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월급

천창수 화암중학교 교사 / 기사승인 : 2021-02-27 00: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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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톺아보기

지난주에 마지막 교사 월급이 통장에 들어왔다. 2월 28일자로 정년퇴임을 하게 된다. 정든 교단을 떠나게 되고 교육 톺아보기에서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먼저 부족한 제 글을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많은 분이 시원한지, 섭섭한지 궁금해하며 소감을 묻는다. 교단을 떠나시는 분들마다 가치관도 다르고 개인적인 상황도 다르기 때문에 개별적인 소감이 어떤지 궁금해하는 것 같다. 내 첫 번째 소감은 아쉽다는 것이다. 나는 다양한 사회생활을 거쳐 늦게 교사가 돼 다른 분에 비하면 길지 않은 19년 근무 만에 퇴직하게 됐지만, 19년이란 세월은 참으로 긴 세월이었다. 막 태어난 갓난아이가 청년이 될 만큼 긴 시간이다. 한주에 20시간 수업, 한 달이면 80시간, 1년이면 800시간, 10년이면 8000시간, 어림잡아 19년이면 1만5000시간, 이렇게 많은 시간 동안 학생들과 대화했는데, 그들은 얼마나 성장했을까?


19년 전 처음으로 교사의 발걸음을 내딛으며 희망찬 꿈을 꿨다. 미래의 우리 사회를 책임질 일꾼들을 만나러 간다고, 그들이 자신을 둘러싼 사회 환경들을 주체적으로 파악하고 개선해 나갈 역량을 키우는 데 내 조그만 힘을 보태겠다고, 그들이 주인 되는 미래의 사회에서는 모두가 모두를 존중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기운이 넘치기를. 그렇지만 많은 희망이 희망에 그치고 말 듯이 내 꿈들도 그저 꿈에 그치고 만 것 같다.


별달리 한 일도 없이 정년을 맞이해 학교를 떠난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해방감도 느낀다. 사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고, 이런 일을 행복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지겹기도 했다. 때로는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 다이나믹하고 신나는 일들을 꿈꾸기도 했지만 학생들에게 거는 기대로, 내일에 대한 희망으로 또 하루, 일 년을 반복했다. 만일 학생들이 바뀌지 않았더라면, 사회의 변화에 맞춰 수업 내용을 업데이트하는 일이 없었더라면 정말 견디기 어려웠지 않았을까.


한 사람의 꿈은 하나가 아닐 것이다. 그동안 교사로서 열심히 살기 위해 시간을 배분하기 어려워 가슴 한 켠에 묻어둔 꿈들에게 남은 인생의 시간을 주고 싶다. 이것이 해방감이 아닐까? 50년대 후반 가난한 세상에 태어났다는 죄 때문에 피아노, 기타, 물감에는 접근하기 어려웠다. 이제는 내게 스케치북과 연필을 주고 싶다. 어릴 때의 결핍을 지금이라도 조금 메꾸고 싶다. 산과 강, 바다를 벗 삼아 세상을 관조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교사로서 가졌던 꿈들은 후배 교사들에게 넘긴다. 교육이 정치와 경제의 종속 변수일지라도 결국 정치와 경제의 주인은 지금의 학생과 청소년이 될 것이다. 그들에게 교사의 열정으로 다가가자. 스스로 하는 공부를 즐거워하고 주위의 친구들에게 관심을 갖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삶들을 존중하고 자신을 둘러싼 사회 환경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개선해 갈 수 있는 역량을 갖게 하자. 학교의 화장실을 청소하시는 분들에게도 존중의 인사를 할 줄 아는, 급식소에서 밥을 짓는 분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할 줄 아는,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친구를 당연시할 줄 아는, 불의에 맞서 자신의 주장을 펼 줄 아는, 지금 당장 학교의 일에 학생의 참여를 추진할 줄 아는, 그런 학생들이 넘쳐나게 하자.


내가 하지도 못한 일을 떠넘긴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것은 교사가 갖는 숙명이요, 행복할 수 있는 권리다. 나처럼 아쉬움을 품고 정년을 맞이해 학교를 떠나게 될지라도 꿈을 꿨기에 또 다른 사회에서 행복하게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을 것이다.


천창수 화암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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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창수 화암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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