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실부처 미소는 천년이 지나도 온화하다

이동고 기자 / 기사승인 : 2019-05-08 20: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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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쓰는 자연 이야기

 

▲ 익히 알고 있다는 지식이 우리를 얼마나 지겹게 하는지, 인문학적 체험은 현재적으로 살아 꿈틀거린다. 경주 남산 절골 감실 할매부처 ⓒ이동고 기자


경주는 어디를 가든 유적지다. ‘그냥 무작정 둘러보기’로 다녀도 난데없는 유적이 나타난다. 무작정 걷기가 가진 매력은 바로 틀에 매이지 않는 여행이다. 백무산 시인의 ‘난데없는 것 난 곳 없어라’라는 싯구처럼 살아가는 것은 ‘난데없는 일들’이 생기는 것이고 무작정 걷기를 통해 겪는 ‘난데없음’이 더 생생한 감동으로 전해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무작정 매이지 않고 가는지 모른다.

무작정인 길도 여러 번 쌓이면 길이 보인다. 길 아닌 길이 없다. 나서면 길이 되는 길을 즐기는 것이다. 길은 목적지를 직선으로 잇는 빠른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과는 시간을 더 늦추고 싶은 길도 있다. 깊은 체험은 효율을 벗어나 있고 제 몸으로 겪는 고생길에 있다. 목적이 없을 때 사람은 가장 현재적이다.

지난 주말은 그동안 경주를 쏘다닌 경험으로 동무들 경주 나들이 안내를 했다. 경주를 한 번도 오지 않았던 동무는 없었지만 경주를 잘 알지는 못했다. 수학여행으로 왔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중년 넘어 다시 온 이 남정네들에겐 이날 일정 자체가 경주에 대한 첫인상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걸어가기’를 권했다.

먼저 역전시장을 들러 요기라도 하고 떠날 참이었다. 경주역 건널목을 건너면 바로 시장통이다. 안 골목으로 들어가 이끈 곳은 분식거리 골목이다. 순옥이네, 소고기국밥, 순대, 떡볶이, 튀김, 다채로운 먹거리를 자랑하는 장터 역사처럼 푸근한 맛이 있다.

경주역에서 왕릉급 무덤이 있는 쪽샘 유적지를 지나 월정교로 해서 낭산을 올라 선덕왕릉을 찾아갈 예정이었다. 널따란 땅에 웅크리고 있는 젖무덤 같은 봉분들 옆으로 쪽샘 유적지는 계속 발굴 중이다. 물맛 좋기로 유명했던 쪽샘 일대는 4~6세기 신라 귀족들의 무덤이 한데 모인 곳이었으나, 고려시대부터 쪽샘 마을이 들어섰다. 광복 이후 도심이 개발되면서 집과 상가가 빽빽이 들어섰고 ‘쪽샘 신라고분공원 조성사업’이 되기 전까지 경주시민들의 오랜 삶터가 되어 왔던 곳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이 일대를 2007년부터 발굴 조사했다니 10년이 넘는 기간이다. 울타리를 쳐놨지만 격자로 파인 발굴터를 까치발을 하고 넘겨 봤다.

교동리 최부자집과 궁궐같은 월정교를 지나 선덕왕릉이 있는 낭산으로 향했다. 승냥이가 웅크린 모양같은 낭산(狼山)은 오래전부터 진산으로 여겨져 왔다. 낭산 높이가 108미터, 절묘한 길이다. 철길을 건너 낭산 잘록한 부분을 오르면 흙과 돌이 차곡히 몸을 섞은 능지탑이 나오고 중생사(衆生寺)라는 이정표가 있다. 이 절에는 그 이름만큼 소박한 보살이 모셔져 있다. 마애보살삼존좌상. 전각은 격식을 갖췄지만 천년의 빗방울에 씻겼는지 할머니같은 보살 표정마저도 희미해져 있다. 양옆 조각은 그 형체마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마당 한 켠에는 단아한 오층석탑까지 갖췄지만 대웅전은 단청이 바래 폐사처럼 고요하다. 작은 개 한 마리가 꼬리 치며 반기는데 가벼운 짐으로 나선 터라 군것질거리 하나 꺼내줄 것이 없어 아쉬웠다.

낭산의 잘록한 허리를 밟고 능선을 오르면 구부정한 소나무들이 즐비한 소나무숲이 나온다. 얼기설기한 소나무들 사이로 봉긋한 봉분이 보인다. 천년 세월 앞에도 아직 팽팽한 선은 수 없는 꽃가루를 날리는 푸르른 소나무처럼 생명감이 넘친다.

혼자 왔을 땐 탑돌이처럼 봉분을 돌던 중년 여성이 있었다. 선덕왕이 가진 아름다움과 지혜를 흠모하는 것이었을까? 50이 되어서야 왕이 된 선덕여왕, 재위 15년 동안 선덕여왕 황룡사 9층 목탑과 첨성대, 분황사탑을 만드는 대역사의 힘찬 기운은 어디서 온 것일까?
선덕왕릉 아래는 여왕이 자신의 무덤이 도리천이 될 것을 예언하고 증명한 사천왕사 절터가 있다. 도로 옆에는 비 받침돌인 멀쩡한 귀부가 두 개나 잔디밭에 아무렇게 놓여 있다. 역시 경주답다.

이제 남천 둑방길을 따라 걷다 징검다리 보를 건너 남산 절골로 방향을 튼다. 마지막으로 만날 감실 할매부처. 공식 이름은 경주마애여래좌상이다. 여래는 부처의 또 다른 이름이다. 유흥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나와 유명해진 감실부처의 얼굴은 자세히 보면 할머니가 아니라 소녀처럼 복덕스럽고 귀염상이다. 희한하게 생긴 자연바위 속을 1미터 가까이 파고 새긴 여래상이다. 표정이 후덕하고 친근하다.

엄격으로 거리감을 가진 후기 불상이 아닌 신라 초기 작품으로 보고 있다. 최초의 여왕인 선덕왕 얼굴을 새겼을 것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고 본다. 이 산자락 바위에 들어 천년 시간을 보내고도 그 온화함이 전해졌다. 서울에서 고교 수학여행을 경주로 왔다는 동무도 처음 본 감실부처 모습에 홀딱 반했다. 걸어온 보람이 있다.

다시 돌아와 처음 그 시장 장터집을 찾아 부추전에 신경주막걸리를 걸쳤다. 좌판을 벌인 길을 걸으며 툭 치며 말했다. “저 할머니 얼굴, 감실부처 같지 않어?” 감실부처의 표정은 장터 할머니들 얼굴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동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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