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대, 예외상황이 일상화된 시대의 성찰

백무산 시인 / 기사승인 : 2020-11-04 0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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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일 밀양 호박소 인근 식당과 재약산 사자봉 들머리 샘물산장에서 언론재단 사별연수 지원 프로그램으로 백무산 시인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 사회변화’를 주제로 강의했다. 백무산 시인은 세계 질서의 근본을 뒤흔들고 있는 코로나19 대유행이 예외상태를 일상화하고 위기의 악순환을 가져오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시민의 자기통치와 수평적 개인주의 없이 방역에 성공할 수 없다며 악순환을 멈추고 탈성장과 돌봄 중심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무산 시인의 이날 강의를 발췌해 싣는다. <편집자 주>


예외상태에 익숙해진 현대문명

코로나19의 대유행은 세계 질서의 근본을 뒤흔들어 놓고 있다. 시작은 있으되 끝은 알 수 없고 자연적인 천재지변처럼 가시적으로 가늠해 볼 수도 없다. 원인과 출처 또한 명확히 알 수 없어 한층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현대과학이 전혀 손을 쓸 수 없었다는 점은 또 다른 충격을 안겨주었다. 1년도 채 되지 않은 기간에 백만 명 이상이 죽어가는 상황에도 속수무책이었다는 점에서 문명의 정점인 지성세계 또한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이러한 사태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대응해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분분한 주장과 예측이 나왔지만, 아직 변화의 의지와 전환의 현실성을 확보하는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다. 


팬데믹은 장기화가 예상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백신 개발을 기다리면서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기대를 품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지구적 자본주의가 불러온 대재앙으로 진단하면서 자본주의 문명을 떠받쳐온 기본구조를 전면적으로 재구조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돌이킬 수 없는 환경오염과 지구 기후변화는 팬데믹이 여러 변종으로 일상화되리라는 공포를 불러온다. 팬데믹에 대한 대응은 지구 문명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진단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돌아보면 우리 삶은 언제나 예외상태를 일상화해서 지속해 왔다. 우리가 어떤 위기상황을 닥칠 때마다 ‘어느 때든 위기 상황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는 자각을 불러오는데, 삶은 언제나 극복의 대상이었다. 현대자본주의 자체가 예외상태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가진다. 현대문명은 지구자원의 남용과 파괴, 불평등과 착취 노동에 기반했으며, 수많은 생물종을 멸종시킨 대가로 주어진 체제인 것이다. 자본주의는 이러한 예외상황을 정상상태라고 믿게 했다. 그것은 결국 우리들 삶의 기초를 허물어온 과정이었지만 자각은 늦었다. 위기는 이제 더 이상 기회가 아니라 또 다른 위기의 악순환이 되고 있다.

팬데믹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러한 우려 또한 현실적 요구에 간단하게 파묻힐 수도 있다. 역사는 외부적 충격으로는 거의 변한 적이 없다. 삶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몰고가버렸다고 느낀 충격적인 사건들이 세계사에 수없이 많이 존재해 왔으나, 그 충격이 외부적이거나 외부적인 것이라고 믿었을 때는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극복해야만 할 장애물로 여기고 또 다른 ‘기회’로 희망의 행진을 계속해 왔다. 인간의 욕망은 어떠한 충격에 대한 자각도 쉽게 번복해 버리기도 한다. 


팬데믹으로 인해 어떤 희생을 얼마만큼 치렀든 멀지 않아서 의학적인 방책으로 얼마간 완화되는 단계가 올 것인데, 그럴 때면 정상화의 기준을 낮추고 과거 질서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달려갈 수도 있다. 이러한 악순환의 주기는 갈수록 짧아질 것이고 근본적 치유의 길에서 멀어지면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질 수도 있다. 


이와 같이 팬데믹은 현대적 삶의 총체적인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세계 여러 나라의 방역과정에서 보았듯이 국가적 통제만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었다. 민주적 시민성을 가진 다수의 사람들에 의한 주권자로서의 자기통치가 발현되지 못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러한 교훈은 어떤 정치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 새로운 과제를 던져준다.


팬데믹이 현실 자본주의 국가체제가 불러온 재앙이라고 할 때 민주화 운동만큼이나 방역과정은 사회 개혁의 의제를 던져준다. 초기에 방역이 국가의 권위주의 체제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았지만, 오히려 시민 개개인의 주권 의식이 강조되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정치에 대한 모색이 요구된다.

새로운 정치질서에 대한 요구

성공 여부는 아직 판단하기에 이르지만 K방역이 주목을 받으면서 한국사회의 체제와 성격에 따른 평가가 뒤따르고 있다. 대체로 성공적으로 보이는 아시아권에 대한 평가는 먼저 서구적 시각이 문제시된다. 더 투명하고 개방적이면서 기술적 노력과 창의적 전문성으로 대응했다는 평가를 내리지만,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권력에 대한 순응성’,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용인’, ‘개인의 자유의식 부족’, ‘디지털 감시체제에 대한 비판 부재’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아시아권에 공유하는 ‘유교적 정치 유산’이나 ‘냉전적 정치 유산’이라는 문화적 전통을 들어 비판한다. 말하자면 덜 성숙된 사회의 전체주의적 집단의식이라는 시각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방역의 성공은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희생한 권력의 통제기술의 성과일 뿐이다. 이것은 일시적인 성공일 뿐 팬데믹에 대한 근원적 해결에 있어서는 더 취약한 체제로 역행할 뿐이다.


그러나 최근 대규모 사회의식 조사를 통한 분석은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K방역은 권위주의나 집단주의, 순응주의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서구에서 우려하는 것과 반대로 수평적 개인주의가 힘을 발휘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분석의 결과는 사실 우리 자신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한국사회가 그동안의 지난한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좋은 공동체 안에서만이 자유로운 개인을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이 폭넓게 형성된 때문일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주권을 국가에 위임하지만은 않겠다는 시민적 의지 또한 크게 작용했을 수도 있다. “이것이 국가냐?”, “누구의 나라냐”라는 질문은 좌우세력 할 것 없이 수년 동안 우리 사회의 화두였다. 이러한 물음은 시민 스스로가 주권자로서의 자기 통치의지를 가지고 책임 있는 행동에 의무감을 부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골이 깊은 이념적 갈등과 불평등의 문제가 극심한 대립 갈등으로 번질 여지도 적지 않은 사회다.

삶의 실제적 요구로부터 변화의 시작

팬데믹에 대한 근본적 대응 방향은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해온 문명 대전환의 과제와 맞물리면서 시대적 관심사로 떠오른다. 그 가운데서 탈성장과 돌봄 중심 사회로의 전환의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과잉생산 시대에 성장에서 탈성장으로, 그리고 생명과 생태계를 돌보는 재생산 노동으로의 전환을 위해 삶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팬데믹의 여파는 그동안 사회 재생산의 위기를 겪어오면서도 돌아보지 못한 여러 의제들을 공론의 장으로 끌고 나오기도 했다. ‘그린뉴딜’이라든가 ‘사회 대전환’, ‘기본 소득’, ‘돌봄의 정치’ 등 제도권에서는 거론조차 되지 못하던 근본적인 변화의 의제들이 공론의 장에 펼쳐지게 된 것은 적지 않은 변화다. 하지만 위기에 대한 현실적 대응에서는 시민성 혹은 민주적 집단 주체성은 여전히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제도화된 주체성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공동체란 정치적 우애 없이는 일시적으로 구성되었다 소멸하게 된다. 민주화 운동과 촛불항쟁에서 우리는 정치적 우애의 실체를 발견했으나 기득권 경쟁에서 실종되고 말았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형식적 민주주의가 실제적으로 작동하고 민주정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우애혁명’이 필요하다는 많은 지적들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변화의 방향에 우애와 돌봄의 정신을 부여해야

민주주의 기본 이념인 자유와 평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서로 배타적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자유는 사유재산과 축적의 자유문제로 환원되고, 평등은 평균적 균질화로 사회의 정체를 불러오게 된다. 자유와 평등을 연속관계로 만드는 실제적인 힘이 우애(박애)에 있다는 지적은 팬데믹 시대에 요구되는 ‘생명정치’와 같은 연장선에서 주목된다. 최근 우리 사회가 촛불정신으로부터도 많이 후퇴되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패거리 정치로 우애의 정신은 사라지고 기득권 유지를 위한 권력의 사유화는 민주정치에 대한 불신과 그로 인한 시민사회의 분열이 촉발되고 있다. 우리 정치 현실이 전환의 시대를 여는 미래를 그려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돌아볼 일이다.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는 우리에게 예외상태를 일상적 삶으로 받아들이도록 요구한다. 지상과제인 성장을 위해 언제나 외부의 위험을 ‘발명’하고 부당한 조치를 정당화한다. 이러한 위태로움을 극복하는 과정은 언제나 또 다른 위험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된다. 악순환을 멈추지 않으면 우애와 돌봄의 정치가 만들어질 수 없다. 


그러한 우애와 돌봄의 성격이 무엇인지 새롭게 사유할 때다. 이미 목전에 닥친, 인간 노동의 전면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4차산업혁명 시대와 맞물리면서 우애와 돌봄은 더 늦출 수 없는 현실적 과제가 되고 있다. 팬데믹은 이미 우리 시대가 요구해 왔던 전환의 의제 가운데 관습에 의해 지체된 과제들을 촉발하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를 지탱해 왔던 정신들, 지속될 것만 같던 가치들마저 차별 없이 무너뜨리며 방향을 잃고 쏟아져 나올 새로운 요구를 수용하면서 우애와 돌봄의 정신을 부여하는 일에 시민운동이 먼저 제대로 응답해야 할 것이다. 


백무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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