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어느 밭으로 걸어가고 있을까?

박가화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인문강사, 수필가 / 기사승인 : 2021-01-14 00: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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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서점가는 여전히 자기계발서와 삶의 지침서가 홍수다. 작가들은 독자의 존재가치를 최대한 부추기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그 지침대로 따른다면 완벽하고 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한때 사회적 이슈가 됐던 웰빙(well-being), 힐링(healing) 그리고 워라밸(Work-life balance)이라는 이름을 내건 책들 또한 마찬가지다. 근사한 목적과 방법들을 제시하지만 결국 그 해답들은 더 나아짐을 가장한 새로운 인간 매뉴얼을 반복적으로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많은 것들을 습득하고 실천한다는 것이 곧 더 나은 존재가 된다는 뜻일까. 인간을 상품의 등급처럼 찍어내고 있는 현대 문명, 개인을 조직의 정체성으로 통제시키는 비인간적인 사회. 그 속에서 과연 우리는 성장해 나가고 있는 것일까.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레고 블록처럼 획일화된 어른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개별자로서 갖는 존재성의 꿈틀거림을 홀로 감당해야 했던 아웃사이더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삶의 진정성과 가식이라는 가면을 쓴 인위적인 것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지 못해 방황할 수밖에 없는 그의 아픔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의 작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는 미국의 부유한 유대계 상인인 아버지와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유복하고 교육열이 강했던 부모의 영향으로 명문 학교에 진학하지만 번번이 적응을 못 해 중퇴와 퇴학을 반복했다. 그러기에 작가 샐린저가 주인공 홀든 콜필드에게 자신을 투사시킨 자전적 소설로도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주요 도시들은 모두 파괴됐고, 경제가 전쟁으로 인해 극도로 피폐해졌다. 오직 미국만이 승전국으로서 그리고 본토에서 전쟁을 치르지 않은 나라로 군수산업과 재건사업을 통해 경제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미국 사회는 경제적 번영을 이뤘고, 비교적 안정된 사회 분위기를 바탕으로 순응과 번영의 시대 그리고 보수주의 시대를 살고 있었다. 


안정된 중산층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꿈을 꾸며 살았다. 자기 세대에서 이뤄지지 않으면 자식들에게 그 꿈을 대신 부여하고 기대를 걸었다. 이러한 꿈과 욕망들이 ‘정상적’이라는 프레임을 쓰고 사회를 혼탁하게 만들고 속물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어떤 규칙이나 순서를 따르지 않으면 ‘정상적’에서 벗어난 비정상적인 행위로 보았다. 


그 사회에서 성공의 모습은 이른바 인간 본연의 참 욕망이 실종돼 있었다. 나의 것이 아니라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고, 자신보다 타인에게 인정받으려 노력했다. 개인의 차별화된 인생의 궁극적 목표가 아닌 사회가 이미 만들어 놓고 기존 질서의 이데올로기로 내세워진 것에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만이 있었다.
“인생은 시합이지. 맞아, 인생이란 규칙에 따라야 하는 운동 경기와 같단다.”(p19) "자네 머릿속에 분별이라는 걸 넣어주고 싶어. 도와주고 싶다는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도와주고 싶어 ”(p27)


학교기숙사를 떠나기 전,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찾아간 스펜서 선생님은 여전히 정해진 ‘규칙’이라는 것에 자신을 맞춰나가라고 당부한다. 표준상품을 찍어내는 공장과도 같은 학교에 순응하며 좋은 상품과도 같은 학생이 되라는 것이다. 그러나 홀든에게 학교는 더 이상 미성숙함에서 자신의 이성적 능력을 스스로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성숙된 능력을 배양시키는 교육기관이 아니다. 정해진 답을 쓰고 정해진 직업을 갖고 집단적 우월주의를 즐기라는 것 같았다. 홀든이 생각하기엔 순응은 진짜가 아닌 가짜이고, 머릿속에 집어넣으려는 분별이라는 것은 가식적인 어른들 세계의 복제품으로 살아가라는 의미로 여겨졌다. 어쩌면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상품으로 전락시키는 곳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저항의 몸짓이었는지 모른다. 


기숙사를 나와 집으로 돌아가기 전, 뉴욕이라는 거대 도시에서 2박 3일을 보내며 온갖 인간 군상들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 세상은 순수하고 진정한 것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허위와 가식과 같은 인위적인 것들과 함께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홀든은 가식적이고 속물적인 어른들 틈에서 절망적인 구토를 느끼지만 그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사랑밖에 없음을 여동생 피비를 통해 알게 된다. 놀이 공원에서 억수같이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고 서 있던 홀든의 모습은 상징적이다. 비는 지금까지 거부해 온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양상들을 상징한다. 그것들을 온몸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회전목마를 타며 즐거워하는 여동생 피비의 천진함과 순수의 세계와 더불어 어른들의 허위와 가식의 세계까지 받아들이는 순간, 홀든은 세상의 새로운 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 또한 누구보다도 개혁적이며 깨끗한 것처럼 기세등등하던 정치인들이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하고, 수많은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추한 비리로 물러나는 안타까운 모습들을 봐왔다. 호밀밭이 잡초 우거진 밭으로 변해있음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안다. 잡초 우거진 곳에서도 묵묵히 호밀밭을 가꿔나가는 숭고한 사람들 또한 너무나 많이 있음을.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 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p228~230)


누구나 가슴속에는 그리워하는 호밀밭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잡초 우거진 밭을 묵묵히 걸어나가기도 한다. 어쩌면 허위와 가식 그리고 순수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닌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것인지 모른다. 오늘 나는 어느 밭으로 걸어가고 있을까? 


박가화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대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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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화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인문강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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