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원영미 기억과기록 회원 / 기사승인 : 2020-11-18 00: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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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

 

바깥 나들이하기에 참 좋은 날입니다. 안장을 바짝 낮춘 자전거를 타고 태화강 국가정원을 이리저리 돕니다. 선생님 손을 잡고 소풍 나온 꼬마들이 가을 강변의 풍경을 더욱 다채롭게 합니다. 어떤 꽃이 이보다 더 예쁠 수 있을까요? 꼬마 손님들의 앞길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자전거에서 내려 그 옆을 조용히 지나갑니다. 


오산을 지나가다 중구지역을 소개하는 안내판을 만납니다. 안내지도에 ‘강정제당’이 표기돼 있네요. 현재 우정동은 옛 우암동과 강정동, 창성동, 상안동 일부가 합쳐져 만들어진 동네라고 하는군요. ‘강정마을 제당이 남아있었구나!’ 오늘 목표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강가를 따라 한참을 달려 구 삼호교를 넘습니다. 다리 위에서 떼 지어 노는 물고기를 한참 바라보다, 국가정원교 밑을 지나고 십리대밭교, 태화교 아래를 거쳐 울산교를 건넙니다. 엄마에게 들러 얻은 마른 멸치며, 귤과 감이 담긴 까만 비닐봉지를 자전거에 주렁주렁 달고 ‘강정제당’을 찾아 나섭니다. 우정삼거리 근처 어딘가에 있을 듯합니다. 제당은 노거수인 당산나무와 함께 있기 마련이니, 키 높은 나무를 찾으면 됩니다. 그러나 실패입니다. 건물들이 당산나무를 숨겨버렸나 봅니다.


이럴 때 지역전문가의 도움을 얻어야 합니다. ‘성남동에서 우정삼거리로 가는 도로에서 좁은 골목길로 꺾어 들어가면…’이라는 결정적인 정보를 줍니다. 이미 지나쳐 온 것 같습니다. 이제 약간의 발품만 팔면 됩니다. 우정삼거리에서 성남동 쪽으로 거슬러 갑니다. 그러다 건물 사이에 낀 채 남아있는 ‘효자성균생원송도선생유허비’를 만납니다. 빠른 도시의 변화 속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것이 신기합니다. 다시 몇 미터 가지 않아 골목길을 만납니다. 예감이 좋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700여 년을 살아온 회화나무를 만납니다. 


두 그루의 당산나무 아래 소박한 모습의 제당이 있습니다. 시멘트벽에 기와지붕을 얹었네요.그런데 700년 된 노거수라는 것과, 성황단과 박윤웅에 대한 안내 설명이 있을 뿐 강정마을 제당이라는 설명은 없습니다. 


제당은 마을 주민들이 공동체의 안녕과 개개인의 복을 기원하는 장소입니다. 일 년 중 좋은 날을 골라 마을 공동제사를 지냈지요. 마을제당은 서낭당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서낭당은 성황당에서 생겨난 말이지요. 성황당은 성(城)과 황(隍: 마른 해자), 당(堂: 당집-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집)을 합친 말입니다. 성이 적의 침략을 막기 위해 땅 위에 쌓은 장벽이라면, 황은 성벽 아래를 땅 밑으로 파고 들어간 긴 구덩이 형태의 장벽이지요. 그렇게 보면 성과 황은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오랜 세월 동안 성벽(울타리)은 성안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는 보호막이었지요. 공동체의 안녕에 대한 염원에서 성과 황에 신격이 부여됐고, 그렇게 성황신이 탄생했습니다. 성황신을 모신 집이 성황당입니다. 마을마다 성황당이 있었고, 지역에는 국가 차원의 제사가 이뤄지는 성황단이 있었지요. 성황단에 세워진 사당이 성황사입니다.


우정동에서 만난 제당과 당산나무는 ‘강정제당’, ‘우정동제당’, ‘우정동 성황당 신목’ 등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이 과거 울산의 성황단이 있던 곳이라고도 하네요(한삼건, <울산택리지>, 도서출판 종, 2011 참고). 조선시대 여러 차례의 전란으로 주요 공공건물이 불타 울산의 행정 중심이 반구동 일대에서 현재 북정동 일대로 옮겨올 때, 성황단도 옮겨온 듯합니다. 고려 건국 이후 울산의 성황신은 계변천신이었고, 박윤웅이 계변천신으로 믿어진 탓에 우정동의 제당 앞에 박윤웅과 성황단에 대한 긴 설명이 있나 봅니다. 


마을 토박이 주민들이 이곳 제당에서 매년 정월 열나흘 자정에 성황제를 유교식으로 치른다고 설명돼 있네요. 이곳이 마을제당이든, 아니면 울산의 성황단이든,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던 간절한 마음들이 오가던 곳임이 분명합니다. 언젠가 체계적인 조사연구가 이뤄진다면, 이곳도 자신의 정확한 이름을 찾을 수 있겠지요. 그런 날이 오기를, 그리고 과거의 그들처럼 코로나19로 위협받고 있는 우리의 일상이 어서 안정되기를 바라며 걸음을 돌립니다.


원영미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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