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인식(認識) 습관을 이제는 버릴 때인가?

공영민 한국재료학회 편집이사 / 기사승인 : 2021-01-13 00: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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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학·기술

2021년 새해는 2020년보다는 더 추워진 것 같다. 눈 오는 모습을 보기가 좀처럼 힘든 울산에도 새벽에 눈이 내린 날도 있으니 말이다. 날이 춥다고 해서 눈이 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조건이 맞아야만 눈이 온다. 날 추운 겨울에는 집 밖으로 나서는 게 좀처럼 쉽지 않다. 게다가 요즘같이 코로나19 걱정이 많은 시절에는 외출을 생각하기는 더욱 힘들어진다.


가족들의 외출이 줄어든 상황과 겨울방학이 겹쳐진 상황에서 집에서 요리해야 하는 경우는 더욱 난감해진다. 매끼 새로운 요리를 하기도 쉽지 않고, 많이 해뒀다가 여러 번 재탕해서 먹기는 입맛이 떨어지고, 용케 요리해 먹는다손 치더라도 설거지의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이럴 때는 배달 음식을 시키기도 하는데,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각난다. 편리한 배달(配達)앱을 쓰면 지역 상인들에게 부담이 된다고 하고, 재활용(recycling)된다던 포장 용기는 실제 재활용이 어렵다고 한다. 가끔 덤으로 오는 플라스틱병의 탄산음료에는 설탕이 아닌 액상과당이 들어있어 건강에 안 좋다고도 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이런 조건에서는 어쩌면 봉지 라면이나 컵라면이 나쁘지 않은 해결책일 듯하다. 폐기물도 적게 나오고 간편하게 조리를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건강에 좋지 않다던 매스컴(요즘에도 이런 단어를 쓴다는 것은 나이가 적지 않음을 의미할까?)의 이야기가 조금 거슬리긴 한다.


십수 년 이상 장수하는 라면도 있고, 출시 후 크게 유행하다가 사라진 라면도 있고, 기발한 한국 소비자의 조리법에 맞춰 출시한 라면도 있고 하여 우리나라는 정말 라면 대국이라 볼 수 있다. 가격이 개당 사, 오백 원에서 천 원이 넘어가는 컵라면도 있으니 별다른 반찬 없이 먹을 수 있는 라면은, 요즘 세상에 정말 가성비 갑(甲)의 먹거리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값이 저렴한 라면이기에 건강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열량과 나트륨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혹자는 말하리라.


값이 저렴한 음식과 관련한 속담으로 ‘싼 게 비지떡’이 있다. 어원을 찾아보니 원래는 ‘인심이 후함’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보자기에 비지떡을 ‘싸준’ 주막 주모의 정감을 나타낸 말이,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값이 ‘싸다’라는 뜻으로 둔갑한 것이다. 이처럼 발음이 같기도 하지만, ‘비지’라는 음식 재료의 속성과도 연관이 있다. 비지는 본디 두부를 만들기 위해 콩을 갈아 콩물(콩즙)을 짜고 남은 찌끼를 말한다. 두부의 조제 과정에서 콩의 단백질과 지방은 대부분 빠져나가므로, 비지에는 영양소가 적은 섬유질과 수분만 남게 된다. 그러다 보니 영양분이 적은 비지는, 전쟁에서나 배고픔을 해소하기 위한 먹거리였고 영양실조나 일으키는 허드레 음식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싼 게 비지떡’은 ‘싼 것이라서 질(質)이 나쁘다’라는 뜻으로 변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영양 과잉(過剩) 상태에서는, 섬유질과 수분이 많아 저열량에다 포만감이 큰 식품으로 ‘대접’을 받으니 다이어트에도 요긴해졌다. ‘싼 게 비지떡’의 속뜻이 다시 바뀌어야 할 시기가 아닐까?


다시 라면으로 돌아가 보자. 라면이 우리 사회에 등장한 것은 1963년으로, 원조를 통해 들어오는 밀가루를 이용한 분식(粉食) 장려정책의 하나로 일본에서 도입됐다고 한다. 그때의 라면 가격이 10원이라는데, 당시 시내버스 요금과 같았다. ‘그 10원’을 아끼기 위해서 수 km를 걸어 다니셨다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라면은 결코 값싼 음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세월이 지나 1970년에는 20원으로 인상된 라면값이, 1981년에는 100원으로, 1998년에는 환율폭등으로 인해 원재료 밀가루 가격이 급등해 450원으로 인상됐다고 한다. 20년이 지난 지금의 편의점 컵라면 가격이 대략 1100원대이고, 울산의 시내버스 기본요금 1300원과 얼추 비슷해 보인다. 라면 가격이 출시될 때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나, 우리 가계 소득수준이 높아진 탓에 라면이 값싼 음식으로 보이는 것 같다. 그래서, ‘싼 게 비지떡’의 대우를 아직도 받는 것 같다. 


기술개발의 결과로 라면의 품질(원재료인 밀가루와 기름의 질, 면발을 뽑고 튀기는 공정, 국물맛을 내는 분말 및 액상 수프 재료와 처리 기술, 포장재의 질과 포장 공정 등)이 월등히 좋아진 탓에, 우리만의 기호 식품이 아닌 전 세계의 선호(選好) 식품으로 자리를 잡은 지 꽤 됐다. 양질의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기술개발을 통해 가격을 저렴하게 유지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값이 싸 보인다고 질이 낮다’는 인식을 이젠 바꿔야 하지 않을까 한다. 비지가 과영양 상태의 현대인에게 좋은 저칼로리 다이어트 식품이 되듯이, 라면은 코로나 시대에 요긴한 국민 식품으로 이쁘게 봐주면 좋겠다. 싸게 보인다고 값싼 질(質)이라고 ‘예전처럼’ 믿는 것을 포함한 오래된 인식(認識) 습관을 코로나 시대에는 버려야 할 것 같다. 


공영민 울산대학교 첨단소재공학부 교수, 한국재료학회 편집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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