호’로 바꿔야 한다. 또 ‘멸북’은 군부대이기 때문에 국방부가 앞장서 시대에 맞지 않는 부대 선전 용어들을 전수 조사해 바꿔야 한다. 마지막으로 학교에 남아있는 이승복 동상은 기증자를 확인해 동의를 받아 철거하거나 철거가 힘들 경우 동상 앞에 ‘대한민국 교육부는 남북 대결이 첨예할 때 학생들에게 세뇌교육을 시킬 목적으로 이승복 동상을 세워 국가주도로 반민족 교육을 한 역사의 현장입니다. 대한민국 교육부는 당시 잘못된 교육을 인정하고, 교육받은 학생들에게 사죄합니다’라는 팻말을 설치해야 한다.


아직도 분단의 흔적이 유령처럼 휘날리고 있는 휴전선이 평화통일의 둘레길로 바뀌기를 기대해 본다.


서민태 울산저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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