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품은 새해 복사꽃

김루 시인 / 기사승인 : 2021-01-13 00: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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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세상

바람이 몹시 차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한파 소식에 몸이 절로 움츠려드는 날이다. 옥상에 물탱크가 얼어 따뜻한 온수가 나오지 않는다. 주전자에 물을 데워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는다. 코로나가 아니면 목욕탕으로 당장 달려가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불편한 마음에 짜증을 내다 어릴 적 생각에 혼자 피식 웃는다. 춥다는 핑계로 방에서만 빈둥거리는 내 눈에 고미숙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읽고 또 읽어도 새로운 게 열하일기다.

사흘간이나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바람에 어여쁘던 살구꽃이 죄다 떨어져 땅이 분홍빛으로 물들었구려. 긴 봄날 우두커니 앉아 혼자 쌍륙놀이를 하고 있사외다. 오른손은 갑이 되고 왼손은 을이 되어 ‘다섯이야’ ‘여섯이야’하고 소리치는 중에도 나와 너가 있어 이기고 짐에 마음을 쓰게 되니 문득 상대편이 적으로 느껴지외다. 알지 못하겠구려. 내가 나의 두 손에 대해서도 사사로움을 두고 있는 건지. 내 두 손이 갑과 을로 나뉘어 있으니 이 역시 물(物 )이라 할 수 있을 터이고, 나는 두 손에 대해 조물주의 위치에 있다 할 수 있지 않겠소? 그렇건만 사사로이 한쪽을 편들고 다른 한쪽을 억누름이 이와 같구려. 어제 비에 살구꽃은 죄다 떨어졌지만, 곧 꽃망울을 터뜨릴 복사꽃은 장차 그 화사함을 뽐내겠지요. 나는 또 다시 알지 못하겠구려. 저 조물주가 복사꽃을 편들고 살구꽃을 억누르는 것 역시 사사로움을 두어서인지.

사물을 바라보는 연암의 눈이 예사롭지 않다. 이 문장을 읽는 동안에도 여기저기서 한파 소식이 전해진다. 여기서 소식이란 꼭 날씨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도 그렇고 정치를 논하는 이런저런 소리도 지금은 매서운 한파다. 마음이 얼어 나도 고드름처럼 뾰족해져 가고 있진 않은지. 무심코 던진 말이 상대를 찌르지는 않았는지. 불안한 마음을 어쩌지 못해 사사로움을 두는 날이 많은 요즘, 그나마 반가운 소식 하나가 전해진다. 남구청에서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을 돕기 위해 노후간판 교체 지원사업을 추진한다고 한다. 이는 도시 미관을 개선하기 위한 구청의 사업이기도 하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을 돕고자 편성한 사업이기도 하단다. 옥외광고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총예산 1억 원에 해당되는 60개 업소를 선정해 지원한다는 취지다. 


선정 기준은 간판의 노후 정도. 허가(신고) 이행 여부, 사업장 임대차 여부 등으로 서류 검토와 현장조사를 통해 고득점 업소 순으로 최종 선정하는 사업이란다. 선정된 업소는 벽면이용간판 150만 원, 돌출간판 100만 원 등 최고 250만 원의 간판 교체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고 한다. 태풍이나 자연재해 등으로 위험할 수 있는 노후간판을 교체하는 일은 시급하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소상공인들을 우선으로 하는 이번 사업은 옥외광고발전기금이 투입돼 불량한 간판을 교체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이란다. 선정된 업체는 반드시 남구 관내에 등록된 옥외광고물 제작업소에 간판 제작 의뢰를 해야 한다. 이는 구청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남구 소상공인들을 돕기 위한 지원방식이기도 하지만 노후된 간판으로 인해 자연재해 때마다 주민들이 위험에 처하는 일이 없도록 사전에 방지하자는 뜻이기도 하다. 연암의 글처럼 ‘어제 비에 살구꽃은 죄다 떨어졌지만 곧 꽃망울 터뜨릴 복사꽃은 장차 그 화사함을 뽐내겠지’라는 희망을 품어 본다. 코로나19로 인해 웃을 날 없는 한 해였지만 새해를 맞이하는 저마다의 마음에 품은 복사꽃이 있기를.

무작정// 통도사에 갔다/ 추녀와 추녀들이 서로 밀어 올리고 섰는 허공들/ 뒤뜰 깊게까지 따라갔다가/ 무작정 그 허공들 받들고 서 있는/ 무작정(無作亭) 한 채를 보고 왔다 - 고 정진규 시인

사사로움으로 내 마음을 나도 어찌하지 못하는 날 때로는 허공인 줄 알면서 받들고 서 있어야 하는 그런 날이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허공의 집도 마찬가지다. 서로 밀어 올리는 허공 없이 어떻게 지친 사람들이 쉬어 갈 수 있는 무작정이라는 정자 한 채가 지어질 수 있겠는가. 복사꽃이 환한 그날을 기다리며.


김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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