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은 끝났다", “입 꾹 다물어라”

이동고 기자 / 기사승인 : 2019-04-10 21: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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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베던 날, 할머니들은 모두 절로 향했다
▲ 우리 앞에서 사라졌을 때 그 허전함을 알게 된다. 정자도 옮길 예정이다. 그 옆 느티나무라도 잘 자랐으면 한다. ⓒ이동고 기자


[울산저널]이동고 기자= 5일, 본보가 보도(4월 2일자)한 북구 대안마을 상수리나무가 결국 베어졌다. 아침에 소식을 전해 듣고 오후에 현장을 둘러봤다. 이제 막 꽃을 연두색으로 피우고 있던 나무는 토막 나 있었다. 나무 둘레가 한아름에 나이테를 대충 세어 봐도 90년에 가까웠다.


노인회관에 모여 있는 할머니를 만나고 또 식당을 하는 할머니를 만났다. “모든 일은 끝났다” “입 꾹 다물어라” 목소리는 단호했고 할머니의 눈빛이 강했다. “제일 무서운 것이 목신이다. 잘못하면 급살 맞는다.” 나무는 베어졌고 이런 일 자꾸 들먹거리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동네 노인들 우환을 키우는 일이라는 생각에 벌목을 문제 삼는 기사는 쓰지 않으려 생각했다. 사실 대안마을 사람들은 나무가 베어지는 책임에서 아무도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마을 땅 대부분이 하천부지였고, 노인회관 건물도 하천부지로 되어있어 사용료를 국가에 문다고 했다. 도로가 마을 앞마당을 지나는 것도 검토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땅은 주차 등으로 요긴하게 쓰는 땅이라 정자 옆길로 돌리게 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나무를 베기 전 공사 담당자가 왔었고 할머니는 나무를 베려면 청명, 한식일을 택하라고 마지막 당부를 했다. 혼이 편하게 하늘로 간다는 날이다. 그날이 마침 4월 5일 식목일이었다.


나무를 베는 날 아침, 할머니는 일꾼들에게 액땜을 할 날계란 세 개와 위로할 소주 한 병을 챙겨주었다. 아침에 동네 노인들과 식당 할머니는 나무 베는 모습을 보지 않으려 절로 향했다.  

 

취재를 마치고 차를 타려는데 다시 할머니가 종종걸음으로 따라 나왔다. “기자 양반, 부탁 하나 합시다. 저기 베진 나무들 빨리 좀 치워달라고 하소.” 그쪽으로 눈길을 돌리려 하지 않았고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아까 표정과는 다른 공포가 서려 있었다. “벌목 문제는 더 이상 논란 일으키지 않도록 하고 이런 일이 있었다고만 전할게요.”


조금 여유 있게 주민 의견을 모았다면 정자만 옮기고 나무를 중간에 두고 도로를 내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동네 할머니들도 너무 늦게 알았고 기자도 너무 늦게 제보를 받았다. 마을 일은 이장과 개발위원들 몫이었다.


잘린 그루터기에 깨진 날계란 흔적을 보니 순간 소름이 돋았다. 옆에는 소주 빈 병이 보였다. 할머니 말을 들은 터라 오래 쳐다보지는 않고 바로 자리를 떴다.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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