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태학, 피서산장

문영 시인 / 기사승인 : 2020-12-23 00: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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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발로 읽는 열하일기

‘태학유관록’은 연암이 열하에 도착한 1780년 8월 9일부터 8월 14일까지 태학에서 머물던 6일간의 기록이다. 열하일기의 주요 기록이 이 기간에 이뤄졌다.

태학(열하문묘)

연암 일행은 고난의 여정인 고북구를 거쳐 1780년 8월 9일 열하에 도착했다. 오전에 그들이 머물렀던 숙소인 태학에 들었다. 태학은 오늘날 열하문묘다. 문묘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다. 당시 열하문묘는 곡부(공자의 고향)의 공묘와 북경의 국자감과 더불어 3대 문묘였다. 열하문묘는 1776년 건륭제 때 건립해 1780년에 완공됐다. 청나라 멸망과 일제강점기 시대를 거치면서 폐허가 됐다. 1948년 승덕제1중학교로 사용돼 담만 일부 남아있던 것을 중국 정부에서 2013년 복원했다. 열하문묘 정문인 대성문을 들어가면 비정(碑亭, 비석을 보호하기 위해 지은 전각)이 있는데, 건륭제의 친필인 ‘열하문묘비기’가 있다. 비정 뒤가 대성전이다. 규모는 국자감 대성전에 비해 작고 단출하다. 정면에는 공자의 소상과 제례 악기가 있고, 좌우에는 공자 제자들의 위패가 놓였다.


연암 일행이 묵었던 숙소는 열하문묘 정문 옆에 ‘학부(學府)’라는 현판을 단 정문이 따로 있다. 입구 문을 지나 또 하나의 문을 열면 뜰 마당을 지나 ‘명륜당(明倫堂)’ 현판이 붙은 건물이 나온다. 뜰 좌우로 각각 다섯 칸 건물이 있는데 비장(군인)과 역관 등이 사용했다. 정사와 부사 등은 명륜당 뒤채에 있는 재실을 사용했다. 연암은 박명원 정사와 같이 동쪽 재실에서 머물렀다. 이곳에서 연암은 청나라 학자 윤가전, 기풍액, 왕민호, 학성, 추사시 등을 만나 필담을 나눴다. 연암이 쓴 ‘태학유관록’을 비롯한 ‘경개록’ ‘심세편’ ‘산장잡기’ ‘피서록’ ‘행재잡록’과 티베트 불교에 관한 내용을 다룬 ‘황교문답’ ‘반선시말’ ‘찰십륜포’ 등 <열하일기> 절반 정도 되는 분량이 이곳에서 메모했거나 필담한 사실을 토대로 이뤄졌다. 이곳 태학은 <열하일기>의 산실인 셈이다.
 

▲ 열하문묘 표지.


▲ 열하문묘 명륜당.


피서산장(避暑山莊)

피서산장은 현재 하북성 승덕시에 있는 청나라 여름 궁전이다. 피서산장은 1703년(강희 42)에 만들기 시작해 89년이 걸려 건륭제 때인 1792년에 완공됐다. 피서산장은 20여 채의 건축물이 있으며, 북경 이화원의 두 배에 달하는 564만 평방미터에 담장 둘레만 10킬로미터에 이른다. 담장은 만리장성으로 돼 있다. 그래서 피서산장을 ‘강희제의 만리장성’이라 한다. 다른 이름으로 소주의 졸정원과 유원, 북경의 이화원과 더불어 중국 4대 정원으로 입에 오르내리면서 ‘열하행궁’, ‘승덕이궁’으로 불린다. 


피서산장은 궁정구·산악구·평원구(초원구)·호수구 등 4개 구역으로 구분한다. 이 4개 구역을 따라 기행과 관람을 하면 편리하다. 

 

▲ 피서산장 답사 코스.

 

▲ 피서산장 정문 앞 박지원비.


먼저 궁정구는 피서산장의 정문인 여정문에서 시작된다. 여정문의 편액에는 중앙 한자를 포함해 만주어·티베트어·위구르어·몽골어 등 5개 민족어가 쓰여 있다. 당시 청나라가 통치한 민족을 아우르고자 한 회유와 포용의 정책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정문을 통과하면 외오문이 나오고, 외오문을 지나면 내오문이다. 내오문 앞에는 좌우로 서조방과 동조방이 있다. 현재 피서산장 박물관 제1전시실로 사용하고 있는 동조방이 조선 사신인 정사와 부사가 대기한 곳이다. 연암은 외오문까지는 들어왔다. 여기서 정면에서 보면 ‘피서산장’ 현판이 붙은 내오문이다. 이 문을 들어가면 황제가 정사를 보던 담박경성전이다. 담박경성전은 1710년(강희 49)에 건립됐다. 바깥뜰에는 쭉쭉 뻗은 소나무를 심어 소박하면 장중한 정취를 자아낸다. 실내에는 ‘담박경성(澹泊敬誠)’이란 편액이 황제 자리 위에 걸려 있다. 벽에는 황여전도(청나라 때 전국지도)와 경직도(농사짓는 과정을 그린 그림) 병풍과 여러 가지 집기들이 놓였다. 담박경성전 뒤편 사지서옥은 황제가 휴식을 취하거나 주요 인사를 접견하는 공간으로 5칸 건물이다. 다음 건물은 십구간전으로 황제를 보필하는 최측근들이 사용하는 곳이다. 십구간전 뒤편 연파치상과 운산승지란 건물은 황제와 황후가 기거하는 생활공간이다. 담박경성전 동쪽에는 송학재·계덕당·창원루·만학송풍 등의 건축물이 늘어서 있다. 송학재는 황태후가 기거하는 곳이고, 만학송풍은 강희제의 독서 공간이었다.

 

▲ 궁정구 내오문 편액 강희제 글씨.

궁정구 뒤쪽에는 산악구·호수구·평원구가 있다. 산악구는 피서산장의 약 80퍼센트를 차지하는데 진자욕·송림욕·이수욕·송운협 등 4개의 협곡으로 구분한다. 산악구는 미니버스를 타고 서북쪽으로 난 숲속 좁은 길을 간다. 일반통행이기 때문에 주요한 곳에 내려 관람하고, 이어오는 버스를 승객 수에 맞춰 타고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 산악구의 주요 관람 장소는 ‘사면운산’이라는 정자, ‘방학정’, ‘고구정’이라는 정자가 있는 피서산장 만리장성 위를 들른다. 특히 ‘고구정’에서는 보타종승지묘와 수미복수지묘 등의 외팔묘 풍경을 발아래에서 볼 수 있다. 또 이곳 아래에는 광원궁이라는 도교 사원이 볼 만하다. 여기서부터 산악 아래로 내려가는데 중간 언덕에는 피서산장 중에서 절경인 ‘청풍녹서’가 있다. 청풍녹서는 푸른 오동나무와 푸른 단풍나무 숲을 섬처럼 조성했다. 이곳은 구경을 놓치면 안 되는 곳인데 나는 구경을 놓쳐버렸다. 너무나 많은 인파 때문이었다. 다음으로 울창한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송운협을 지나 봄이면 배꽃 향기로 골짜기를 채우는 ‘이화반월’을 가면 된다. 이곳을 거쳐 호수구 가까이 있는 ‘방원거’에 도착한다. 

 

▲ 산악구 장성.

평원구는 피서산장의 동북쪽에 있는 초원 지역이다. 평원구에는 만수원(萬樹園)이라는 넓은 초원과 숲속 길가에 정자와 연못·절·탑·헌(軒)이라는 창이 달린 작은 정자와 시비(詩碑) 등을 곳곳에 배치해 놓았다. 만수원은 건륭제 때 성대한 규모의 연회를 하던 장소로 각종 가무와 마술·잡기·불꽃놀이 등을 했다. 연암이 기록한, 등불로 글자를 쓴 ‘만년춘등기’와 ‘매화포기’에 나오는 불꽃놀이 행사는 이곳 만수원에서 벌어졌다. 평원구에서 가장 큰 사찰인 영우사는 1751년(건륭 16)에 세웠다. 만수원 동북쪽에 있다. 사찰 뒤편에 높이 솟아있는 사리탑(육합탑)은 9층으로 66미터 높이에 팔각형으로 여덟 군데마다 불상이 부조돼 있다. 만수원에서는 몽골포(蒙固包)라는 게르 촌이 있다. 청나라 때 몽골 왕과 왕족들이 머물렀던 곳이다.

 

▲ 평원구 영우사 탑과 게르.

호수구는 징호·여의호·상호·하호·경호·은호·서호·반월호 등 8개의 인공 호수가 있다. 여의주는 호수구에서 가장 큰 인공섬인데 ‘창랑서’와 ‘연우루’ 누각이 유명하다. 연우루는 5개의 기둥으로 지어진 2층 누각인데 호수구에서 가장 빼어난 풍광을 연출한다. 연우루에서 호수 건너편 동쪽에는 금산도(金山島)가 있다. 금산도에는 상제각·천우함창·경수운잠·방주정 등이 있는데 그중에서 상제각은 3층 누각으로 호수구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그 외 은호의 수심사, 은호와 경호 사이에는 문원사자림, 경호에는 계득당 등이 있다. 호수구는 월색강성·여의주·환벽 등의 인공섬에 지경운제라는 둑으로 연결했다. 강희제는 피서산장 절경 36경을 네 글자로, 손자 건륭제 36경을 세 글자로 편액에 기록했다. 피서산장 승경은 총 72경이다. 이 중 31곳이 호수구에 있다. 호수구 안쪽에는 천변석과 ‘열하’ 표지석이 있다. 

 

▲ 호수구 연우루.

 

▲ 호수구 상제각.

 

▲ 호수구 열하 표지석.

문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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