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의 남녀대토론

백승아 기억과기록 회원 / 기사승인 : 2020-10-07 00: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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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

추석 연휴를 보내며, 아내와 남편 사이는 안녕하십니까? 웃음만 가득한 명절이었기를 바라지만, 가족모임이 그렇게 호락호락 끝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추석이란 무엇인가,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100분 토론이 펼쳐진 곳도 있으리라. 여전히 토론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누군가의 불평불만이 쏟아져 나온 것으로 치부되는 가정이 있다면, 각성이 필요할 것이다. 


1929년 1월, 잡지 <별건곤> 제18호에도 신춘특집 ‘남녀대토론’이 실려 있다. ‘한 집에서 시부모와 자녀부부가 함께 사는 것에 대한 찬반토론’과 ‘여성의 단발(斷髮)에 대한 찬반토론’ 두 가지 주제로 진행됐는데, 첫 번째 주제에 대한 토론내용을 소개하려고 한다. 물론 요즘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주제다. 하지만 찬성과 반대 측이 자신의 주장에 대해 내세운 근거들은 지금도 여전히 통용되는 것들이 있다. 90년 동안 변하지 않은 그 논리는 무엇일까? 당신은 어느 쪽의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질까.


1929년 당시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토론주제는 ‘한집에 고부(姑夫)동거가 가(可)한가 부(不)한가’다. 성에 따른 차별을 두지 않는 포괄적인 언어로 바꿔보자면, ‘한 집에 부모와 자녀부부가 함께 사는 것에 대한 찬반토론’이라 하겠다. 찬성 편으로는 기독교계 여남대표로 김미리사와 오화영이 참여했고, 반대편으로는 천도교계 여남대표로 박호진과 방정환이 참여했다. 


먼저, 김미리사는 시부모의 입장에서 함께 살아야 함을 주장했다. 사람이 자식을 낳고 귀하다 하고 좋아하는 것은 그 자식이 자라서 장래의 가문을 잘 계승하고 또 노년에 자식에게 의탁해 여생을 편안하게 잘 보낼 수 있기 때문이라 주장했다. 그런데 자식을 애쓰고 고생스럽게 길러서 며느리를 얻은 다음에 한 집에 데리고 있지도 못하고 따로 산다면 남과 다를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서양처럼 개인제도와 사회조직이 발달된 나라라면 모르지만 ‘가족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우리 조선과 같은 경우는 다른 제도가 생기지 않은 현실에서 이를 파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오화영 역시 부자(父子)가 함께 사는 것은 인륜적 이치라고 주장했다. ‘동방예의지국’의 이름을 떼버리는 것은 옳지 못함을 강조했다. 세계인류가 숭상하는 동양의 도덕과 윤리, 그 중에도 우리 조선은 윤리와 도덕을 꾸준히 지켜온 군자의 나라로서 우리의 것이라고는 이것밖에 없는데, 이마저도 우리 스스로가 손으로 꺾고 발로 밟아버리느냐는 것이다. 


반대 측의 박호진은 며느리의 입장에서 동거의 부당함을 주장했다. 주변의 사례를 들며, 부모세대는 새로운 사상을 가진 며느리를 이해해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며느리를 얻으면 그저 밥이나 짓게 하고 옷이나 빨게 하며 어린아이나 잘 기르게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부모세대가 며느리의 사회생활을 이해할 수는 없다. 며느리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면 흉을 보게 되고, 이는 자녀 부부 사이에 불화를 가져오며 아이들 교육에도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의(主義)의 충돌로 도저히 같이 살 수 없는 것이므로 각자 자기의 주의와 이상대로 살 수 있게 해야 함을 주장했다.


방정환은 부부중심의 가족형태의 중요성과 어린이 교육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부모의 마음에는 자녀가 커도 자신이 돌봐줘야 할 어린사람으로 알지만, 결혼을 하면 그 두 남녀는 독립해 가정을 이루고 두 사람이 서로 뜻을 맞춰 조화된 가정을 이뤄가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윗사람이 함께 산다면 새 가정은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다. 한집 속에 여러 부부가 있으면 그것은 갑의 집도, 을의 집도 못 된다는 것이다. 또, 가정이란 휴양과 안식을 주는 곳이어야 하는데, 집안이 번잡해지면 휴양은커녕 골치 아픈 일에 많이 부딪히게 되고, 아내는 여관주인이 돼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정의 중심이 모호해져 쓸데없는 체면을 보게 되며, 이는 어린이 양육문제에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 부모 앞에서는 어린이를 꾸짖지 못하는 것이 관례이므로 상벌의 이유가 분명하지 못하게 돼 자라는 어린아이에게 혼란을 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정환의 주장은 가장 많은 호응을 얻어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오늘이었다면 누구의 주장이 가장 많은 호응을 얻을까?


90년 전의 토론인데, 지난 연휴동안 내가 들었던 말이나 내가 했던 생각과 비슷하지는 않는가? 토론주제를 ‘명절을 어떻게 보내야하는가?’로 바꿔보자. ‘명절인데 부모님을 찾아뵙고 이러저러한 일들을 하는 게 도리이고, 이게 행복이지’라고 주장할 수 있다. 또는 ‘명절에 해야 하는 일들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데, 꼭 그렇게 해야만 하나? 추석이란 무엇인가?’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여전히 동방예의지국 한국에는 자연의 섭리, 우주의 이치로 여겨지는 법칙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법칙 속에서 행복하다. 또 그것이 모두에게 행복감을 주고 있다고 믿는다. 그것을 무너뜨리면 세상이 무너진다고 한다. 그런데 한 편에는 그 법칙이 편안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편안하지 않다고 불편함을 호소한다. 하지만 그들의 호소는 지금의 평안을, 우주의 조화로움을 해치는 불편한 목소리로 여겨지기도 한다. 물론,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90년 전에 치열하게 논쟁했던 부모세대와의 동거를 오늘날은 부모세대도 자녀세대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자연의 섭리, 우주의 이치로 여겨지던 것들이 변화하고 있고 그럼에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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