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트랑드의 행복을 기원하며

원영미 기억과기록 회원 / 기사승인 : 2021-01-13 00: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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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

동양이나 서양이나 전통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매우 취약했습니다. 재산상속에서 권한을 행사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았습니다. 게다가 종교적 관념과 인습이 사회질서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었죠. 16세기 프랑스에서 흥미로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 속에 베르트랑드가 있습니다. 


1538년 프랑스 레즈 강가에 사는 부유한 롤스 집안의 딸 베르트랑드 드 롤스는 강 건너편에 사는 마르탱 게르와 결혼했습니다. 부모가 결정한 결혼이었으며, 남편 마르탱은 14세였죠. 마르탱에게는 4명의 여자 형제가 있었습니다. 베르트랑드는 마르탱 가족과 친척이 사는 시골 마을의 일원이 됐죠. 


마르탱의 부모는 손자를 얻고 싶은 생각에서 어린 아들의 결혼을 서둘렀답니다. 그러나 결혼 후 8년 동안 ‘마법에 걸린’ 마르탱과 베르트랑드는 아이를 얻을 수 없었어요.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청년 마르탱은 매우 민첩했고, 검술과 곡예에도 능했지만, 성불구자로 인식됐죠. 칼싸움이나 권투를 했던 마을의 젊은이들이 얼굴을 검게 칠하고 여자 옷을 입고 마르탱 가족의 집 앞에 모여 포도주 통을 두드리고 종을 울리고 칼 소리를 내며 소란을 피우곤 했어요. 마르탱에게는 너무나 굴욕적인 경험이었죠. 마르탱은 마을에서의 생활이 싫었을 거에요. 


아이를 낳지 못하는 마르탱과 헤어지고, 교회법에 따라 재혼하라는 롤스 집안의 재촉에도 베르트랑드는 네 명의 시누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마르탱의 가족과 마을의 일원으로 적응해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법’이 풀렸고, 1548년 아기 상시가 태어났습니다. 그렇지만 마르탱의 마음의 상처는 깊었나 봅니다. 


마르탱은 아버지의 곡식을 훔친 뒤, 처벌이 두려워 가출했고, 이후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죠. 그동안 마르탱의 부모는 사망했고, 피에르 삼촌이 마르탱의 재산관리인이 됐습니다. 8년이 지난 뒤 어느 날, 마르탱이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 돌아왔죠. 베르트랑드를 사랑했고, 아들 상시에게 자상했으며, 마을 농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이웃과도 잘 지냈습니다. 얼마 뒤 딸도 태어났죠. 마르탱의 가족과 친척, 마을 사람들은 돌아온 마르탱을 환영했습니다. 발 크기가 다르다는 마을 구두장이, 마르탱을 “방탕하고, 온갖 못된 짓을 일삼는 행실이 나쁜 젊은이, 팡세트”로 알아보는 유랑자가 있었지만, 이런 의심은 모두 무시됐죠. 


돌아온 마르탱이 게르 집안의 소유지를 상업적으로 운영해 집안과 마을의 재산이 증가했습니다. 곡물·포도주·양모를 거래하는 농촌 ‘상인’이 된 거죠. 자신감을 얻은 마르탱은 그가 집을 비운 동안 재산관리를 해준 피에르 삼촌에게 회계장부를 넘겨줄 것을 요구했죠. 피에르 삼촌이 상속 재산의 일부를 감추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를 돌려받기를 원해 민사소송을 제기하죠. 어려서부터 키워온 조카가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한 피에르 삼촌에게 묻어뒀던 의심이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두 번의 재판이 있었습니다. 첫 재판에서 마르탱이 이겼지만, 곧 다시 체포됐습니다. 재판과정에서 마르탱은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고 스스로를 변호했죠. 그는 유창한 말솜씨에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피에르 삼촌은 마르탱이 가짜임을 증명하려고 노력하죠. 재판과정에 베르트랑드 뿐 아니라 가족과 마을 사람들이 증인으로 소환됐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이자 자상한 아버지로, 성실한 이웃으로 판결이 나려는 찰나, 전쟁에 용병으로 참전해 다리를 잃은 진짜가 나타납니다. 결국 가짜로 들통난 마르탱은 교수형에 처해지죠. 


사형 선고를 받은 가짜 마르탱은 ‘가짜 결혼’에 대한 베르트랑드의 역할에 대해 끝까지 침묵했고, 진짜 마르탱에게 아내를 가혹하게 대하지 말라고 설교합니다. 그는 그녀가 정숙하고 덕과 지조를 지닌 여성임을 입증하고 싶어 했죠. 그 마음은 재판의 모든 과정을 지켜본 판사 코라즈에게 전해졌죠. 그는 가짜 마르탱에 매료돼 있었습니다. 가짜 마르탱을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사람이며, 아름다운 아내를 사랑한 훌륭한 가장으로 본 것이죠. 다가올 시대에 적합한 가장으로 본 것입니다. 가짜 마르탱의 교수형 선고를 피할 수는 없었지만, 그가 만든 결혼과 가정을 지켜주고 싶었나 봅니다. 코라즈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가짜의 결혼생활(이것은 베르트랑드의 중혼이자 간음이기도 하죠)은 그가 악마의 도움을 받아 마술을 부린 것이며, 둘의 결혼은 크게 잘못됐지만 극히 옳기도 한 것이라 설명합니다. 가짜 마르탱이 부린 마술에 걸린 베르트랑드는 죄가 없다는 말이죠. 그리고 마르탱이 가출한 이후 베르트랑드가 정조를 지키며 가족을 유지해왔고, 여성은 약한 존재라며 그녀의 중혼과 간음을 처벌하지 않습니다. 대신 진짜 마르탱의 가출은 젊음의 탓으로 처리하고, 가짜 마르탱을 죽이려고 했던 피에르 삼촌을 처벌하지 않죠. 그렇게 베르트랑드와 딸은 살아남습니다(나탈리 제먼 데이비스, <마르탱 게르의 귀향>, 지식의 풍경, 2002, 영화 <마틴 기어의 귀향>, 영화 <섬머스비> 참조). 


베르트랑드는 남편이 가출한 뒤 8년 동안 명예와 정조를 지키면서 산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가짜 마르탱과의 결혼생활은 행복했지만 한편으로는 신으로부터 벌을 받지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피에르 삼촌의 계속된 위협으로 두 번째 재판의 고소인이 됩니다. 베르트랑드가 겪었을 내적 갈등이 느껴집니다. 코라즈 판사는 가짜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비극이라고 말합니다. 베르트랑드는 사랑하는 남편을, 딸과 아들 상시는 자상한 아빠를, 친척과 마을 사람들은 성실하고 유능한 이웃을 잃었기 때문이죠. 진짜가 돌아온 이후 베르트랑드와 아이들의 일상의 삶은 어땠을까요? 이후 그녀의 삶이 ‘비극’이 아니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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