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워킹그룹’을 다시 문제 삼는다

한기양 울산새생명교회 담임목사, 평화통일교육센터 대표 기자 / 기사승인 : 2021-01-15 00: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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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지난 9일 북측의 <[노동신문> 1~6면에 요약 보도한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의 사흘간 사업총화보고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남조선당국에 우리의 정당한 요구에 화답하는 만큼, 북남합의들을 이행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만큼 상대해주어야 한다”며, 아울러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가까운 시일 안에 ‘북남관계가 다시 3년 전 봄날과 같이’ 온 겨레의 염원대로 평화와 번영의 새 출발점에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3년 전 봄날’은 2018년 4월 27일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첫 정상회담인 판문점회담과 4·27 판문점선언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직접 입에 올리지 않으면서도 그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보고에서 밝힌 “북남관계에 대한 원칙적 입장”을 통해 “북남관계에서 근본적인 문제부터 풀어나가려는 입장과 자세를 가져야 하며 상대방에 대한 적대행위를 일체 중지하며 북남선언들을 무겁게 대하고 성실히 이행해나가야 한다”고 천명했다.


요컨대 김 위원장은 ①근본문제부터 해결 모색 ②적대행위 중지 ③남북합의 성실 이행이라는 ‘3가지 기준’을 내놓으며, 화답할 의지가 있으니 남쪽에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라고 ‘조건부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밝힌 셈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가까운 시일 안에 북남관계가 다시 3년 전 봄날과 같이 평화와 번영의 새 출발점에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힌 대목에 비춰 보면,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낮다고 보기 어렵다. 2019년 2월 북미정상회담 합의 무산 이후 장기 교착국면을 벗어나지 못한 남북관계의 현실에 비춰 그나마 나쁘지 않은 대남 기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3년 전 봄날로 돌아갈 수 있다”는 표현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와 관련해 김 위원장은 “북남관계의 현 냉각국면이 어느 일방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해소될 일도 아니라고 판단”한다며 “파국에 처한 현 북남관계를 수습하고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김 위원장은 “현재 남조선당국은 방역협력, 인도주의협력, 개별관광같은 비본질적인 문제들을 꺼내놓고 북남관계 개선에 관심이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고 짐짓 비판적 태도를 취했다. 김 위원장은 “북남관계의 현 실태는 판문점선언 발표 이전 시기로 되돌아갔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며 통일이라는 꿈은 더 아득히 멀어졌다. 남조선에서는 조선반도 정세를 격화시키는 군사적 적대행위와 반공화국 모략 소동이 계속되고 있고 이로 말미암아 북남관계 개선의 전망은 불투명하다”고 짚으며 이렇게 강조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첨단 군사장비 반입과 미국과의 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해야 한다는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를 계속 외면하면서 조선반도의 평화와 군사적 안정을 보장할 데 대한 북남합의 이행에 역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남조선당국이 비정상적이며 반통일적인 행태들을 엄정관리하고 근원적으로 제거해버릴 때 비로소 공고한 신뢰와 화해에 기초한 북남관계 개선의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새해 벽두 북측의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 소식을 접하면서 우리의 처지를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년간 남북관계를 발전시킬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는 안타까움과 함께 그나마 아직 기회의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는 기대감이 교차하고 있다. 우리가 보다 자주적이었다면, 보다 창의적이었다면…


남북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는 ‘한미동맹’이라는 정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측은 나름 한미동맹의 정글을 벗어나기 위해 함정과 부비트랩(booby trap)을 피하려 하다가 ‘한미워킹그룹’이라는 늪에 빠지고 만 것이다.


한미워킹그룹은 지난 2018년 11월 북 비핵화와 대북제재, 남북교류 협력사업 등을 한미 실무자들이 수시로 조율하자는 취지에서 설치됐다. 외교부를 중심축으로 청와대와 통일부, 국방부, 국정원 등이 회의 주체로 참석했다. 출범 초에는 양국 간 긴밀한 소통을 통해 비핵화 협상과 남북관계의 진전을 기대했지만 결과적으로 주로 대북제재 이행에 초점이 맞춰졌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남북관계 진전을 훼방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인도적 차원에서 ‘타미플루'를 북측에 보내는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를 운반하는 트럭이 대북제재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가로막기도 했다. 미국 측에서는 통일부가 워킹그룹에 참여함으로써 북측 문제에 대한 각종 정보를 모으는 통로가 돼 왔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미국 측이 제공해야 할 북미 간 협상 진행 상황 등에 대해서는 정보가 충분히 공유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한미워킹그룹은 2018년 남과 북이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평화와 번영, 통일의 길로 성큼 달려가자 미국은 그해 11월 한미워킹그룹을 만들어 남북관계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으며, “실무협의체일 뿐”이라 변명하지만 그 실무협의체가 남북관계 위에 올라타서 간섭과 방해를 일삼아 온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내정간섭, 주권침해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은 여전히 ‘FFVD(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 최종적이고 완전하며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위한 조율을 더 강화할 것이라며, ‘사실상 북측이 무릎 꿇지 않는 한 대화하지 않겠다는 뜻'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근본적인 문제가 가로놓여 있는 상황인데도 남측은 지금도 여전히 남북관계 파탄의 해결책을 다시 한미공조에서부터 찾으려 하고 있다. 미국의 고압적인 자세와 내정 간섭적인 태도, 비핵화와 제재라는 전제하에서만 모든 국면을 관리하려고 하는 ‘한미워킹그룹’과 남측 정부의 무능한 대응이 지금과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년간 북미, 남북정상의 역사적 합의가 전혀 이행되지 않은 데에는 한미워킹그룹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바이든 정부가 들어설 지금 남측은 ‘한미워킹그룹’을 문제 삼고 그 늪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래야 남북관계가 제대로 된 길로 갈 수 있을 것이다.


한기양 울산새생명교회 담임목사, 평화통일교육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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