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산(玉山), 백택안산(白澤安山), 그리고 수정마을

이동고 기자 / 기사승인 : 2019-04-10 21: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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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쓰는 자연 이야기
▲ 수정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고즈넉한 골목들이 감싸는 아주 오래된 집들이 많이 남아있어 편안하다. 다정큼나무. ⓒ이동고 기자

 

[울산저널]이동고 기자=  봄날을 만끽하며 가는 길이었다.

길가에 아주 오래돼 보이는 농협창고와 방앗간으로 보이는 건물이 있길래 차를 멈췄다. 골목으로 들어가니 노인분이 마당에서 철재를 자르며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노인은 방앗간은 이제 멈춰 섰으나 아주 오래된 건물이라고 한다. 방앗간 건물이 으레 그렇듯 건물 벽에 덕지덕지 덧댄 양철판에도 벌겋게 녹이 슬어 있다.


마을은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아다녀도 사람 한 명 마주치기 쉽지 않다. 마을을 소개하는 입석에는 ‘수정마을’의 유래가 ‘작하(酌下)를 풀어 쓴 말’이라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위에 자리한 자수정 산지에서 유래했다고 보면 좋을 듯하다.

울주군 삼남면은 양산과 접하고 있다. 이 중 삼남면 교동리(校洞里)에는 평리(平里), 수남(水南), 작하(酌下), 상평(上平), 중평(中平), 향교(鄕校), 벌장(閥場) 등 다섯 행정마을이 있다. 이곳 교동리 봉화산(891m) 동쪽 능선 일대에서 무문토기편 등이 출토되기도 했으며,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삼국시대 고분군도 분포되어 있다. 이 교동리 맞은편 작괘천이 흘러가는 KTX역 방향 신화리에서 구석기 유적 문화층과 구석기 유물이 조사되면서 울산의 시작이 적어도 3만5000년 이전으로 올라갔다.

교동리 자수정이 나는 산을 백택안산(白澤案山)이라 부른다. 백택(白澤)은 작괘천을 달리 부르는 이름인데, 작괘천 바닥이 하얀 화강암이고 물살에 군데군데 돌이 패여 물이 고이고 햇살이 비치면 눈이 부시게 빛나는 ‘하얀 못’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졌다. 현재 자수정 동굴나라가 있는 지역은 ‘옥산’이라고도 불렸는데, 우리 조상들이 귀한 장신구로 이용했던 자수정 생산지였기 때문이다.

옛 문헌과 유물에서 확인된 초기 자수정 채취 시기는 신라시대로 알려졌다. 신라시대 ‘금령총’에서 5~6세기경 수정 목걸이가 나왔고 ‘안압지’에서 발굴된 ‘진단구(鎭壇具·탑을 세우거나 집을 지을 때 복을 기원하기 위해 땅속에 묻어둔 공양품)’에서 자수정이 확인된 것으로 볼 때, 자수정은 예로부터 귀한 장신구로 사용됐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식민 통치하면서 많은 양의 자수정을 불법으로 채취해 자국으로 반출했다. 일본 천황실의 상징색은 보라색으로 일본인들은 특히 자수정을 선호했는데 언양 자수정은 붉은 기가 많아 더욱 귀하게 여겼다고 한다. 해방 후 광산 인근 주민들이 원시적인 도구를 사용해 자수정을 채취하기도 했지만 1960년대부터 이 지역 산주(山主)들이 캐내기 시작했다.

1969년 4월 3일자 경남매일 기사를 보면 자수정 가공 공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울주군은 225만원을 들여 4월 중순께 언양면에 자수정 가공 공장 1백 평을 설치한다. 7월 준공과 더불어 가공 작업에 들어가면 관내에서 생산되는 자수정으로 연간 72만 개를 가공하게 되며 7억2천만 원을 벌어들인다고 한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직원 고용에 대한 내용이다. “불우자 50명을 동 공장에 취업시켜 숙련공으로 양성할 것이라고 하는데 이 같은 계획은 지난 해 11월 울주군 언양면 남부리 정원대(40) 씨가 자수정 가공을 시작한 것에 힘입은 것이란다.”

1975년에는 지역 산주들이 중심이 돼 ‘경상남도 토사석 채굴업 협동조합’을 결성했다. 1981년에 자수정이 법정 광물로 지정돼 진가를 인정받았고, 1982년에 현재의 자수정 동굴나라의 모체인 ‘제일광업사’가 설립돼 체계적이고 본격적인 자수정 채광을 시작했다. 광산에서 생산되는 언양산 자수정은 국제 공인 기관인 미국 보석 연구원(G.I.A)에서 세계 최고의 품질(색상, 경도, 투명도 등)로 인정받게 된다.

자수정은 멀리 상북면 향산리 능산부락에서도 나왔다. 1967년 12월 22일자 경남매일 기사내용이다. “울주군 상북면 향산리 능산부락(52호) 주민들은 농한기 유휴 노동력을 활용해 요즘 논에서 자수정 캐기에 한창이다. 부락 주민의 말에 의하면 동 부락 주민 이성홍(32) 씨가 66년 2월경 우연히 능산부락 논에서 자수정을 발견한 것이 발단이 되어 지금까지 동 부락 주민들이 계속 발굴한 결과 동 부락 논 약 20정에서 자수정이 발굴됐다... 발굴 인원은 한 달 평균 50명, 평당 3백 원씩 보상비를 주고 파헤치고 있다...” 한동안 자수정 동굴 일대는 골드러쉬처럼 많은 이들이 달려들었고 어떤 이는 흥하고 어떤 이는 가세 탕진으로 마을이 요동쳤던 적이 있었다.

교동리 수정마을은 이제 잠자듯 고요하다. 봄날 밭고랑을 고르는 사람들을 몇몇 본 게 다였다. 닫힌 지 언제인지 모르는 녹슨 철제문 앞에 황매만 피어 있고, 마당에는 동백꽃이 한창이다. 고즈넉한 흙담으로 된 빈집의 고택은 기원을 알 수 없는 큰 다정큼나무가 집을 지키고 있다. 짧은 기행으로는 다 알 수 없는 많은 이야기를 가진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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