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황룡사지를 거닐며

황은혜 기억과 기록 회원 / 기사승인 : 2021-02-03 00: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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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

 

 

 

황룡사 9층 목탑이 복원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 탑은 1976년부터 10년간 발굴과 함께 세밀한 조사가 진행됐지만 워낙에 규모가 큰 데다가 전해지는 기록 또한 누가, 언제, 왜, 어떻게 세웠는지 정도만 있을 뿐이라 많은 유명세에도 복원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비슷하게’와 ‘완벽하게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이를 왔다 갔다 하지 않았을까 한다. 지금까지의 연구를 토대로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었다가 혹시 나중에 더 좋은 기술이 생기거나 복원된 모습과는 다른 연구 결과가 나온다면 뒤처리가 곤란해질 것이고, 그렇다고 언제가 될지 모르는 기술개발을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어쨌든 많고 많은 논란을 뒤로하고 황룡사 9층 목탑이 복원됐다. 아주 재미있는 방식으로. 


이번 복원은 ‘얼마나 완벽하게 만들었나’에서 완벽하게 벗어났다. 어느 한 모습으로 쌓아 올리지 않고, 다양한 버전으로 보여줄 수 있는 증강현실을 활용한 것이다. 덕분에 막대한 예산에 비해 완벽한 복원이 어려운 점, 이후 오류가 발견돼도 수정이 어려운 점, 늘 뒤따르던 문화재 훼손 논란들을 완벽하게 극복했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스마트기기를 활용해 건물 안을 거닐 수 있고, 곳곳에서 발견되는 유물을 확대하거나 움직여 가며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도 있다. 물론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이 모든 인위적인 재현이 싫다면 현재 그대로의 모습을 감상하면서 알알이 박힌 심초석을 돌며 마음껏 산책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본인의 취향대로 체험하면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후자가 더 좋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여기저기 걷다가, 곳곳에 세워진 이야기들을 읽고 마음껏 상상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기 때문이다.


황룡사 9층 목탑은 643년 선덕여왕 때 지장 율사의 발원으로 조성됐다. 9층은 신라 주변의 9개국을 의미하는데 불법에 의지해 주변 나라들의 침입을 막고 삼국을 통일하겠다는 발원을 담았다. 871년 경문왕 때 탑이 기울어지자 중수됐고, 1238년 고려 시대에 몽골의 침입으로 불에 타 소실됐다. 


황룡사 9층 목탑에 얽힌 이야기는 <삼국유사> 말고도 찰주본기에 기록돼 있었는데, <황룡사찰주본기>가 세상에 나온 과정이 참 흥미롭다. 1960년대는 도굴꾼들에 의한 문화재 도난과 훼손이 심각한 시기였다. 그중에서도 1966년 불국사의 석가탑 도굴은 매우 심각한 사건으로 각종 신문에 보도되면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 두 명의 도굴꾼과 서울에 거주하던 골동품판매업자가 체포되면서 그동안 도난된 문화재들을 압수할 수 있었는데 이 가운데 <황룡사찰주본기>가 있었다. 압수 당시에는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라 몇 년이 더 지나서야 찰주본기에 기록된 내용을 해독해 낼 수 있었다고 한다. 황룡사지 도굴은 석가탑 도굴 2년 전인 1964년에 있었던 일이었다. 1966년 9월 24일 <동아일보> 기사에는 도굴범의 현장 검증 사진이 실리기도 했다. 이렇게 훔친 유물들을 서울의 골동품 판매업자에게 15만 원에 팔았다고 하니 온 국민이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황룡사지의 넓은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이 옛것의 탈을 쓴 현대식 건물이 아니어서 참 좋다. 앞으로도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찾아낸 더 재미난 이야기로 가득하기를.


황은혜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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