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 남매, 형제

김윤경 글 쓰는 엄마 / 기사승인 : 2021-10-18 00: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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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기

작은애가 뜬금없이 묻는다. “엄마, 삼촌은 왜 아빠한테 말을 안 해?” 여섯 살 눈에도 형제의 대화 없음이 보이는구나 싶어 뜨끔했다. 애들이 놀다가 앞뒤 맥락 없이 이렇게 말할 때가 있다. 중요한 주제를 툭 던지기도 한다. 아이와 말을 주고받는 게 즐겁다. 아이의 언어는 정확하고 솔직하다. 내게 웃음과 깨달음을 준다. 아이는 평소에 생각해 둔 걸 말하는 걸까. 


“둘이 안 친해.” 내 대답에 작은애가 “싸웠어?”, “어릴 때도 같이 안 놀았대?” 묻는다. 형제가 참말이 없다. 작은애가 어른들을 관찰했나 보다. 둘이 안 친해서 말도 안 하는 걸로 정리되자 작은애가 다시 묻는다. “그럼 엄마랑 외삼촌은 왜 말해?” “우린 친해.” 대답이 바로 나왔다. 이번엔 내가 물었다. “너는 언니랑 친해?” “응.”


세 살 위로 오빠가 있다. 성별이 달라서 같이 놀지는 않았다. 나는 주로 그림 그리고 인형놀이를 했다. 오빠는 동네 친구들과 놀다가 저녁이 돼야 돌아왔다. 오락실에 가 있는 오빠를 엄마가 잡아 오기도 했다. 오빠가 몰래 창문을 넘어 나갔던 명장면도 있다. 가방 메고 학교 다니는 오빠가 부러웠다. 내가 대여섯 살 때 오빠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면 길목에서 기다렸다. 오빠 가방을 대신 메고 집에 오곤 했다. 오빠가 자전거를 태워주는 게 좋았다. 슈퍼 심부름을 같이 가는 것도 좋았다. 


오빠랑 엄청 싸우기도 했다. 리모컨 쟁탈전이 일상이었다. 내 복수는 오빠가 당시 좋아했던 가수 SES 사진을 찢거나 낙서하는 게 고작이었다. 욕을 습득한 경로가 오빠다. 그래 놓고 오빠가 중학생이 되더니 이제 욕하지 말자고 해서 억울했다. 나는 이제 시작인데 끝난 거다. 물이나 라면 심부름이 잦았다. 기억나는 싸움이 있다. 사건의 발단은 모르겠고 오빠가 내 뺨을 때렸다. 발로 차이는 건 다반사였으나 뺨은 처음이었다. 나도 오빠 뺨을 때리려고 했는데 손목이 잡혔다. 그래서 옆에 있던 물컵을 집어 오빠 얼굴에 뿌렸다. 살벌했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부터 오빠가 집에 없었다. 대학에 가고 곧 입대했다. 오빠가 훈련소에 입소하던 날에 가족이 다 같이 갔다. 머리를 빡빡 민 무리 속에 오빠가 들어가니 비슷비슷해 보여서 찾기가 어려웠다. 구령 소리와 함께 줄지어 걸어가는 모습에서부터 울컥했다. 저 코너만 돌면 이제 안 보이는 찰나가 있었다. 그때 오빠와 눈이 마주치자 왈칵 눈물이 났다. 


오빠가 제대하고 호주에 오래 있었다. 딸기농장에서 일하는 사진을 보내왔다. 농장이 얼마나 넓던지 규모가 다르구나 싶었다. 이후 오빠는 졸업하고 멀리 취업했다. 나의 10대 후반부터 오빠가 쭉 없었다. 십몇 년만 같이 지낸 거다. 오빠가 20대부터 가족과 추억이 없어서 아쉽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오빠가 좋다. 힘든 시절을 같이 겪었다는 전우애가 있다. 멀리 있어서 일 년에 몇 번 못 보지만 오빠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 오빠가 다정한 편이다. 깊은 얘기도 나눈다. 오빠는 어느덧 세 아이의 아빠가 됐다. 그중에 딸이 나를 닮았다. 조카를 보면 내 어릴 적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내 생각에 자매가 제일 좋고 그다음이 남매, 맨 꼴찌가 형제인 것 같다. 그래서 딸딸은 금메달, 딸아들은 은메달, 아들아들은 동메달도 아니요 목메달이라고 하나보다. 자매는 어른이 돼도 가깝게 지내는데 형제는 점점 남이 돼가는 것 같다. 물론 아닌 집안도 있을 거다. 나는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지금도 한다. 제2의 친정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오빠가 좋다고 써놓고 마지막은 자매예찬론자로 끝난다.


김윤경 글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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