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머무르는 울산이 되려면

홍정인 로컬 기획자 / 기사승인 : 2021-01-20 00:00:58
  • -
  • +
  • 인쇄
청년 공감

해마다 대학교 졸업 시즌이 되면 지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울산을 빠져나간다. 울산은 주력산업 종사자가 아니면 남아있기 어려운 도시인 걸까? 인터넷을 뒤져보니, 울산의 인구 구조는 1997년 광역시 승격 후 산업 성장과 함께 증가하다 고용 상황 악화에 따라 감소한다. 일자리로 유입된 인구가 그대로 빠져나가는 추세다. 도시 자체가 일자리와 학업을 위해 잠시 머물러야 하는 거점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는 것이다. 울산이 개인이 머물고 싶은 지역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답을 ‘로컬’에서 찾는다.

 

‘로컬(local)’이라는 말을 직역하면 지역이다. 그런데 지역이라는 말은 지방의 변두리 이미지와 중앙의 하부 조직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런 부정적 맥락으로부터 단어를 떼어내고자 한 시도가 있었다. 도시 콘텐츠 기업, 어반 플레이가 만든 <아는 동네> 매거진이나 <로컬의 진화> 등의 책에서부터 지역 대신 ‘로컬’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는 비교적 객관적으로 느껴지는 외래어를 통해 지역의 근본적인 의미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로컬에 관해 논의하는 책이 공통으로 제시하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행복의 다양성, 그리고 로컬이라는 더 가깝고 더 친근한 생활 반경에서도 행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개인의 가치관에 따른 취향은 점점 세분화되고,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과 가치관에 맞는 공간 및 지역에 모인다. 코로나19로 도시 중심적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을 받쳐주던 기존의 신념이 크게 흔들리자, 로컬화는 더욱 가속을 냈다. 사람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과 안전(그것이 경제적 안전이든, 보건적 안전이든)이 공존할 수 있는 장소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나는 어디에 살 것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질문하면서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로컬 기반 사회의 사례로 목포의 ‘괜찮아마을’이 있다. 괜찮아마을은 삶의 방식이 도시의 기존 방식과 달라도 괜찮다는 생각에 공감하는 청년들이 만든 공동체 생태계이자 자생적 마을이다. 이들은 도시를 벗어나 로컬에서 자신의 삶을 일구면서, 다름 안에서 나름의 의미를 발견하기도 한다. 괜찮아마을에서의 6주 프로그램에 참여한 외부 청년 60명 중 30명이 목포에 남았다. 청년들이 오래 머무는 로컬은 무엇이 다른가? 다르게 질문해보자. 청년들이 타 도시로 나가는 로컬은 무엇이 문제인가? 울산의 인구이동을 보면, 울산에서 타 도시로 나간 순유출자 중 20대의 유출인구가 40%로 가장 많다.(동남지방통계청, 2018년 기준)

 

나는 대학 진학으로 울산에 유입한 청년이다. 줄곧 서울과 경기도에서 살다가 대학 입학부터 졸업까지 4년을 울산에서 보냈다. 당시 타지에서 온 대학생들이 적지 않았음에도 다들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인지 조용했다. 기숙사와 학교 밖에서 내가 즐거울 수 있는 곳은 어디인지, 나와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은 어딜 가야 만날 수 있는지 보이지 않아 막막하고 외로운 날이 계속됐다.

 

타지 청년으로서 겪은 답답함은 주로 ‘없음’에 관한 불만이었다. 무엇이 없는가? 놀 수 있는 문화, 청년을 위한 공간, 지역을 이동할 수 있는 편리한 교통수단, 심지어 영화관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상영작까지. 이 모든 것이 없음이다. 도시 속 단절과 부재에 개인이 맞설 방법을 몰라 좌절한 뒤로 울산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머물러야만 하는 도시에서 별다른 기대 없이 지내다 졸업만 하면 떠나리라고 단념했다. 중간중간 좋은 사람들을 만나 뒤늦게 울산에서 행복할 수 있었지만, 졸업 후에도 남을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였다.

 

졸업을 코앞에 두고 갑자기 울산에 남겠다고 결정한 것은 청년과공간발굴단 활동으로 상북면의 ‘교육공동체 판’을 인터뷰했을 때부터다. 교육공동체 판이 강조하는 것 중 하나는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터뷰 답변 중 “아이들에게 있어 모든 삶의 선택은 개별적이겠지만, 문제는 많은 선택지 중에 대부분 아이들이 선택하는 건 항상 마을 밖에 있다”라는 말이 마을의 공통된 문제 의식이었다. 그래서 판은 선택지 중에 마을(로컬)도 들어갈 수 있음을 마을교사의 형태로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집에 오는 길 내내 판의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남았다. 내 얘기였다. 울산이 가진 선택지를 다 모르면서(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울산을 판단하려던 지난 생각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서울만이 행복의 조건이 갖춰진 곳이라 믿었던 청년이 로컬이라는 대안을 피부로 실감한 계기였다. 여전히 내가 울산에서 지속 가능하게 행복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걱정과 기대가 공존하지만, 나는 가보지 않은 길을 시도하려는 기대를 좀 더 꽉 쥐었다.

 

내가 깨달은 것은 울산에서 느낀 단절과 부재가 사람의 부재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내가 인터뷰하거나 만난 울산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이 직면한 물음에 삶으로써 답을 써 내려가는, 사람 자체가 콘텐츠인 진짜들이었다. 상북마을 교육공동체 판과 같이. 그러자 있는 곳으로 떠나려는 마음이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드는 삶을 살아보자’는 결심으로 바뀌었다. 울산에 없는 것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회적인 맥락 안에서 잘 담아 지역과 연결해 주는 매개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이 도시가 품은 가치와 자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건, 어쩌면 울산이 지닌 역사와 자연, 사람의 이야기를 잘 보존했다가 적절하게 들려주는 곳이 없어서였는지도 모른다. 로컬이 우리의 이야기가 담긴, 우리의 장소가 될 때, 유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지역에 모이고 머문다. 결국 이야기가 사람과 삶, 사람과 사람, 삶과 삶을 연결한다. 이야기가 로컬을 풍성하게 한다.

 

청년이란, 기성세대의 질서와 합리성에 “왜?”라는 물음을 던지고 자신의 답을 찾아가는 사람이자 새로운 시대정신을 만들어가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울산을 선택한 청년이 울산을 떠나려 했던 그때의 청년에게 묻는다. 왜 서울을 갈망하는가? 당신이 꿈꾸는 행복은 어떤 모양인가? 이곳에선 여전히 불가능한가? 제안한다. 노잼도시라는 오래된 말버릇을 지우고 자기 ‘삶’의 무늬를 그려갈 수 있는 공간을 함께 열자. 더 이상 ‘없어서’ 불만을 갖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불만을 원동력 삼아 로컬 창작자가 되자. 무한 경쟁과 기술 산업 중심의 생활 반경에서 잠시 멈춰 우리의 이야기를 지역에 담는 방법을 고민해 보자. 우리는 이미 만들어진 로컬에 가는 게 익숙하다. 하지만 우리가 이곳에 우리 이야기를 심어 놓는다면 울산도 청년들이 머무는 로컬이 될 것이다. 

 

또한, 청년을 품은 지역사회에게도 제안한다. 로컬을 만들어가는 개인의 스토리(story)가 살아남고, 그것이 모여 도시의 히스토리(history)가 될 수 있도록 지역 청년들의 시도와 노력에 경청과 응원의 자세가 필요하다. 이들이 사회 기반의 도움이 필요할 때 협력할 수 있는 동료가 되어야 한다. 지역 사회도 나서야 한다. 

 

(호박) 홍정인 로컬 기획자

 

홍정인 로컬 기획자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홍정인 로컬 기획자
뉴스댓글 >

오늘의 울산 이슈

주요기사

+

많이 본 기사

정치

+

경제

+

사회

+

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