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빠진 날

김윤경 글 쓰는 엄마 / 기사승인 : 2021-01-21 00: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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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기

오늘은 귀 빠진 날이다. 아이들이 정성껏 엄마 선물을 만든다. 둘째는 몰랑이 다이어리 속지를 두 장 꺼내 테이프로 연결하고 스티커도 붙였다. 여섯 살이 된 둘째는 요즘 자기 이름 쓰기에 열심이다. 특별히 엄마 이름도 적어주고 싶었나 보다. 속지 위에 네모난 흰 종이를 붙여서 ‘김’을 쓴다. 자기 이름에도 있는 ‘김’은 무사통과했으나 ‘윤’의 이응을 적고는 고심한다. “엄마, 이거야?” 몇 번을 물어본다. 남은 내 이름을 슬쩍 적어줬다. 둘째가 흡족해하며 건넨다. “엄마~ 여기에 그림 그리면 돼.” 그림판 선물이다. 


아홉 살이 된 첫째는 고급기술을 가졌다. A4 종이를 반으로 접어 입체카드를 만든다. 종이를 열면 엄마와 자기가 손잡고 있는 그림이 나온다. 우리 사이에 하트도 그린다. 장미 모양, 보석 모양, 몰랑이 마스킹테이프로 꾸민다. 끝으로 첫째가 가장 아끼는 그라데이션 속지에 편지를 적었다. 


‘사랑하는 엄마♡에게 엄마 저 00이에요.^-^ 생일 축하드려요.^-^♡♡♡♡♡♡♡♡ 사랑해요.♡♡♡ 축복해요.♡♡♡ 절 나아주시고 길러줘서 감사해요.♡♡♡ 힘내세요.♡ 제가 있잔아요.♡ 이제부터….. 1.동생과 자주 싸우지안기 2.욕안쓰기 3.폭력안하기 4.짜증자주안내기 5.엄마아빠말잘듯기 이것들을 꼭 지킬께요.♡♡♡ ♡사랑해요♡’ 


배 갈라서 낳은 보람이 있다. 자기가 고쳐야 할 점들을 카드에 적은 첫째의 마음이 귀엽다. 엄마 이름을 여러 번 썼다가 지우는 둘째의 마음도 예쁘다. 엄마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어서 자기만의 선물을 생각해내는 그 마음들이 고맙다. 아끼는 속지를 고르고 꾸미는 과정이 이미 선물이다. 어느덧 자녀에게 생일카드를 받는 나이가 되다니 신기하다.


아침에 남편이 태어나줘서 고맙다며 꼬옥 안아준다. 남편 품이 따시다. 아이들도 눈 뜨자마자 “엄마 생일 축하해. 빨리 저녁이 되면 좋겠어. 엄마 생일 축하하게.” 눈에서 말에서 몸짓에서 설탕을 맛본다. 멀리 사는 오빠야가 당근케이크를 보냈다. 생일 때 초코나 생크림만 하다가 당근이라니 아이들도 기대감이 크다. 친정엄마가 저녁에 생일상을 차려 주신다. 뭐 먹고 싶냐길래 ‘잡채’를 말했다. 미리 며느리 생일 챙긴다고 다녀가신 시어머니도 전화로 다시 축하해주신다. 복에 겨운 생일이다. 가깝게 지내는 이웃 언니들의 축하와 선물에 생일 기분 제대로 난다.


매년 생일에 축하해주던 아빠도 생각난다. 아빠는 가족들의 생일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셨다. 어른 여섯에 아이가 다섯인 11명의 생일을 챙기셨다. 사랑하는 사람의 생일을 챙겨주고 챙김받는 것은 감사하고 기쁜 일이다. 요즘 나도 나에게 선물을 주고 있다. 학기 중에 읽고 싶어도 참았던 책들을 섭렵해가고 있다. 수업 진도 따라가느라 전공 책만 읽기에도 빠듯했던 학기가 끝나고 방학이다. 소설책을 도장 깨기하듯 보고있다. 끌리는 작가가 펴낸 책들을 다 찾아 읽는 식이다. 동네에 번듯한 도서관 대출 권수가 5권으로 늘었고 아파트도서관도 5권씩 빌릴 수 있으니 넉넉하다. 2주간 빌려 읽고 반납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눈에 불을 켜고 밑줄 그어가며 전공 책을 파먹다가 사각사각 넘어가는 일반 책을 보니 청량하다. 


몇 번째 생일이 마지막일지 알 수 없다. 만약 자신의 죽을 날을 안다면 그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이거야말로 모르는 게 약일 것이다. 유통기한이 언제인지 안다면 죽음의 묘미가 줄어들 것 같다. 올해는 감사일기를 적기로 했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드문드문 감사했던 순간을 남기고 싶다. 적다 보니 점점 사소한 거에도 감사하게 된다. 감사를 찾는 눈이 밝아진다. 마음부자가 된 기분이다. 오늘은 일 년에 한 번뿐인 생일, 축하와 선물 무엇보다 와 닿은 마음 하나하나에 감사한 날이다.


김윤경 글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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