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가을 바다를 걷다 - 남해 앵강다숲길

최영실 포토 에세이스트 / 기사승인 : 2020-10-21 00: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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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 ‘훌훌훨훨’

▲ 앵강다숲길. 남해 바래길 2코스는 가천 다랭이 마을과 홍현마을, 월포 해변을 지나면서 해안을 보며 숲길을 걸을 수 있는 남다른 묘미가 있다.

어머니의 길, 바래길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길 옆으로 바다가 펼쳐진다. 분명 막힘없는 바다일진대 그저 보기엔 호수다. 눈동자가 고요히 머문다. 바람조차 몸을 낮추고 엎드려 섬 사이를 오고 간다. 내가 사는 너무도 역동적인 동해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그림 같은 풍광을 두고 저절로 나오는 감탄사도 아끼는 이 길. 남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앵강만을 끼고 도는 절경의 해안도로다. 시월의 연휴가 끝난 평일 아침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남해에 올 때마다 느끼는 고요와 평온은 여느 다른 바다와 기품이 남다르다. 시월의 가을이라니, 가을의 바다라니, 남해의 가을 바다 빛이라니.


여행을 다니다 보면 머무르거나 혹은 지나치는 곳에 수많은 도로와 낯선 지명 마을들을 만난다. 누구도 찾지 못할 만큼 산골짜기 깊은 마을에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 외진 바닷가 바람을 홀로 맞고 있는 집, 햇살 좋은 너른 들녘에 단정하게 앉은 집성촌, 자연의 일부처럼 오랜 시간을 두고 섞인 집들은 처음부터 그 자리 있었던 듯 안온함을 준다. 혹시나 그런 집이 비어 있으면 훗날 이곳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기분 좋은 상상도 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갈 때마다 빈집을 자주 들여다보며 발걸음을 멈추게 되는 곳, 남다른 평온함을 주는 곳이 나에게는 바로 남해다. 


그런 남해를 시간을 두고 두 발로 오래 걸어 보고 싶은 생각이 늘 마음에 있었다. 도로 사정이 좋아지고 여러 연륙교가 생겨 하루에도 마음만 먹으면 산모퉁이 하나쯤 바다를 끼고 도는 일은 어렵지 않다. 아침 뜨는 해를 보고 저녁 지는 노을을 보는 일, 그 사이를 걸음으로 채운다는 것. 그 첫걸음으로 가천 다랭이 마을에서 홍현해라우지 마을, 월포 해변으로 이어지는 남해 바래길을 선택했다. 남해의 여러 풍광과 삶들이 버무려진 길, 물때를 맞춰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갯벌이나 갯바위를 향하던 일, 그곳에서 손수 해산물들을 채취하는 것이 바래이다. 나서는 그 길을 바래길이라고 한다. 어머니의 길이기도 하다.
 

▲ 가천 다랭이 논. 절벽의 가파른 땅을 계단식으로 만들어 벼농사를 지었던 척박한 환경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다랭이 논
이모작 준비하는 황톳빛 논밭

길을 시작하는 지점인 다랭이 논은 남해에서도 가장 많이 알려진 유명한 곳이다. 주차장이 주말에는 부족할 정도로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곳이지만 평일은 한산하다. 방파제도 선착장도 없어 가파른 절벽을 깎아 논으로 일궈 생활했다는 핍박함이 담긴 다랭이 논이지만 지금은 아무 곳에서나 볼 수 없는 층층이 이어지는 계단식 논이 사람들의 시선을 잡기에 충분하다. 요즘은 이 다랭이 논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집은 없고 관광객을 위해 마을에서 관리하고 있는 듯하다. 가파른 길을 내려오니 펼쳐진 바다를 배경으로 놓인 정자의 풍경이 절경이다. 몇몇 함께 온 커플들의 인증샷 찍는 모습 말고는 잠시 다녀가는 사람들 뿐, 바래길을 걷는 사람은 무척 드물다. 


깎아지른 해안 절벽과 주상절리 빼어난 경치를 보며 걷는 것도 좋지만 남해의 아기자기한 모습은 곳곳에 이모작을 준비하는 황톳빛 논밭을 보는 일이다. 일찍 모를 심어 이른 벼 베기를 하고 논에 물을 말린 뒤 다시 시금치나 마늘을 심어 겨우내 수확한다. 달큼하고 맛있는 남해 시금치나물 무침을 설명해 주는 택시 기사님의 말씀에 올겨울에는 꼭 남해 시금치를 먹어야지 하고 군침을 삼켰다. 해풍에 밤낮의 기온차와 질 좋은 흙, 누구보다 환경에 잘 적응하는 인류가 자연과 조화로운 공생을 했을 때 얻어지는 것은 실로 아름답다. 그것이 멋이든 맛이든.
 

▲ 홍현해라우지 마을의 석방렴. 연안에 돌무더기를 쌓아 들고나는 물 때로 고기를 잡는 원시 형태의 어장
홍현해우라지 석방렴

척박하고 여유 없는 땅을 활용하는 이모작이라는 특별한 농사 말고도 남해에는 바다에서 해산물을 얻는 원시 수렵도 주목할 만하다. 남면의 홍현해우라지 마을 해안에서 만난 특별한 돌무더기를 만날 수 있다. 처음 봤을 때 그 모양과 물빛이 너무 아름다워 선녀가 하강해 몸을 담그고 가는 곳일까 하는 상상도 들게 했는데 석방렴이라고 한다. 연안에 깊고 넓게 돌을 쌓아 들물에 고기가 들어왔다가 썰물에 갇히는 방식으로 우럭, 볼락, 게, 문어 등 다양한 어종을 잡을 수 있다. 그런 원시적인 수렵으로 부자가 됐을 리는 만무할 것이고 해지는 저녁 무렵 둘러앉은 사람들의 얼큰한 매운탕 술안주나 어느 노부부의 소박한 저녁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가끔은 차고 넘치는 먹거리로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현대인들의 허기는 과연 배고픔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원시인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하는 것이다. 


광활한 들판에 헬기로 농약을 뿌려가며 짓는 밀이나 옥수수, 육식을 위해 아프리카의 숲을 베고 기르는 소, 자연을 거스르며 살아간다는 것은 살아가기 위해 선택한 수단이기는 하지만 실로 참혹하고 건강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인류는 그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고 있지만 서서히 바뀌어 나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원시 시대의 수렵이나 농사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고 환경에 반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형태의 생산으로 돌아가야 하는 길은 먼 꿈같은 이야기지만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한번쯤은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 노도.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로 조선 후기 문학의 산실이 됐던 곳

삿갓을 엎어놓은 섬, 노도

바래길 2코스 조붓한 길로 걷다 보면 삿갓을 엎어놓은 섬 하나가 보인다. 그곳이 바로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였던 노도라는 섬이다. 선착장에서 배로 십 분이면 닿는 곳인데 몇 해 전 미국에 있던 언니 가족과 함께 트래킹을 했던 기억이 났다. 노를 저어간다는 노에서 노도라는 이름이 유래됐고 엎어놓은 삿갓 모양의 형태를 따서 ‘삿갓 섬’ 이라고 불린다. 노도에는 서포선생이 직접 팠던 우물과 초옥 터 그리고 허묘가 남아있다. 


김만중은 이곳에서 <서포만필>, <사씨남정기>, <주자요어> 등을 집필했다. 그는 이곳에서 스스로 판 옹달샘의 물을 마시고, 나무 피죽을 먹으며 연명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노동하지 않고 오로지 집필에만 전념했다. 농사일은 안중에도 없었다고 구전돼 ‘먹고 노자 할배’라는 별명이 재미있는 일화로 남겨졌다. 조선 후기 문학의 산실이 됐을 자그마한 섬의 느낌은 옛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쓸쓸하기도 했지만 참 아름답다. 노도에서 바라보는 남해의 금산과 앵강만, 벗어날 수 없는 섬의 유배는 역사의 한 획을 긋는 문장가를 탄생시켰다. 노도는 남해군 이동면에 딸린 섬이지만 예전 남해도 자체에도 많은 유배자들이 있었다. 조선 4대 서예가인 자암 김구 선생과, 금산의 아름다움을 한시로 노래한 <남촌잡록>의 저자 김용도 유배돼 있던 곳이다. 남해가 이런 유배문학의 산실인 지역의 특성을 살려 잘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창선 마을 죽방렴. 지족 해변의 빠른 물살과 낮은 수심을 이용해 대나무로 말목을 박아 고기를 잡는 원시어장

노을과 함께한 지족해협 죽방렴

지난 태풍으로 길이 소실돼 버린 월포 해변에서 걸음을 멈췄다. 사진을 찍고 느릿하게 걷다보니 벌써 여섯 시간이 훌쩍 지났다. 더 걷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으나 조금 가져간 간식이 부족했고 하오의 그림자가 길어지는 시간이라 다음을 기약했다. 마침 장어탕을 하는 식당이 문을 열어 늦은 식사를 하고 택시를 불러 처음의 그곳으로 돌아갔다. 10km 가량 바다와 숲을 걷는 동안 외국인 단 두 사람을 만났던 남해 바래길 2코스, 앵강다숲길의 마무리는 언제일까. 기약하는 일은 늘 설레고 다시 일상에 머무르는 나를 일으키는 힘이다. 아직 그 아름답다는 앵강만의 달빛을 보지 못했고, 달큰한 시금치에 밥을 얹어먹는 맛 또한 궁금하다. 


차를 이용해 남해를 벗어나는 길에 용문사를 잠시 들렀다가 하루의 끝, 남해의 노을은 어디가 좋을까, 북쪽 창선 마을로 향했다. 그곳 지족해협에는 지금도 남아있는 죽방렴이 있다. 죽방렴은 물살이 빠르고 수심이 얕은 갯벌에 박고 주렴처럼 엮어 만든 그물을 물살 반대방향으로 벌려 놓은 V자 모양의 대나무 정치망인데 죽방렴은 길이 10m 정도의 참나무 말목 300여 개를 박아놓고 고기를 잡는 원시어장이다. 흔히 우리가 아는 죽방멸치도 이렇게 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그물을 치지 않으니 비늘이 그대로 살아있고 소량 구해지는 것이니 당연히 비싸고 귀하다.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죽방렴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을 테고, 지난 태풍에 바닷물이 뒤집어져 쓸려오는 쓰레기에 몸살을 앓았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반백년에 겨우 하루를 얹어 짊어지고 사라지는 노을은 붉기만 한 것인데, 겨우 하루만의 짧은 시간의 일이지만 아름다운 남해는 영원으로 새겨진다. 


모든 바다가 그러하듯 물결 위로 일렁이는 윤슬이 그저 빛을 내는 이야기로만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는 것이 고단해지거나 혹은 만만해지거나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경험해 보지 못한 다른 이들의 삶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삶은 여러 형태로 다양하고, 다양하게 혹독하며, 혹독한 만큼 아름답기도 하다. 치열하게, 부지런하게, 성실하게 삶을 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을 대하는 경이로운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너무도 숭고하고 절실해서 함부로 어쩌지 못하는 어머니의 삶, 우리 시대의 삶, 뒤를 이어나갈 아이들의 삶. 다름 아닌 길 위에 놓인 ‘자연 안에 삶’ 말이다.

 

▲ 남해의 이모작. 이른 추수를 끝내고 논을 말려 시금치와 마늘 등을 심으며 이모작 준비를 하고 있는 남해의 시월

최영실 포토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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