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기(茶器) 수집

김상천 시인 / 기사승인 : 2021-02-26 00: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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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향만리

 

청허당(淸虛堂) 다실(茶室)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이 진열해 둔 다기(茶器)를 보고 놀라기도 하고 부러워한다. 자리에 앉기도 전 먼저 집 안에 있는 다기들을 둘러보고 조용히 감상하는 것이다. 그래서 찻자리에 앉으면 자연스레 다기들에 대한 말들이 오고 가는데 비슷한 종류의 다관(茶罐)이나 자사호(紫沙壺), 분잔(分盞), 다완(茶碗)들이 왜 이렇게 많으며 수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때마다 나는 한편의 에세이를 쓰듯 말해야 한다. 방 안에 있는 모든 다기는 나름대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고 추억이 묻어 있으며 그것을 만든 장인의 소중한 생애가 담겨 있으니 표면적으로는 다기를 수집해 진열해 놓았으나 실상은 장인의 생애를 수집해 놓은 것이고 지난날의 아름다운 이야기와 추억을 담아 보관한 것이다. 어떤 자사호 하나를 잡으면 그것을 구입하거나 선물 받은 날의 이야기들이 실타래처럼 풀려 나온다. 그리고 그때의 추억의 사람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차를 즐겨 마신 지가 어느덧 30년이 넘었다. 누구라도 한 세대가 지나도록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전문가가 되고 깊이 체화(體化)돼 생활 속에 절로 흘러나오게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수많은 물건을 모으게 되고 소중히 간직하게 된다. 내 삶 속에 배어 있는 차 문화의 연륜이 수많은 다기를 통해 연출되는 셈이다. 세월이 지나니까 이렇게 많아졌다고 말한다. 다기(茶器)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에게 애써 의식하며 수집하려고 하지 말고 시간이 지나면 절로 그러하게 하라고 권한다. 나는 단 한 번도 미리 돈을 준비하고 계획한 뒤 다기를 구입한 적이 없다. 차를 좋아하며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많은 예산을 세우고 다기(茶器)와 다구(茶具)들을 단번에 다 구입한다면 다기와 다구는 수집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야기는 없다. 추억도 없으며 그것을 만든 장인의 생애 속에 담긴 미적 담론은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함께 차를 좋아하고 다기를 모으지만 아내와 나는 좀 다르다. 나는 자사호, 다관, 다완, 다구 등에 관심을 두는 반면 아내는 분잔에 관심을 두고 수집 진열하며 손녀처럼 예뻐한다. 그래서 청허당에는 분잔(分盞)을 식당 방에 들어가야만 볼 수 있다. 식탁 가까이 분잔 진열장이 있는데 아마도 수백 종류의 분잔이 진열돼 있는 것 같다. 잔 하나하나에는 아내만이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진열장 앞에서 찻잔을 만지고 있는 아내가 예뻐 보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 


때로는 지인들에게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 많은 것 하나 주면 좋은데 절대로 나눠 주질 않는다는 것이다. 차에 대한 욕심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때마다 나는 긴말로 오해를 풀어줘야 한다. 어려운 시절 먹을 것은 없고 자식은 많으니 입이라도 들려고 자식이 없는 집에 입양시키는 경우가 있었다. 어떤 사람이 자식 하나를 보내기로 하고 잠을 자는데 밤새 생각하다 아침이 돼서 거절했다고 한다. 자식 하나하나를 염두에 두고 생각했지만 결국 하나도 보낼 수 없더라는 것이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이다. 내가 다기를 좋아하는 것이 자식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수많은 날들 속에서 무언의 대화를 나눈 소중한 것들이다. 찻잔 하나를 주면 그냥 잔 하나가 아니다. 그 잔 속에 담긴 내 이야기와 추억들을 주는 것이다. 나만의 이야기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무의미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건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추억들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긴 사연을 조용히 듣고는 다들 머리를 끄덕인다. 무료한 생활이 지겨운 사람들에게 나는 문화 활동 중 어느 작은 것에 관심을 두고 가까이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일생 동안 다져놓은 생각이나 사상들을 그 속에 투여할 때 그것은 다시 내게 큰 의미가 돼 돌아온다고 말해준다. 나는 누구에게도 줄 수 없는 수많은 기념물을 갖고 살고 있는 것이다. 


김상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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