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바지 추위 그리고 우연과 함께한 달음산

노진경 시민 시민기자 / 기사승인 : 2021-02-03 00: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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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산행

입춘(양력 2월3일)이 임박했다. 겨울과 봄이 엎치락뒤치락한다. 며칠은 따뜻해 외투를 들고 다녀야 하고 또 다시 며칠은 추워 입은 모든 옷을 여미고 다니게 한다. 따뜻하고 보드랍던 나날 중 산행을 기약했다. 머피의 법칙처럼 벗과 산행 전날에 진눈깨비가 왔고, 다음 날엔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암만 추워 봐라. 옷 사 입나 술 사 먹지’라는 글을 어느 술집에서 본 기억이 난다. 그 문구의 호기와 다르게 여간 마음이 나질 않는다. 따뜻한 이불 속에 누워 전화로 대화를 나눴다. “오늘 꼭 가야 할까?”, “따뜻하고 경치 좋은 곳에 앉아 차를 한 잔 하고 싶다.”, “하지만 산으로 간다면 분명 좋다고 할 거야.” 등의 무의식의 흐름을 따라 떠오르는 의미 없는 말들을 나누며 이불에서 나와 배낭을 쌌다. 


집을 나섰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은 움츠러들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이 시작됐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작가인 장 폴 샤르트르는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se)’라고 했다. 이렇게 무수히 많은 선택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체화한다. 딱히 끌리는 선택이 없을 때는 일렁이는 깊은 바다에 몸을 던져놓고 둥둥 떠다니듯, 내 의지를 제외한 다른 조건에 맡겨보는 것이다. 


벗과 필자가 함께 아는 산우에게 전화를 걸어 요즘 시쳇말로 ‘최애(최고로 애정하는) 산’을 물어본다. 그이가 우리에게 ‘달음산’이라고 대답해준다. 선택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주려는 그녀의 말을 거절했다. 그저 어느 입구로 산에 들어야 할지만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판단하거나 예상하지 않는 산행을 시작해볼 요량이었다. 


옥정사 주차장부터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의 시작은 언제나 그랬듯 화장실을 들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차장의 화장실이 너무 깨끗하고 정갈한 덕에 기분이 좋아졌다. 일기예보를 보고 예측한 날씨는 의외로 못 견딜 추위가 아니다. 역시 예상이나 예측은 별 힘이 없다. 어쩌면 겁이 나 겹겹이 껴입은 옷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 옥정사와 달음산
▲ 산행을 시작하는 초입에서


절 뒤로 보이는 산이 자그마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따라 걷는다. 몇 걸음 안 가서 만난 편백숲이 청명한 하늘과 함께 싱그럽다. 봄을 기다리는 겨울에 푸른 나무를 만나는 것은 언제나 반갑다. 골을 따라 오르는 길이 고요하다. 바람 한 점 없이 우리의 숨소리와 발소리로 가득하다. 

 

▲ 편백숲길

그 고요가 익숙해질 때쯤 능선으로 오르는 길을 만난다. 벤치 둘과 ‘잠시 쉬어가는 곳’이라는 문구가 있다. 그 문구를 실행에 옮겨 쉬어가고 싶지만, 능선 위의 벤치는 아까 고요한 길과 다르게 바람이 쌩쌩 분다. 정말 쌩쌩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바람이다. 재킷에 달린 모자를 한껏 여민다. 길도 아까와 다르게 가팔라졌다. 몰아쉬는 뜨거운 입김과 차가운 바람이 마스크 안으로 콧물이 흐르게 만든다. 

 

▲ 능선 위의 잠시 쉬어가는 곳

 

▲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면 만날 수 있는 경치

가쁜 숨을 고르기 위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파란 하늘과 기장 바다의 청명함에 감탄한다. 가파른 길이 끝나고 정상이 나오길 기대했으나 다시 또 길이었다. 산하에서 본 정상은 나지막했다. 눈으로 본 것을 사실로 삼고 ‘곧 도착하겠지’하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희망고문에 가뒀다. 내맡기기로 했으면서 평소 습관처럼 또 예상하고 예측했다. 

 

▲ 정상에서 바라본 기장 바다

 

▲ 산행 중 쉬어가는 쉼

잠시 길 위에서 쉬어가기로 했다. 가파른 길 옆에 있는 판판한 땅을 찾아 바닥에 앉는다. 가져온 커피와 빵을 나눠 먹는다. 걷는 동안 스스로를 힘들게 한 생각을 반성한다. 걷는 중의 쉼이 참 고맙다. 벗이 가져온 과자 통에 ‘행복은 멈출 줄 아는 능력’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그 글을 같이 읽으며 피식 웃는다. 이렇게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문장이 다가오는 일이 참으로 신기하다. 

 

▲ 정상으로 향하는 바위길

 

▲ 정상 아래의 바위를 넘어가는 길

큰 바위를 몇 번 넘고 나서야 정상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경치 덕에 추위는 잊었다. 우리는 정상 어귀에서 바람 피할 곳을 찾아 자리를 깔고 앉았다.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과 하늘을 바라보며 자연의 경이로움을 가슴에 담는다. 오늘을 교훈 삼아 찰나에 집중하며 예상하고 예측하기를 덜어내 보리라고 마음먹는다. 

 

▲ 달음산 정상에서 바라본 경치

 

▲ 정상 어귀에서 맛보는 핫초코

노진경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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