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기념대회에 참가한 재일동포

이동고 기자 / 기사승인 : 2019-03-06 21: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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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록 선생은 누구인가?
▲  울산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기념대회에 참석한 배동록 선생(맨 오른쪽)과 같이 온 손자들, 가운데는 한국전쟁 시기 신불산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구연철 씨. ⓒ이동고 기자

 

[울산저널]이동고 기자=울산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기념대회에는 낯선 손님들이 있었다. 바로 일본에서 온 재일동포 배동록 씨와 같이 온 손자들이다. 그들은 모두 한반도기가 박힌 옷을 입고 있었고 손에 든 태극기를 연신 흔들어대면서 남북이 싸우면 안 된다고 누누이 이야기했다.

배동록(73세) 선생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 야하타 제철소로 강제징용됐다. 그의 어머니는 아이 넷을 데리고 남편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갔고, 선생은 일본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1남 2녀의 자녀와 손자를 두고 있는 재일동포 2세다. 배 선생을 낳고 몸조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어머니는 제철소에 끌려나가 강제노동을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같은 야하타 제철소에서 강제노동을 하며 말할 수 없는 차별과 매질, 중노동에 시달렸다. 그런 환경을 겪고 자란 배 선생은 강제징용 당한 우리 동포들의 고통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배 선생이 어렸을 때는 차별받으며 일본 사회에서 방황하기도 했지만 조선학교를 가게 되면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깨닫게 된다. 일본 사회에서 정식 학력으로 인정되지도 않고 학비도 전액 부담해야 했지만 자녀와 손자들 모두 조선학교에 보냈다. 70이 넘은 지금도 우리 말글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제, 자녀, 손자까지 4대 모두 일본에 귀화하지 않고 민족혼을 잇고 있다.

배 선생의 삶에 어머니 강금순 여사의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그는 강제징용 당시 어머니의 사진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의 가족이 일본으로 귀화하지 않고 민족성을 지키며 조선인으로 살 수 있는 힘도 어머니에게서 나왔다. 어머니는 일본 땅에서 조선인으로 차별과 막노동, 굶주림을 당하면서도 7남매를 조선학교에 보내 민족정신을 지키게 했다. 그 과정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주었지만 어머니의 꿋꿋한 품성은 강제징용의 땅에서도 강직한 민족혼을 뿌리내렸다.
어머니 강금순 씨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한다. “일본 땅 한구석에 재일동포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손톱자국, 발톱자국이라도 남겨야한다.” 그 뜻을 마음에 품고 어머니는 1986년부터 후쿠오카 키타큐스 일본학교에서 한국과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수업을 시작했다. 배 선생은 어머니의 뜻을 이어 1995년부터 수업을 함께 했다.

수업은 한국문화를 소개하고, 미래지향적인 한일문화 교류를 하자는 이름으로 하지만 목적은 딴 데 있었다. 일본 땅에 살고 있는 조선인들이 어떻게 강제로 끌려오게 되었는지, 일본에서 조선인들이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2004년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누나 배동선 씨와 함께 수업을 진행했고, 얼마 전까지는 딸과 함께 수업을 진행했다. 2016년 2월 19일자로 지난 20년간 1000회 강연을 마쳤다. 선생의 강한 신념과 끈기에 존경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일본 내 조선인 강제징용의 흔적을 찾아가는 사람은 배동록 선생을 꼭 만나게 된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끌어간 우리 민족의 처절한 고통과 해방,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억압과 차별정책에 따른 피해를 고스란히 경험한 배동록 선생은 살아있는 증언자다.

강제징용된 조선 사람을 부산에서 실어 날랐던 ‘관부연락선’의 도착지인 시모노세키항에 얽힌 역사적 아픔, 6000여 명 강제징용 노동자가 있었던 야하타 제철소, 아소가문 탄광지대에 있었던 착취와 만행 등 역사현장을 안내하고, 우리 민족의 고통을 후대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또 양심있는 일본인들과 함께 강제징용 역사를 일본 땅에 기록하고 남기는 일에 가장 적극적인 분이다.

배동록 선생 등은 1990년 8월부터 조선인 강제징용의 증거인 마와타리 조선인 사택건물 보존을 위해 노력했다. 1993년 미쓰이 석탄광업이 사택 토지를 민간기업에 매각하려 하자, ‘마와타리 조선인 수용소 사택을 보존하는 모임’을 결성, 미쓰이미이케 석탄광업소와 오무타시에 51호동 건물, 벽서를 보존하자는 대중운동을 끈질기게 벌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51호동 수용소는 해체되었지만 1997년 3월 제51동에 가까운 마와타리 제1공원 안에 ‘기념비’가 세워졌고 ‘벽서’는 석탄산업과학관 안에 보존하게 됐다.

또 전쟁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을 추모하고 평화를 호소하는 국제반전평화순례 행사도 진행했다. 2007년에는 일본이 한국에 저지른 죄를 사죄하기 위해 ‘STONE WALK IN KOREA 2007’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했으며, 일본 각지에서 모금해 만든 비석을 한국에 가져왔다. ‘사죄와 우호, 평화를 위하여’라는 글귀를 새긴 ‘평화의 비석’의 무게는 1톤이다. 배 선생은 일본의 전쟁범죄를 사죄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비석을 수레에 싣고 끌면서 부산에서 임진각까지 국토종단을 했다.

배동록 선생이 가진 소원은 아주 단순하다.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재된 야하타 제철소 안내판에 “야하타 제철소에는 조선인들이 있었다. 조선인들이 강제노동을 했다”는 글 한 줄을 남기는 것이라고 한다. 일본 땅 한구석에 재일동포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손톱자국, 발톱자국이라도 남겨야 한다는 그의 어머니 강금순 여사의 바람처럼.

배 선생은 오늘도 일본 땅에서 조선 민족의 삶을 기록에 남기고, 일본에 강제연행된 조선인들의 고통과 재일동포들이 당하는 차별과 억압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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