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개의 눈을 통해 토론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독서클럽 ‘망원경’

이기암 기자 / 기사승인 : 2020-10-15 21:3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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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미선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초대회장. ⓒ이기암 기자

 

[울산저널]이기암 기자=회원들이 함께 책을 읽고 자발적으로 꾸준히 성장해나가는 독서클럽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이곳에서는 강사도 배출해내며 고등학교나 사회단체에 강의도 나간다. 책을 어느 정도 읽었다 싶으면 해당 분야 전문가를 모셔 강의를 듣고 질문도 다양하게 한다. 한 번은 서울에서 강의하러 온 작가가 이렇게 활발히 질문하고 자기 책을 제대로 읽어준 모습에 반해 강의료 전부를 다시 책을 보내주는 데 썼다고 한다. 바깥은 소란스럽지 않은데 안에서는 내적인 변화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독서클럽 ‘망원경’.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벗들은 독서토론회 친구들이라고 말하는 최미선 ‘망원경’ 초대회장의 두 번째 이야기를 들어봤다.


울산저널 이기암 기자(이하 이)=요즘 시대가 점점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인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보면 점점 단순화돼 가는 시대인 것 같다. 특히 IT 세대라고 하는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스마트폰, 그리고 비슷한 앱(배달앱이나 채팅앱)과 SNS 등을 똑같이 이용하고 있다. 온라인에 이슈가 한 번 뜨면 안 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내가 보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보는, 어떻게 보면 다양함을 가장하고 있는 단순한 시대인 것 같은데 이런 시대에 인문학이 어떻게 사람들한테 영감을 줄 수 있을까?
 

최미선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초대회장(이하 최)=세상이 다양해 보이지만 실상은 점점 다양해지기보다 오히려 단순해진다는 말인 것 같다. 그 말에는 나도 공감하는 편이다. 지금 시대는 삶이 스마트화되면서 의외로 예전보다 좀 더 보편적으로 가는 시대라고 할까? 그런 와중에 우리 인문학협동조합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좋은 기능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면 우선은 회원들의 변화된 모습들을 많이 봤다고 할 수 있다. 회원들의 변화된 모습 중 하나는 TV를 멀리하게 됐다는 거다. 직설적으로 말해서 TV가 재미가 없다고 한다. 정말로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할 것들 말고 연예인, 정치 얘기 등 가십거리들에 대해서 더 이상 관심이 안 간다고 한다. ‘왜 그럴까’하고 생각해봤다. 그런 가십거리들이 겉은 현란한 것 같지만 속은 굉장히 단순하다. 우린 그 모습들을 보며 처음에는 현란함에 현혹돼서 쫓아가는데 알고 보면 알맹이가 없는 거다. 그런데 사람들이 인문학에 점점 관심을 갖게 되면 그 알맹이 없는 것들(가십거리)에 대한 관심이 점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 회원들이 ‘가치의 역전이 일어났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기존에 자기가 중요시했던 것들에 대해 ‘이게 과연 중요할까?’라는 반성이 필요했는데 그동안엔 그렇게 하지 않았다가 인문학을 공부하니 ‘내 삶을 위해서 필요 없는 것들에 시간과 에너지를 너무 쏟았던 것 아닌가’하고 생각하는 거다. 이런 삶의 전반적인 모습들에서 많은 반성이 일어난다고 한다.

삶의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 인문학의 역할
갈등을 해결 못 하는 것은 싸울 줄 모르기 때문


이=‘가치의 역전’이라는 말이 귀담아 들리는데 결국 삶의 가치의 우선순위가 바뀌고 이는 곧 생활의 변화로도 이어질 거라고 보는데?
 

최=인문학의 역할은 자기 삶에서 정말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또 변화된 상황에서 가치 있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집중할 수밖에 없다. 자기가 현 상황에서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나에게 보여주는 세상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어떠한 시선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본다. 그럴수록 자꾸 자기 렌즈를 닦을 수밖에 없는 거다. 그렇게 렌즈를 닦다 보면 삶도 저절로 변화될 수 있다.
 

이=삶의 시각을 다르게 하면 삶이 변화된다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가령 1년 정도 짧은 시간으로도 자신이 변화된 것을 느낀다는 건지?
 

최=실제 옆에서 보고 있으면 사람들이 많이 좋아진다고 해야 하나. 내면적인 만족감도 채워지기도 하고. 물론 살아가면서 기존의 갈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해결하는 방법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아,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어’라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는 내성이 생긴다고 할까. 보통 사람들은 갈등요소가 있으면 애써 싸우기 싫어서 싸움의 장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내면이 탄탄해지면 그런 싸움들을 기꺼이 할 수 있다. 또한 정당하고 필요한 싸움들을 애써 피하려 하지 않는다. ‘내가 이것을 요구함으로써 저 사람에게 관철시키고 싶다’는 욕구를 과감하게 얘기할 수 있다. 싸움의 장에서 ‘나는 내가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반응했어’라고 하면 상대방도 그에 응당한 피드백을 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점점 합의점을 찾아간다. 

 

▲ 지난 10일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은 에릭 호퍼의 <길위의 철학자>를 선정해 10월 정규 독서토론회를 열었다.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제공.

이=요즘은 사람들이 워낙 바쁘고 또 자기 위주로 생각한다. 사람들이 이런저런 갈등을 많이 겪는데 한 번 생각이 달라져서 사이가 멀어지면 다음부터는 적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런 행태가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 이처럼 사람들의 갈등관계에서 인문학이 긍정적인 역할을 할 거 같은데?


최=사람들이 갈등을 일으키고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싸울 줄 몰라서 그런 거다. 싸울 때는 싸움의 기술이 필요한데 인문학이 싸움의 기술을 가르쳐주는 면도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모든 싸움의 근원은 선악의 구도다. 내가 선하고 상대방이 악하다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즉, 내가 옳고 상대방이 그르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문학은 선악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음을 가르쳐준다. 적은 결코 악이 아니다. 서로 좋고 나쁨의 차이일 뿐이다. 나는 사과를 좋아하고 상대방은 배를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배가 악은 아니지 않나. 사과가 좋다고 해서 배를 없애버려야 할 것으로 취급하면 안 되는 것이다. ‘내가 선이고 적은 악이다’라고 규정하는 순간, 나는 악하고 공존할 수밖에 없다. 인문학을 하다 보면 선악의 구도에 있어서 ‘내가 때로는 상대방의 위치에서 악이 될 수도 있구나’라고 초점을 잡게 해주고 그러면 기꺼이 대화의 장이 열릴 수 있다. 나만 옳다고 생각하면 싸움 자체가 안 된다.
 

이=인문학을 하는 분들은 적이 별로 없을 거 같은데? (웃음)
 

최=꼭 그런 거 같지만은 않다. 어렸을 때 북한이 주적이었지 않나. 그런데 지금은 북한사람들도 같이 공존해 나가야 할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적이 나랑 안 맞는 건 알지만 나랑 같이 공존해야 하는 존재다. 나도 적이 좀 있는데 그 적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이 있어서 나도 긴장하며 살아가고 또 어떻게 보면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이=인문학협동조합을 만들기 전에도 인문학에 관심을 가졌나? 그렇다면 처음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최=왜 관심을 가졌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어릴 때부터 쭉 있었던 것 같다. 보통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이런저런 책들 많이 보지 않나. 고등학교 때도 전집 문학 시리즈를 전부 읽어보려 노력했고. 책에 대한 관심은 끊이지 않았는데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건 한때 굉장히 아파서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안 좋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책을 놓지 않았던 것이 그 아픔을 벗어나게 된 계기가 됐던 거 같다.

“요즘 사람들은 야성이 거세된 거 같아”
“1000개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이=요즘 사람들은 내면의 아픔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살아가고 해결하는 방법도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 같다.
 

최=요즘 사람들을 보면 야성이 거세된 거 같다. 우리 때는 들판에서 뛰어놀기라도 했지, 요즘 사람들은 그럴만한 공간이 있나 싶다. 사람들이 적절히 야성을 분출해야 하는데 그걸 풀어놓을 곳이 없으니 자꾸 마음은 약해지고 아파가는 거다. 결국 내면에 쌓였던 것들이 한꺼번에 터지게 되면 난리가 나는 거다.
 

이=요즘 사람들이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내면에 쌓여있는 불만, 앙금 등을 적절히 분출하지 못하니 일명 ‘묻지마’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 같다. 결국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 내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데, 가장 좋은 방법이 독서라고 생각한다. 보통 책이 마음의 양식이라고 하는데 책을 읽으니까 삶을 보는 시선이 좀 더 여유로워진다고 해야 하나.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덜 한 것 같다.
 

최=일반적인 책 읽기에서 좀 더 효과를 내려면 독서토론을 하는 것이 좋다. 책은 혼자 읽는 것보다 독서토론을 하면서 읽는 것이 10배, 100배 이상 효과를 본다. 독서토론에서는 많은 얘기가 오가기 때문이다. 보통 독서토론 얘기를 할 때 1000개의 눈을 얘기한다. 인간이 한 번 태어났으면 1000개의 눈쯤은 가져야 되지 않겠나. 일단, 나라는 사람이 보는 시선은 딱 정해져 있다. 태어나서 훈육받고 주어진 상황에서만 세상을 바라본다. 하지만 타인의 다양한 조건에서 나오는 시각은 가지각색이다. 그런 것들을 독서토론을 통해 그 시선들을 함께 보자는 거다. 예를 들어 ‘최미선이 <멋진 신세계>라는 책을 읽고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면 이건 나의 눈이다. 그런데 다른 시선들이 모이면 그 시선들이 교환되는 거고 내 시야도 확보가 되는 거다. 때론 내 시선들이 깨지기도 한다. 그래서 ‘1000개의 시선을 가져야 되지 않나’라는 것이 내가 늘 하는 얘기다. 

 

▲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조미정 강사는 지난 9월 22일 울산강남고등학교에서 독서동아리 학생들을 대상으로 2회에 걸쳐 카프카의 <변신> 특강을 진행했다.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제공

이=독서토론을 통해 다양한 시선을 갖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최=토론을 하다 보면 독특한 시각들이 굉장히 많다. 인문학의 완성은 책을 읽고 덮는 순간이 아니고 그걸 내 입으로 말하거나 글로 쓰는 순간이라고 본다. 그래야 비로소 이 책을 한 권 읽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인문학을 어떻게 접근할지 모르겠다고 방황하는 분들은 가까운 독서토론회부터 찾는 것이 좋다.
 

이=일단 토론회에 참석하려면 책을 읽어야 할 텐데, 책을 한 번 정도 가볍게 읽고 부담 없이 참가해도 되는 건가?
 

최=책을 안 읽고 오는 분들도 있다. (웃음) 무슨 이야기하는지만 들어보러 오는 거다. 책을 읽고 오면 얻어가는 것이 많을 텐데 좀 아쉽긴 하다. 그런데 조금 곤란한 상황은 책은 안 읽고 오는데 말을 많이 하는 분들이 있다. 우리 토론도 일정한 방향이라는 게 있는데 거기에 이탈해서. (웃음) 여하튼 될 수 있으면 책을 읽고 오면 좋은데 안 읽고 와도 상관은 없다.
 

이=책을 가까이하는 삶을 살아야 할 거 같다. 효과적인 독서방법이 있다면 무엇인지?
 

최=지금과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면 지금과는 다른 습관 하나를 키워야 한다. 작은 습관 하나만 바꾸면 되는데 그 습관 중에 독서라는 습관이 들어간다면 얼마나 좋겠나 생각한다. 좋아하는 분야의 책부터 한 권씩 읽기 시작하면 되는데, 무작정 일주일에 책 한 권 읽어야지 하면 잘 안 된다. 날마다 몇 페이지를 읽을지 페이지 수를 고정해서 읽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다. 매일 50페이지를 읽는다고 하면 4일이면 200페이지고 6일이면 300페이지다. 50페이지가 적은 것 같지만 하루하루가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그것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조금씩 시간을 내 꾸준히 읽다 보면 습관이 되고 어느새 독서가 내 삶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1000권을 읽었다고 한 사람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매일 한 권씩 읽었다고 한다. 그럼 으레 가정주부겠거니 했는데 그 사람은 가정주부가 아니었다. 워킹맘에다 시부모도 모셨다. 그런 상황에 아침에 일어나서 무조건 30분을 읽고, 오전 중 근무하다 10분~20분 정도씩 읽는다. 그러다 보면 퇴근할 때까지 책을 읽는 시간이 2시간이 된다고 하더라.
 

이=요즘은 모든 분야가 워낙 스마트화돼 있고 또 영상화 시대인데 옛날보다 책을 많이 안 보는 건 사실인 거 같다. 이렇게 영상위주인 시대에 요즘 젊은이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나이가 들어서 보니 내가 젊은 시절에 했던 행위들 중에 지금 그나마 내 삶을 윤택하게 했던 행위들이 뭐가 있는지, 또 순전히 나만을 위해 투자했던 일들이 뭐가 있나 생각했을 때 독서야말로 자기한테 최대로 투자하는 것이라고 본다. 독서는 배신하지 않는다. 당장 내일모레 효과가 나타나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사람의 결이 달라진다. 지금 우리가 40~50대인데 젊은 시절에 만났던 친구들을 지금 다시 만나면 책을 읽는 친구들과 책을 읽지 않는 친구들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차이가 있는 거 같다(추구하는 삶의 가치는 별론으로 하고). 그렇게 봤을 때 결국 책을 읽으면 그게 자기 자신에 대한 투자가 아닌가. 또 책을 읽으면 뭘 해도 자신있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본다. 실패해도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거다. 내면에 힘이 없으면 외부에 휩쓸려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 젊은 분들한테 꼭 해드리고 싶은 말은 ‘좋은 사람을 옆에 둬라’는 것이다. 내가 활동해도 괜찮다고 생각이 드는 독서 커뮤니티에 가입해서 그 안에서 평생친구들을 사귀는 거다. 그 친구들이 좋은 친구들인 거다. 나 역시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벗들은 독서토론회 친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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