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신미옥 호계고 교사 / 기사승인 : 2021-01-14 00: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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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칼럼

이 속담과 비슷한 뜻을 갖고 있는 말에는 ‘종이도 네 귀를 들어야 바르다’, ‘열의 한 술 밥이 한 그릇 푼푼하다’, ‘손이 많으면 일도 쉽다’가 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무슨 일이든 함께하면 수월하다는 뜻이다. 모두가 동의하듯 아무리 쉬운 일도 혼자보다 여럿이 할 때 더 신나고 효과적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백지장을 맞들기가 쉽지 않다. 


학년 초에 모든 선생님은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꾸려야 한다고 업무 담당 교사가 쪽지를 보냈다. 같은 학년에 들어가는 여러 교과 선생님들과 수행평가를 함께 해보고 싶은 마음에서 같이 할 선생님들을 찾아다녔다. 학교를 옮긴 처지라 누가 누구인지 이름과 얼굴도 서로 모른 상황에서 뜻을 모으기 쉽지 않았다. 계획서는 먼저 말을 꺼낸 내가 작성하고 제출했지만,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한 번 만나는 것도 어려웠다. 집단 지성이 발휘될 것으로까지 기대하지 않았지만 겨우 네 번 모였다. 계획했던 ‘한 주제 여러 교과 함께 적용하기 수행평가’는 시작도 못 해보고 학생 상담에 대한 내 경험 나누기 정도에 머물렀다. 수업 시간 같은 아이들을 만나는 사이였지만 교사가 서로 낯선 관계에서 공동의 무엇을 위해 협력하기는 무리였다. 그냥 혼자 북 치고 장구 친 느낌이었다. 그래도 좋았던 것은 빠듯한 상황에서도 모여 서로의 마음을 나눴다는 것. 교육적 어떤 문제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는 것, 서로 웃으며 이런저런 수다 덕분에 서로 잘 몰랐던 사이에서 조금은 이해하는 지점이 생겼다는 것. 이제 무슨 일이든 한 발 더 내디딜 수 있을 것도 같다는 것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서로 협력적 관계가 된다는 것은 꼭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이다. 


로티(Dan C Lortie)는 학교조직의 특징을 ‘달걀판’에 비유했다. 학교의 모습이 이와 닮았다. 교무실에 교사들이 함께 앉아 있지만, 교사들 사이에 교육적 대화가 오가는 학교는 흔치 않다. 교사도 서로 속내를 털어놓고 서로에게 힘을 주고받으며 ‘동료’로 지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 물리적으로는 같은 공간에서 심리적으로 섬처럼 떨어져 각자의 수업 준비와 업무에 바쁘다. 로티는 ‘고립’된 학교조직에서 ‘현재주의’, ‘보수주의’, ‘개인주의’의 문화가 생긴다고 본다. ‘현재주의’는 미래의 비전을 보지 못하고 당장 눈앞에 놓인 문제만 보는 것을 말한다. 문제 상황이 생겨도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며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바란다. 이런 일상 속에서는 새로운 변화에 저항하는 ‘보수주의’가 싹튼다. 현재주의와 보수주의가 자리 잡은 학교에서 협력의 문화가 생길 리가 없다. 교사들은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채 ‘외롭더라도 혼자인 게 낫다’고 느낀다.


교원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도입된 교원능력개발평가, 교원성과급제도가 시행된 지도 10년이 넘었지만 이 제도가 목적을 제대로 달성했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교사의 성과를 수치로 확인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학교는 학생의 성장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고, 학생의 성장은 눈에 보이지 않게 조금씩 이뤄진다. 더욱이 교사는 교육적 보람을 먹고 산다. 아이들이 어느 순간 훌쩍 성장했을 때, 교사들의 마음을 아프게만 했던 아이가 졸업식 날 펑펑 울며 교사에게 안길 때, 그런 보람 때문에 교직에 남아 있는 것이다. 이런 교사들에게 성과급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교사의 자존심을 훼손하는 행위다.
진정한 교육개혁의 길은 공교육에 대한 신뢰와 교사의 협력에서 비롯된다. 교직사회의 단절과 고립을 극복하는 비결은 교사를 믿고 교사들이 협력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다. 교사들을 서로 경쟁시키는 신자유주의 정책으로는 결코 교사의 잠재력을 키울 수 없다. 더디더라도 믿고 맡기는 것, 서로 협력하며 자신의 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 이외의 방법은 없다. 승진을 위해 필요한 점수를 얻기 위해 연구학교, 시범학교, 선도학교를 꾸린다. 학교를 옮기는 데 교사는 자신의 점수를 잘 관리 해둬야 한다. 필요한 교원연수시간을 채워야 하고, 담임도 해야 한다. 교사에게 자신의 점수를 관리하게 하는 행정으로는 교육적 성과 그 무엇도 기대할 수 없다. 


신미옥 호계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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