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최초의 면지(面誌), <헌남(巘南)>(1975)에 관한 12문(問) 12답(答)(1)

김진곤 울산향토사도서관 관장 / 기사승인 : 2021-02-18 00: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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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의 울산
▲ 울산 최초의 면지 <헌남>의 표지. ©김정수 사진작가

 

울산 최초의 면지인 <헌남>. 필자가 처음 ‘최초의 울주군 상북면 면지, <헌남>의 고찰’(2019)이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했다. 그 후 독자들의 12가지 질문을 모아 3회에 걸쳐 개괄적으로 설명한다. 


1. <헌남>을 발간한 취지는?


향토(상북면)의 연혁을 위시(爲始)해 전근대의 유사(遺事)를 문면(文面)으로 간추리고, 현재의 발전상을 분야별로 집약해 한 권의 향토지를 간행해 널리 소개하고, 애향심의 발휘와 협동 단결하는 데 일조(一助)가 되며 후일(後日)의 발전에 보태어 도움이 되기 위해 발간했다.


2. <헌남>을 간행한 헌남계(巘南契)는 어떤 단체였나? 


<헌남> 발행처는 헌남계로 1973년 9월 16일 석남여관 특별실에서 향토(상북면)의 발전과 미풍의 함양에 일조(一助)가 되기를 목적으로 창립했다. 이 단체는 상북면을 중심으로 각종 문화 사업을 진행해 큰 성과를 거뒀다. 그 예로 언양 3.1운동 유공자 추모 사업, 향토 자료 조사 사업, 향토지 발간 사업, 각종 기념비의 설립과 관리 사업, 장학 사업, 선행자(善行者), 효열자(孝烈者) 표창 사업 등이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헌남계가 <헌남>을 간행한 후에도 이와 관련된 상북면 향토지를 발간하려고 노력한 점이다. 이 계에서는 <1988년도 상북면 현황>이라는 6쪽 분량의 소책자를 작성했는데, <헌남>과 동일한 20개 마을에 대한 상북면 기본 현황 등 6개 항목에 대한 조사 결과가 수록돼 있다.


또한 제57차 계회(1997년 4월 23일) 때 <(상북면) 향토사(鄕土史)>, 제59차 계회(1999년 5월 6일) 때 <상북면지(上北面誌)>, 제67차 계회(2003년 12월 11일) 때 <헌남지(巘南紙)>를 각각 발간하기 위한 준비와 작성에 관한 안건을 채택했다. 그 후 제69차 계회(2004년 12월 15일)부터 3차례에 걸쳐 <헌남계지(巘南契紙)> 작성 건을 안건으로 상정했다. 그러나 헌남계의 향토지 관련 자료 발간 계획은 <헌남>을 제외하고 안타깝게도 모두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 후 헌남계는 2012년 4월 19일, 81차 계회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3. 누가 집필했나?


헌남계의 창립총회 참석자 중 한 명이었던 박재완(朴載完)은 <헌남>의 서문에 ‘김지환(金知煥) 님이 본지 발행을 제안하였을 뿐 아니라 그 편찬에도 독수기로(獨收其勞)하여 수고를 다사(多謝)한다’는 기록에 집필에 대한 언급은 없이 그가 편찬 작업에 홀로 큰 역할을 했다고 했다, 또 김지환은 편집 후기에서 ‘우리 헌남계에서 과문(寡聞)한 본인에게 집필을 맡김에 고사하였으나 불획(不獲)하기로 계회의 뜻을 받들지 아니할 수 없어 여러 친지들의 협조를 얻어 감히 집필했다’고 스스로 밝혔다. 따라서 그는 ‘서문’(박재완), ‘발간에 기(寄)함’(정태원(鄭泰元)), 그리고 ‘등산 안내’(이규진(李圭鎭))를 제외한 분야를 모두 집필한 것을 알 수 있다. ‘취지’는 헌남계가 집필했다고 기록돼 있으나 여러 정황으로 보아 그가 집필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1962년 4월부터 1973년 3월까지 상북면장과 언양면장을 역임한 풍부한 행정적인 경험과 문장가와 서예가로서의 뛰어난 자질로 <헌남>의 발간을 이끌었다.

(다음 호에 계속) 


김진곤 울산향토사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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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곤 울산향토사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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