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전은 부엌에서

김윤경 글 쓰는 엄마 / 기사승인 : 2021-02-26 00: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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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기

“우리 아들이 네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다.” 이번 설날 시댁 부엌에서 들은 말이다. 7년 전쯤 “네가 우리 아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말도 시댁 부엌에서 들었다. 그때 나는 얼었다. 모두가 잠든 밤이었고 어머님과 나 둘만 부엌에 있었다. 뒷목이 서늘했다. 팔에 닭살이 돋았다. 깜짝 놀랐다. 그 후로 어머님과 대화 중에 그런 말을 하셨다고 과거를 회상한 적이 있었다. 이번엔 어머님이 깜짝 놀라신다. “내가 그런 말을 했었니? 기억이 안 나는데. 그랬다면 미안하다. 시아버지한테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번 설날에 나는 예전과 달랐다. 얼지 않았다. 어머님과 주고받기가 되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대화의 배경은 이랬다. 설 연휴 첫날 시댁에 갔다. 어머님은 2시간만 자고 일어나 명절 음식 막바지였다. 매년 명절 음식의 종류와 양이 줄고 있다. 환영할 만한 변화다. 명절 앞두고 안부 전화 드릴 때면 늘 어필한다. “이번엔 얼마나 하세요? 줄이면 좋겠어요.”


명절 음식은 줄었으나 어쨌든 장보기부터 재료 다듬고 장만하기까지 보통 일이 아니다. 기름 두르고 굽는 건 그나마 제일 낫다. 그 전 과정들이 만만치 않다. 동서는 가게 일로 못 왔다. 첫날에 가서 음식을 같이 해야지 싶었다. 어머님의 목표는 내가 오기 전까지 다 끝내기였다. 얼마나 숨 가쁜 과업인가. 그 연세에 2시간밖에 못 자고 서두르신 거다. 도리어 미처 끝내지 못한 사정을 얘기하신다. 짠하다. 며느리들에게 명절 부담을 안 주려는 의도로 느껴졌다.


명절 음식만 하는 게 아니다. 부엌이 쑥대밭이다. 냄비마다 별미들이 담겨 있다. 냄비는 또 얼마나 큰지. 큰아들네, 작은아들네 나눠주느라 바쁘시다. 김치도 종류별로 갓 담그셨다. 내 눈엔 어머님이 파김치로 보였다. 어머님께 먼저 말을 걸었다. “어머니, 동서가 못 온다고 하니까 저 시키기 그래서 무리해서 다 하신 거에요? 힘들어 보이세요.이 정도면 명절 스트레스 있으시겠는데요?” “몸은 안 힘들다. 자고 나면 풀리니까. 마음에 명절 스트레스가 있어서 그렇지. 너도 명절 스트레스 있니?”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어머님의 센스가 돋보인다. 착한 며느리 병에 머물렀다면 “아니에요~ 명절 스트레스 없어요.” 했을 거다. 나는 딸 같은 며느리가 되고자 했던 그 몹쓸 병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그럼요~ 명절 스트레스 있죠~”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어머님이 기가 막힌다는 듯이 “네가 무슨 명절 스트레스가 있니~” 발끈하신다. 그 뒤에 설전은 상상에 맡긴다.


거실에 있던 남편이 벌떡 일어나서 부엌으로 온다. 초조한 기색이 역력하다. 뭐라 말은 못 하고 설전이 오가는 두 사람 뒤에서 왔다 갔다 한다. 그러다 내 옷깃을 잡아당긴다. 그만하라는 비언어적 메시지다. 나는 멈추지 않는 대신 어머님께 물었다. “어머니 저랑 이런 대화하는 거 불편하세요?” 어머님이 “이렇게 말하는 게 더 낫지” 대답하자 남편이 물러갔다.


“네가 까칠하고 속이 좁다. 나는 착한 A형이고 너는 소심한 A형이다.” 어머님의 공격에 인정할 건 인정했다. “제가 가시가 있을 때가 있긴 해요. 저도 어머니가 착한 A형이신 것 같아요. 그래도 저 따뜻하다는 말도 들어요.” 인정과 반박으로 뒤범벅된 대화였다. 시종일관 불꽃이 튀진 않았고 중간중간 서로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나물을 만들던 중이었다. 어머님은 대화에 집중하느라 썰어놓은 무를 냄비에 덜 넣었다. 부엌에서 농도 짙은 설전이 오간 후 저녁을 먹고 돌아왔다.


며칠 지나고 안부 전화를 드렸다. 혹시 고부간의 설전 이후로 불편하진 않으신지, 이 말을 했어야 했는데 못해서 답답한 건 없으신지 물었다. 우리가 다녀간 다음 날, 눈에 염증이 나서 고생했다고 밝히셨다. 2시간 자고 명절 일을 하셔서 그렇다고, 앞으로는 무리하지 마시고 같이 하자고 했다. 남편에게 설전이 오갈 때 어땠는지 물어봤다. 언성이 높아질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이렇게라도 대화해서 풀리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단다. 명절 스트레스가 고부간의 설전으로 이어졌다. 시댁은 여전히 어려운 관계다.


김윤경 글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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