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가운데 조선 속으로

백승아 기억과기록 회원 / 기사승인 : 2020-12-30 00: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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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

“태평양 중의 조선”. 1921년 11월 24일자 신문 기사의 제목입니다. 하와이 거리를 걷고 있는 치마저고리 차림의 조선인 여성들 사진과 함께 동포들의 소식을 기쁘게 전하고 있습니다. “자기 나라의 의복을 입는 풍속이 있어서 조선 여자도 조선옷을 입는 것인데, 경쾌하고 선명한 조선옷을 입은 여자가 하와이의 거리로 걸어 다니는 것을 보면 유쾌하고 천사와 같이 보이며 한편으로는 서울 종로 네거리를 지나는 듯도 하다.” 앞서 ‘기억과 기록’ 지면을 통해 소개됐던 사진 신부(Picture Brides)들의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내용의 기사입니다. 이런 신문 기사는 조선의 젊고 똑똑한 여성들의 마음속에 기회의 땅에 대한 열망을 일으켰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사의 변화 역시 그들을 태평양 중의 조선으로 이끌고 있었습니다.


먼저 하와이로 간 조선인들은 일자리를 찾아 떠난 남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로 도시의 실업자들로,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배에 올랐습니다. 1903년, 조선인 노동자 100여 명을 태운 배 한 척이 호놀룰루 항에 들어갑니다. 하와이 땅에 도착한 최초의 한인 이민선이었습니다. 이후 2년 반 동안 약 7000여 명의 조선인 노동자들이 하와이로 갔습니다. 하지만 1905년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되며 조선인의 이민을 주관하던 관청은 문을 닫았고, 미국으로의 조선인 이민이 중단됐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도 많은 조선인 여성들이 사진 신부로 미국으로 이주하게 됐는데, 그것은 일본과 미국이 맺은 협정 때문이었습니다.


아시아 지역의 노동자들은 이미 19세기 후반부터 미국으로 이주하고 있었습니다. 1900년 이전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대규모 토지를 경작하기 위한 농업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동양인 노동자들의 대규모 노동이민은 미국 사회의 반감을 일으켰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의 문화는 미개하며, 이주노동자들 때문에 미국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기게 된다는 혐오의 감정이 팽배해졌습니다. 미국 각지에서 아시아인 배척연맹이 설립됐고, 아시아인에 대한 폭력이 만연해졌으며 동양계 학생들을 분리해 교육하는 법안이 통과되기에 이릅니다. 


1905년 외교권을 빼앗긴 이후, 조선은 일본이 여러 나라와 맺는 국가 간 조약의 영향을 받게 됐습니다. 1907년 미국 정부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반감을 의식하며 ‘행정명령 589’를 공포합니다. 이를 통해 하와이, 멕시코, 캐나다 등을 경유해 미 대륙으로 입국하려는 일본인의 이민을 금지했습니다. 그리고 1908년 미국은 일본 정부가 자발적인 미국행 이민을 제한하도록 하는 신사협정을 체결합니다. 그런데 신사협정에는 인도적 조항으로, 이미 미국에 살고 있던 노동자의 가족에게는 여권을 발급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모순적이게도 이 조항 때문에 새로운 방식의 이민자들이 생겨납니다. ‘사진 결혼’이라는 특별한 형식의 이주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1908년부터 1924년까지 총 1만4000여 명의 일본인 여성, 1000여 명의 조선인 여성이 사진 신부가 돼 미국으로 이주했습니다. 


결혼에 의한 이주여성들은 자신의 기대와 어긋나는 미국 생활을 해야 했지만, 그들의 이주는 미국 내 조선인 사회를 안정화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인 사회가 형성됐고, 노동자들은 가족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며 그곳에 정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조선에서 학교 교육을 경험한 이주여성들은 생계를 책임질 뿐만 아니라 조선인 2세들을 교육했습니다. 한글을 가르쳤고, 사회운동단체를 만들었으며 독립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100여 년 전, 하와이로 간 조선인 노동자들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단지, 우리의 입장이 바뀌었을 뿐 반복되는 역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주노동자, 결혼을 통한 이주여성들을 ‘보내던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입장’으로 한국 사회의 위치가 바뀌었습니다. 기회의 땅을 찾아 떠나던 곳에서 누군가의 기회의 땅이 된 것입니다. 더 나은 삶을 꿈꾸며 하와이로 떠나는 배에 올랐던 조선인들과 꼭 닮은 얼굴을 한 많은 사람이 한국으로 향하고 있는 오늘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만난 현실은 어떨까요? 조선인 노동자를 향하던 혐오와 차별, 분리와 배제의 폭력은 이제 누구를 향하고 있습니까? 100여 년 전 조선인 노동자들이 하와이 땅에서 느꼈던 실망과 절망감을 오늘, 대한민국 땅에서 느끼는 이들이 많지 않은가 되돌아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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