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남읍 덕천고개 ‘수남주막’ 복원해야

김진곤 울산향토사도서관 관장 / 기사승인 : 2021-01-14 00: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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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의 울산

수남주막(水南酒幕)
 

▲ 수남주막 터 ©김정수 사진작가

교동리 반구대로 671번지 일대에 있었던 주막이다. 이곳은 국도 35호선이 지나가는 덕천고개의 고갯마루 서쪽에 있는 공터 일대로 처사(處士) 안상중(安相重)의 산소가 있는데, 이 주막과는 관련이 없다. 후손들이 화남정마을에 살고 있다. 


<조선지지자료>에 언양군 중남면(中南面)에 한자(漢字)로 ‘수남주막’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이 자료에 주막이 현재의 울산광역시 전역에 107곳이 기록돼 있다. 그 중 삼남읍에는 교동리 수남마을에 있었던 이 주막을 비롯해 교동리 수정마을의 ‘교동주막’, 가천리 강당마을의 ‘심천주막’ 등 3곳이 기록돼 있고, 그 위치도 필자에 의해 모두 확인돼 있다. 참고로 같은 영남알프스의 동쪽 산자락에 위치한 상북면에는 ‘궁근정주막’과 ‘능산주막’이 기록돼 있다. 


이 주막은 1953년경 폐업하기 직전에 현재 생존해 있는 김 모 씨가 함석집에서 ‘교동주막’처럼 간판과 봉놋방 없이 영업했다. 이곳에서 두부를 생산해 판매하고, 술안주로 내놓았다.

교동주막(校洞酒幕)
 

▲ 교동주막 터 ©김정수 사진작가

교동리 중남로 103번지 일대에 있었던 주막이다. 이곳은 교동리 수정마을 남주유소 앞 사거리에서 동쪽으로 신화리로, 서쪽으로 자수정로가 시작된다. 자수정로는 자수정동굴나라를 거쳐 상북면 등억리로 넘어가는 긴 고개다. 이를 갓들고개라고 한다. 이 길로 삼남읍의 불교신자들은 석남사와 간월사를 오갔고, 인근의 주민들은 땔감을 장만해 왔다. 


<조선지지자료>에 언양군 중남면에 한자로 ‘교동주막’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이 주막은 1970년대 초 폐업하기 직전에 초가집에서 간판과 봉놋방 없이 영업했다.

심천주막(深川酒幕)=짚으내주막
 

▲ 심천주막 터 ©김정수 사진작가

가천리 강당로 69번지에서 간판 없이 영업했던 주막으로 현재 강당사거리 동북쪽에 해당된다. 이곳은 가천리의 강당마을, 지내마을, 지푸내마을의 초입으로 예전에 장승을 세워둔 장승배기와 예전에 조정에서 하사한 나무로 제작한 열녀비를 보관했던 강당마을의 열녀각이 있었다.


<조선지지자료>에 언양군 중남면에 한자로 ‘심천주막’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인근의 주민들에게는 주막 앞에 흐르는 심천은 짚으내, 이 주막은 ‘짚으내주막’으로 더 알려져 있다. 


이 주막의 마지막 주모는 노고지리라는 별명으로 인심 좋기로 소문났다. 그 주모는 ‘짚으내주막’의 별칭만큼이나 속정이 깊어 돈 없는 길손들에게 희뿌연 뜨물국과 손님들이 먹다 남은 술이라도 모아 챙겨줬다. 그 소문은 꼬리를 물어 목마르고 배고팠던 길손들이 양산시 하북면 답곡리의 ‘술이방우주막[聲川酒幕]’을 지나치고 이 주막을 꼭 찾았다고 한다. 


이 주막은 봉놋방에 길손들을 받아 숙박도 겸했다. 이렇게 많은 돈을 모아 연봉마을의 밤나무 밭과 자수정을 생산했던 옥산(玉山) 일대에 많은 땅을 매입했다고 한다. 


이 세 주막 중에 수남주막이 있었던 덕천고개는 조선시대에 덕천역, 일제강점기에 언양심상소학교, 8.15 광복 직후에 중남초등학교 작천분교 등이 위치했던 곳으로 흥성했던 언양권의 관문이었다. 이 고갯마루에 수남주막을 덕천역과 함께 복원해 울산지역을 모두 아우르는 옛 주막문화를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기를 기대한다. 


김진곤 울산향토사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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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곤 울산향토사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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