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해보기나 해 봤어?” <이 땅에 태어나서>를 읽고

이해규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회원 / 기사승인 : 2021-02-18 00: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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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울산에 사는 사람들은 ‘현대’라는 기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현대라는 기업이 있기에 고용이 창출되고 울산 경제도 활력 있게 돌아간다. 그렇다면 현대라는 기업의 토대를 마련한 사람은 누구일까? 우리는 아마도 아산 정주영(1915~2001)을 기억할 것이다. 그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의 삶의 이력을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이 땅에 태어나서>라는 제목을 단 이 책은 정주영이 타계하기 3년 전인 1998년에 초판본이 출간됐다. 분량은 450페이지 정도로 제법 많지만 정주영의 파란만장한 인생 스토리를 읽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게 된다. 자서전이 대게 자화자찬이 많지만 이 책은 적어도 솔직하게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와 ‘현대’라는 기업을 일궈낸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특히 가난에 찌들어 살아야 했던 선대(先代) 이야기와 7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나서 동생들을 보살피는 가운데 농사꾼의 운명으로 살아야 했던 유년의 고민들이 절절히 묘사돼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정주영을 이해하는 네 가지 코드는 부지런함, 신뢰, 자신감, 창의성이다. 그는 게으름을 경멸했으며, 신뢰로써 상대를 제압했고, 늘 도전적으로 사업을 키워나가면서, 혁신적 사고로 일을 처리했다. 책의 초반부에는 가난했던 유년시절에 대한 절절한 묘사가 나온다. “가진 농토는 손바닥만 하고 … 비가 조금 왔다 하면 홍수가 망치고 조금 가물었다 하면 가뭄이 망치고, 봄비가 조금 늦게 와도 흉년, 우박이 잠깐 지나가도 흉년…”, “아침에만 조밥을 해 먹고 점심은 굶고 저녁에는 콩죽으로 넘겨야 했다. 겨울을 그렇게 보내고 봄이 오면 그나마 양식도 다 떨어져 그때부터는 풀뿌리에 나무껍질에, 문자 그대로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목숨을 부지해야 했다.”(p22) 


유년의 가난을 경험한 그는 농사를 물려받아서 집안을 일구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거부하고 19살에 이북에서 서울로 내려와 부두 노동자와 쌀가게 점원을 하면서 세상을 경험해간다. 특히 ‘복흥상회’라는 쌀가게 점원에서 시작된 그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은 주인의 인정을 받고 가게의 장부 정리를 도맡으면서 나중에는 독립된 쌀가게를 차리게 되고 많은 돈을 벌게 된다. 그때의 부지런함을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농사일에 비하면 일도 아닌 쌀가게 일을 하는 데에 우리 아버님이 농사일하시듯 그야말로 전심전력을 다했다. 나는 취직한 이튿날부터 매일 누구보다도 일찍 첫 새벽에 나가 가게 앞을 깨끗이 쓸고 물까지 뿌려놓는 것으로 하루 일을 시작했다.” 


그가 해방 후인 1947년에 ‘아도’라는 자동차 정비 공업사를 하면서 재미를 보다가 뜬금없이 건설업으로 사업을 확장한 배경이 나오는데 이미 그때부터 돈을 버는 탁월한 감각과 사업가적 야망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건설업이나 자동차 수리업이나 관청과 미군에서 나오는 일거리가 대부분이었다. 견적 넣고 수금하면서 관청과 미군을 드나들던 어느 날, 건설업자들이 공사비를 받아 가는 것을 보았다. 내가 받는 수금액은 한 번에 고작해야 3,40만 원 정도인데 건설업자들은 한 번에 1천만 원씩 받아 가고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p53) 이후 건설업에서 보여준 그의 사업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1953년 고령교 복구공사를 적자를 보는 가운데 정확하게 공기(工期)를 지켜서 만들어 낸 이야기, 1970년 경부고속도로를 2년 만에 준공했던 이야기, 1972년 공장도 세워지지 않는 미포만에서 25만 톤급의 배를 건조하면서 동시에 현대조선소를 짓던 이야기, 20세기 최대의 난공사라고 일컬어지는 사우디 주베일 산업항 공사 때 항만의 토대가 되는 ‘자켓’이라는 거대한 철 구조물(그것도 89개나)을 사우디 현지에서 만들자던 토목 전문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에서 만들어서 바지선으로 울산에서 사우디까지 1만2000천 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19번이나 실어 나른 일은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6.25 전쟁 후 복구사업과 박정희의 중화학 육성정책은 지금의 현대가 성장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래서인지 책에는 박정희에 대한 존경과 긍정적 평가가 많이 나온다. 정주영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키워준 박정희라는 존재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것이었다. 지나고 나서 보건대 ‘현대’라는 거대한 재벌은 정주영의 초인적인 능력과 정부 주도의 국가재건사업, 중화학공업 발전전략이 맞아떨어져서 탄생했던 결과물이었다. 


수 많은 사람이 영광과 좌절의 역사를 인생에서 경험한다. 때로는 성공의 인생을 가다가도 내리막길을 걷기도 하고 실패로 거듭된 삶을 사는 이웃들도 많다. 더군다나 요즘은 ‘코로나’라는 악재가 겹쳐서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문 닫는 자영업자들도 많고 그 속에서 다시 일어서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지금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정주영의 돌파력과 추진력, 그리고 잘 될 것이라는 낙관적 믿음이 가난에서 벗어나 그의 담대한 꿈을 이뤘듯이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아산 정신은 유효한 것일까? 나는 그 아산 정신에서 오늘날의 난국을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그의 부지런함, 신뢰의 가치, 자신감, 창의성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오히려 더 절실하다. “무모했지만 그 무모함이 부른 혹독한 시련을 견디고 뛰어넘고 쳐부수면서 우리는 산 공부를 해가며 철저하게 강인해졌다.”(p156), “…그런 일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당장 되겠느냐는 대꾸였다. 그럴 때 내가 으레 두 말 못하도록 퉁명스럽게 하는 말이 있다. 해보기나 했어?”(p242) 


이제 곧 3월이다. 코로나는 확산될 것인가 종식될 것인가? 그리고 백신의 보급은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 것인지 모두가 설렘과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우리의 명운이 걸려있는 신축년의 봄이 오고 있다. 불굴의 도전정신과 낙관적 마인드로 삶을 개척해온 아산의 마음으로 봄이 맞이했으면 한다. 


이해규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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