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헌산, 따스한 가을볕과 청명한 하늘을 맞이하며

노진경 시민 시민기자 / 기사승인 : 2020-10-07 00: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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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산행

반가운 이들을 마음으로 그리워하는 추석, 고향에 가지 않은 동네 친구들과 함께 산으로 향하기로 했다. 식구들과 조촐히 차례를 지내고 배낭을 주섬주섬 쌌다. 


요즘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으로 한적한 자연을 찾는 이들이 부쩍 많아졌다. 휴일이면 어딜 가야 바이러스에 대한 불안과 긴장 없이 편히 보낼 수 있을지 눈치 게임이 시작된다. 억새가 한참인 가을, 유명세를 탄 간월재나 천황재는 고려조차 않는다. 


고헌산이 떠오른다. 가까운 곳에 유명한 가지산이나 간월산, 신불산이 있어 그 덕에 고즈넉한 멋이 있고, 어딘가 모르게 더 매력적이다. 학교의 인기 많은 잘생긴 선배보다 그 옆에 조용히 책을 읽는 선배가 어딘가 모르게 더 매력적인 것처럼. 


바라보면 유별스레 정겹고 마냥 좋다. 처음 행복산행을 시작하게 됐을 때도 고헌산을 찾았던 이야기를 나눴다. 사방 어디를 봐도 쉬이 오를 수 있는 길이 없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인지도 모른다. 


울산시내에서 접하기 좋고, 산길이 짧아 그나마 힘이 덜 드는 와항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날이 흐려 그런지 땅이 축축하다. 가파른 흙길이 미끄럽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다리에 힘을 준다. 크게 내쉬는 숨소리와 바람에 사락거리는 잎사귀 소리만 남았다. 

 

▲ 와항재에서 고헌산 서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오르막
▲ 고헌산 서봉을 지나 정상으로 가는 길


7부 능선까지 우거진 숲길이 이어진다. 그 덕에 눈이 시원하다. 아직도 여름빛깔이 숲에 남았다. 오를수록 나무들의 높이가 점점 낮아지고 우리는 점점 더 말이 없어진다. 


서봉을 지나 정상으로 향하는 길, 몇 걸음 더 가면 정상이지만, 정상에 가는 것이 뭣이 중하냐며 우리는 조망데크에 퍼질러 앉았다. 무거운 배낭을 턱 벗어버리고 나니, 시원한 바람이 휙 불어오고 가을볕이 따스하다. 


아무도 없는 산길, 입고 있는 윗도리를 길 위에서 스스럼없이 갈아입고서 벗은 젖은 옷을 울타리에 척척 걸쳐 놓았다. 차례를 지내고 넣어온 커다란 배와 사과를 꺼내 함께 잘라먹는다. 사각거리며 단물이 온몸으로 스며드는 듯하다. 힘들게 걸어본 이만이 공감하리라.


상쾌함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 구름이 그득해 해 넘어가는 기척 없이 금세 하늘이 어둑해진다. 짊어지고 온 배낭을 열어 하루 쉬어갈 짐을 꺼낸다. 힘없는 조그만 나일론 텐트가 한없이 아늑하다. 함께 텐트 안에 둘러 앉아 산하에서 싸온 햄버거를 꺼내 먹는다. 배낭 안에서 짓눌려 이리저리 찌그러져있어도 맛은 일품이다. 따뜻한 핫초코도 후식으로 호호 불어마시며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두런두런 나눈다. 


작은 텐트에 웅크리고 있어 찌뿌둥한 허리도 펼 겸 다 함께 텐트 밖으로 나온다. 감탄사가 터진다. 한가위 보름달은 구름에 가려도 그 환한 빛을 어김없이 뽐낸다. 램프 없이도 길이 환하다. 바람에 구름이 흘러가다 높은 산들에 막혀 이이벌에 그득 고였다. 신라시대의 삼벌이 울주의 이이벌, 양산의 모래벌, 경주의 서라벌이었단다. 산정에서 바라보니 구름을 품은 이이벌 너른 벌판이 푸근하다. 달구경 구름구경에 추위가 온몸을 감싸도록 알아차리지 못한다. 찬 콧등으로 말간 콧물이 난다. 

 

▲ 한가위 달무리를 바라보며

 

▲ 구름들이 이이벌에 그득 고였다

콧물이 나면 두려운 마음이 드는 요즘이다. 내도록 하염없이 달빛구경하고 싶은 마음은 접어두고, 텐트 속 침낭으로 몸을 집어넣는다. 추위가 가시고 따스함이 몸을 감싸니 온몸의 긴장이 스르륵 풀리며 잠으로 빠져든다. 

 

▲ 물들어가는 나무들과 길 따라 피어난 쑥부쟁이

 

▲ 서봉 아래 조망데크에서 만나는 이이벌

 

▲ 하룻밤 쉬어가게 해준 고마운 장소


기분 좋은 새소리에 눈을 뜬다. 따스하고 기분 좋은 가을아침이다. 맑은 볕이 온몸을 감싼다. 서늘한 바람에 재채기가 나도 마냥 좋다. 배낭에 다시 모든 짐을 고이 넣는다. 흔적을 흘리지는 않았는지 둘러본다. 산을 찾는 산객의 기본적 예의다. 

 

▲ 올해는 유난히 억새가 빨리 지고 있다

 

▲ 하산 길에 만난 청명한 하늘

 

▲ 이이벌과 영남산무리

해가 오르며 점점 하늘의 빛이 더욱 청명해진다. 쨍쨍한 볕에 눈이 따끔하다. 벗이 선크림을 건넨다. ‘봄볕에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에 딸내미 내보낸다’는 말처럼 이로운 가을볕을 만끽하겠다고 답한다. 발걸음이 가볍다. 내려가는 걸음마다 아쉬움이 남는다. 


노진경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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