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라다크를 오가며 그가 본 것은 무엇일까

이동고 기자 / 기사승인 : 2020-01-02 19:4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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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쵸가 휘날리는 깎아지른 암자에서 살아가는 고승들
이상열 화백의 구곡문도(九曲問道), ‘구곡에서 길을 묻다’
▲ 이상열 화백은 나무젓가락을 이용해 라다크 그림을 그렸다. 종이를 구했으나 붓이 없어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그렸던 우연한 계기로 시작했지만 수행자가 살아가는 거친 산악지형의 질감을 표현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마침 전시장을 찾았을 때 그 나무젓가락 터치를 생생히 볼 수 있었다.  ⓒ이동고 기자

 

[울산저널]이동고 기자= 그림 전시회장을 들어가니 작가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전시장에서 그림을 그리는 작가는 처음이라 “지금 행위예술을 하는 것이냐” 물었더니, 곧 내일 단체 전시회에 낼 작품을 그리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그리는 것은 깎아지른 산 위 라다크 수행승들의 거처에 오색 깃발이 휘날리는 타르쵸(초기 불교경전을 인쇄한 오색 깃발)와 룽타(그런 기둥) 모습인데도 “개인전시회를 준비하느라 밀린 숙제를 한다”고 너스레를 칠 만큼 친근감이 배여 있다.

 

“지금 전시된 작품과 달리 터치가 좀 강하게 보인다”고 물으니 “지금은 몇 잔 마시고 그려서 그렇다”며 “전시된 그림들을 그릴 때 너무 힘이 들어서 다른 방법을 모색 중이다”라고 취중진담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의미는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가 10년 동안 인도 북부 라다크를 오가면서 그리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의 이야기를 빌어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을 좀 정갈히 해보자.

1. 그림 속에 나오는 지역은 어디인가?


그리는 대상은 인도 북부지역 라다크 ‘잔무 카시미르’ 지역인데 이곳은 여름 수도와 겨울 수도가 따로 있다. 지금 그리는 장소는 겨울에는 너무 추운 지역이라 여름에만 사람들이 생활할 수 있다. 겨울에도 사람이 살긴 하지만 물이 얼어 버려 생활이 무척 힘들다. 정부에서 3일에 한 번씩 소방차가 물을 공급하는 식으로 대처하고 있다. 여름에는 설산에서 녹은 물이 흘러 내려와 그것으로 농사를 짓는다. 저기 옥빛으로 보이는 물색이 바로 봄철인 4~5월색이다. 날이 더 풀리면 흙들이 섞여 내려와 시커먼 탁류로 변한다.

2. 왜 그리 라다크에 매력을 느낀 건가?


여기가 희안한 매력이 있다. 가면 사람이 빠져 든다. 사람들 영혼이 아주 맑고 타르쵸 깃발에 산스크리트어로 인도를 통해 들어온 초기 불교의 경전이 인쇄돼 있다. 바람 부는 마을에는 모두 이런 타르쵸가 내걸려 있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관심을 가져봤지만 그 깊은 뜻까지 해석은 힘들더라. 한 번 다녀오곤 처음엔 안 가면 병이 생기고 꿈속에도 나타나고 했다. 몇 번을 가니까 점차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은 가지 않아도 마음속에 항상 담아 두고 세상이 좋아지다 보니 페북으로 그 나라 풍경을 다 볼 수 있는 세상이 됐다. 라다크를 10년 동안 7번 갔다 왔다. 못 간 해는 3번 그림전시회를 했으니 라다크 작품활동으로 10년을 채운 셈이다. 직접 카시미르 지역에 가서 스케치를 하기도 하고... 기분이 좋으면 그림을 그리고 사진도 몇 만 장을 찍었다.

3. 라다크는 어떤 곳인가?


이 지역은 ‘레’라는 곳에 비행장이 있는데 비행기에서 내리면 해발고도가 3800미터다. 중국과 파키스탄의 국경을 마주한 곳에 만들어져 있는 중국 측 군사공항이다. 거기 중국과 파키스탄 비무장지대 넓이가 한반도의 몇 배다. 1960~70년대 중국과 전쟁을 했는데 인도가 말도 아니게 깨졌다. 그런 다음에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오지에 저런 길을 만들었다.


우리가 가는 길이 바로 군사도로로 뚫린 것이고 그 전에는 길도 없는 잔도 같은 길이었다. 옛날 실크로드도 있는데 당나귀나 사람이 다니는 정도의 길이었는데 패전 후 자국을 지키기 위한 조치로 군사도로를 낸 것이었다. 지금은 저 길을 따라 관광객이 들어오는데 주로 지프차와 트럭만 다닌다.


중국하고도 그렇고 파키스탄하고는 아직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난 다음에 종교적인 문제로 파키스탄하고 갈라졌는데 인도는 힌두교 국가고 파키스탄은 무슬림인데 ‘스리나갈’이라는 곳은 영역으로 볼 때는 파키스탄 영역인데 영주가 정치적인 문제로 인도에 붙었다. 그래서 스리나갈은 파키스탄 내의 섬 같은 힌두교 지역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파키스탄하고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안전 등 문제 때문에 분쟁의 역사에 대해 민감할 수밖에 없다.

4. 라다크에 가면 머무는 장소는 어딘가?


라다크 친구를 사귀었다. 여행가서 돈이 가장 많이 드는 것이 숙식이니까 친구네 방과 부엌을 얻어 밭에 있는 무도 뽑아 김치도 만들어 먹고 했다. 여름이 아니면 갈 수 없는 곳이기에 한 번 가면 30~40일을 머물고 나름 예술적인 영감을 얻어 온다. 라다크 음식을 먹는 것은 힘들었다. 쌀은 수입해서 먹는데 물은 눈 녹은 물을 이용한다. 짧은 기간에 농작물을 다 키우고 열매도 익어야 한다. 사과가 자라는데 탱자처럼 작다. 살구도 자란다.


그림을 그린 곳은 산악지형 위주인데 그 아래는 물이 흘러가 논밭 농사도 짓는다. 쌀, 보리 정도를 재배한다. 그것을 빻아 우리나라 선식이나 미숫가루 식으로 먹는데 그것이 주식이다. 스님들이 주로 그걸 먹는다. 전기가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4시간 들어오는데 그 시간에 밀린 이메일 공유하고 페이스북을 하면서 소통한다. 10시 지나면 전기가 나가버린다. 우리나라하고 3시간 정도 시차를 가진다. 같이 가자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건 겉모습만 보는 것이고 실제 가보면 아주 위험하고 힘들다. 2년 전에는 울산대 김연민 교수하고 같이 가서 찍은 사진으로 사진전을 함께 열기도 했다. 동행한 사모님이 고산병이 와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나도 고산병을 앓았는데 어지럽고 그랬다. 그곳 사람들은 환경에 적응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5. 학교나 병원은 어떤가?


현지에서 사귄 친구가 학교 선생인데 학교는 EBS 다큐 같은 곳에 나올 법한 아주 형편없는 시설이었다. 그냥 맨바닥에 엎드려서 책상도 없이 글을 배우더라. 기가 막히더라. 그것을 보고 난 뒤 다시 갈 때는 헌 옷 뿐만 아니라 가져갈 만한 것은 이것저것 가지고 갔다.
내가 묵은 친구 집은 그래도 배운 집안이다. 친구 아버지는 서양의학을 배운 의사선생인데 병원이 아주 작더라. 탈지면이 없다고 올 때 솜과 알콜 가지고 오라고 부탁을 하더라. 내가 아는 약사 친구들한테 전화를 걸어 모아 가지고 많이 들고 갔다.

 
술을 즐기니 그래도 현지에 인도산 양주 맥주도 있어서 그것을 주로 마셨다. 주세법이 아주 세다. 일반 술집에서 술은 파는데 자국민에게 팔지는 않고 관광객에게만 술을 판다. 아무 가게나 파는 것은 아니고 술을 파는 허가를 받은 가게만 판다. 인도 일반사람들은 술을 안 먹고 주로 관광수입을 위한 조치라고 보면 된다. 인도에는 술 문화가 없다고 보면 된다.

6. 그림을 나무젓가락으로 그린다고 들었다.


맨 처음에 그 지역에서 좋은 종이를 발견하고는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붓이 없는 거다. 그래서 버드나무를 꺾어 문구점에서 잉크를 구해 그리기 시작했고, 그 다음은 젓가락으로 그렸다. 이 그림 대부분이 젓가락으로 그린 그림이다. 젓가락이 닳으면 칼로 깎아내 다시 사용했다. 나무젓가락으로 그리니 가파른 산악지형이 갖는 거친 질감들이 잘 표현됐다.

7. 그들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봤나?


영어로 기본적으로 대화를 하고 말 안 해도 서로 웃으면서 이야기가 통하는 것이고. 아침부터 눈 뜨면 개인이 가지고 있는 마니차를 돌린다. 눈만 뜨면 마니차를 돌리고 마을로 나가면 또 큰 마니차가 있어 그것을 돌리고 혼자 있을 때는 또 염주를 돌리고. 불교가 특별한 신앙이 아니라 그냥 생활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욕심이 없다. 그 사람들 환경이 그래왔으니 자신들의 생활이 부족하고 빈약한 것 자체를 모른다. 항상 그래 왔고 그렇게 생활해 왔으니.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가 <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통해 라다크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 않았으면 라다크는 아직 그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8. 라다크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라다크는 군사공항이 있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인데 그 주변을 포함하면 원주민이 3만 명 정도다. 여름철에는 관광객 수가 더 많다. 관광객이 많아도 라다크 사람들은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카시미르 쪽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 장사를 하고 티벳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음식장사를 한다. 원주민 아주머니들은 밭에서 키운 야채만 파는 식으로 단순하다. 아직 라다크 원주민들은 배운 사람들이 없어 불어나는 관광문화에 적응을 못하는 것 같았다. 원주민들은 주로 겨울철에는 남쪽 따뜻한 지역으로 가고 여름이면 이곳에서 날품을 팔아 겨울을 나는 방식이다. 겨울철에 한 번 가서 살아 보려고 마음은 먹는데 기온이 영하 20~30도로 떨어져 너무 춥다고 한다.

9. 그림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


그림들을 젓가락으로 그린 것인 줄 모른다. 굳이 설명을 하지는 않지만 도구가 젓가락이라는 것을 알고는 놀란다. 이 그림 속의 오색 깃발인 타르쵸는 절벽집에 사는 사람들이 직접 이쪽과 저쪽 산을 연결하는 작업을 수행 삼아 한다. 일반인들도 타르쵸를 만드는 일을 하고 여행객들도 와서 복을 비는 마음으로 타르쵸 다는 일을 하기도 한다. 타르쵸를 가게에서 팔기에 그것을 사서 달기도 한다.

10. 달라이 라마가 라다크로 온다는데 사실인가?


인도의 ‘다람살라’라는 곳에 달라이 라마의 망명정부가 있다. 라다크 여기서 육로로 15시간 떨어진 곳이다. 다람살라는 사람이 3시간이면 다 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좁다. 산꼭대기에 있는데 여름에 가보면 비가 엄청 온다. 내걸어 둔 빨래가 마르지 않을 정도로 많이 온다. 그래서 달라이 라마가 지금 84세인데 여름만 되면 라다크 이곳에 와서 한 달을 보낸다. 여름에는 이곳에는 비가 한 방울도 안 온다. 이곳을 오면 라다크 사람들이 달라이 라마를 친견하려고 수십 만 명이 모이는데 장관이다. 달라이 라마가 티벳 말로 하면 영어로 통역을 해주는데 그 말을 다 알아 들을 수 없지만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대단하다.  

 

▲ 그가 10년동안 라다크 산악지형을 그린 것은 모든 것이 부족한 극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고승들의 맑은 영혼이다. ‘물질로 충만하지만 왜 그들보다 왜 행복하지 못할까’에 대해 묻고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을까?  ⓒ이동고 기자


11. 전시회 제목인 구곡문도(九曲問道)의 의미는 뭔가?


깊고 험준한 골짜기, 즉 구곡(九曲)에서 살아가는 것이 뭘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같은 지구에서 살아가는데 어떻게 저렇게 욕심 없이 살아갈까라는 질문이다. 환경적 요인도 있지만 욕심이 없이 살아가니까 행복하다고 본다.


그 사람들은 아이들 3명이면 한 명 정도는 절에 보내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다. 물론 아이들이 많으면 입을 하나 더는 것도 있고, 우리처럼 머리를 깎으면 속세와 인연을 다 끊는 것이 아니고 절이 집이고 집이 곧 절인 생활이므로 그 경계가 없다. 스님들이 모여 집단적인 생활은 기본적으로 한다. 이 높은 위치에 있는 집들은 다 스님들이 살아가는 절이고 일반 사람들은 다 아래에서 살아간다. 머리를 깎고 생활하다가 다시 머리를 길러도 되는 자유로움이 있다. 종교의 계율이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인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는 집과 절이 구분이 없는 일상 불교가 갖는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목사나 중은 돈만 밝히는 경우가 많은데 진짜 존경할만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자신이 농사를 짓기도 하고 탁발도 하고. 이 높은 곳에 학교와 병원이 다 있다고 보면 된다. 아래에서 마을 사람들이 올라오는데 아픈 사람이 있으면 전통적인 방식으로 치료하기도 하고 가르치는 일도 스님들이 한다. 그러니 오지에 있어도 스님들이 있는 곳이 마을생활의 중심이 된다. 라다크는 불교가 숨 쉬는 생활의 중심인 곳이다. 1000년 전에는 라다크도 티벳이었고 그래서 이곳이 초기 불교 모습을 더 갖고 있다고 본다.

12. 새해에는 어떤 작품 활동을 계획하고 있나?


이제 10년 동안 라다크를 다녔으니 그림만 돌돌 말아가지고 라다크에서 그림전시회를 한 번 정도 하려고 한다. 이 구곡문도 전시회 이후에는 이제 라다크 작품은 접고 다른 대상을 그리려고 한다. 제목을 구곡문도라고 지은 것도 앞으로 방향을 살짝 보인 것이다. 새해에는 우리나라에도 구곡이라는 이름을 가진 절경이 많으니 그런 곳을 찾아다니며 구곡 풍경에 얽힌 풍광과 선조들의 정신세계를 표현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다.

 
이동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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