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연성 외벽 패널이 키운 대형 화재

이기암 기자 / 기사승인 : 2020-10-13 19: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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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오피스텔, 제천 사우나 화재
외장재가 불쏘시개 역할, 건물 전체로
▲ 달동 주상복합 아파트에 발생한 화재로 인해 아파트 인근에 떨어진 구조물 등이 뒤엉켜 있다. ⓒ이기암 기자

 

[울산저널]이기암 기자=2010년 부산 해운대의 38층짜리 주거용 오피스텔에서 발생한 화재는 이번 울산 화재와 매우 유사했다. 이 화재는 가연성 알루미늄 패널인 외벽 마감재 때문에 불이 빠른 속도로 건물 전체로 번졌다. 이 사고 이후 고층 아파트 화재의 취약점을 들어 이듬해 ‘30층 이상 건물에 사용하는 외장재는 잘 타지 않는 제품(불연성)을 사용해야 한다’고 건축법이 바뀌었고 같은 해 9월에는 ‘6층 이상, 높이 22미터 이상 건축물은 불연 제품을 써야 한다’고 법을 개정했다.

 

2017년 12월 충북 제천의 한 사우나에서 난 화재는 29명이 사망하고 29명이 부상당한 참사였다. 1층 주차장의 차량에서 시작한 불은 계단과 통로를 통해 순식간에 건물 위로 번져나갔다. 이 화재도 외장재가 불쏘시개 역할을 해 큰 참사로 이어졌는데 대부분 건물에서 화재가 났을 때 가장 큰 피해 원인은 역시 외장재를 가연성으로 쓰느냐, 불연성으로 쓰느냐의 문제다.  

 

문제는 2015년 이전에 지은 초고층 건물에는 건물 외장 마감재 관련 강화 규정을 소급적용(어떤 법률, 규칙 따위가 시행되기 전에 일어난 일에까지 미치는 것)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앞으로 이런 고층 아파트 화재를 예방하려면 이와 비슷한 공법으로 지은 주상복합건물의 안전관리에 힘쓰는 수밖에 없다. 울산시는 이번 화재를 계기로 알루미늄 복합 패널로 지은 고층건물과 공장 등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해 고층건물에 대한 화재피해를 최소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7년 영국 그린펠타워 아파트 화재

지난 2017년 발생한 영국 런던의 그린펠타워 아파트 화재는 70여 명이 사망해 인명피해가 심했던 대형화재였다. 4층 냉장고의 전기 합선으로 플라스틱 외장재가 불을 키운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 아파트는 지은 지 43년이나 된 오래된 건물로 참사가 나기 2년 전인 2015년 외벽을 리모델링했고 결국 이것이 수많은 사상자를 낸 원인이 됐다. 큰 불길이 급속히 번졌던 이유는 건물 외장재로 쓰인 알루미늄 패널 속의 가연성 폴리우레탄 때문이었는데 당시 영국 일간지에 의하면 패널의 알루미늄 부위가 떨어져나가자 가연성 부위가 나타났으며 이 노출된 곳을 통해 불의 점화속도가 점점 빨라졌다는 것이다. 이어 불은 건물과 패널 사이 틈으로 자꾸 숨어 들어가고 물을 아무리 뿌려봤자 틈과 틈 사이의 불길을 잡기 힘들었던 것이다. 소방전문가에 따르면 이렇게 틈과 틈 사이로 불씨가 숨어있는 경우 엄청난 양의 모래를 쏟아 붓거나 헬기가 동원돼 많은 양의 물을 동시다발로 투하하지 않는 이상 완진이 쉽지 않다고 한다.
 

당시 그린펠타워의 외벽 시공 방법은 콘크리트에 단열재를 대고 간격을 조금 띄운 뒤 외장에는 마감재를 붙이는 방법이었는데 리모델링 비용을 아끼려고 싸구려 마감재를 쓴 것이 불길이 빠르게 번진 원인이 됐다. 이처럼 화재의 불쏘시개 역할을 한 알루미늄 패널은 열전도율이 우수하고 자동차용품이나 건축 내외장재 등에 많이 사용한다. 비용절감을 위해 단가가 비싼 스테인리스 대신 알루미늄을 주로 사용하는데 외장재를 샌드위치 패널과 비슷한 형태로 만든다. 중간재의 두께가 더 얇고 외부에 색상과 마감을 표현할 수 있어 외장재로 많이 사용돼 왔다.

 

▲ 9일 오후 울산 주상복합아파트 화재와 관련 송철호 시장을 비롯 시 관계자, 소방관계자와 주민들간의 간담회가 열렸다. ⓒ이기암 기자

외장재가 화재 확산의 근본적인 원인이었지만 그린펠타워 화재 당시 불길을 쉽게 제압하지 못한 것은 주변 환경 탓도 있었다. 2층에서 발생한 불은 빠른 속도로 번졌고 소방차 40여 대와 소방관 200여 명이 출동했지만 거대한 불길을 잡지 못했다. 아파트 진입로가 좁았고 건물구조가 복잡해 소방차들이 현장에 접근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다.

 

이번 울산 주상복합아파트 화재도 아파트 주변은 좁은 도로였고 사다리차 활용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풍도 불어 자칫하면 사다리차 사용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소방전문가 A씨는 “사다리차가 처음부터 있었다면 화재진압에 효과가 있었겠지만 어느 정도 시점이 지난 후에는 사다리차가 여러 대 있어도 좁은 도로와 전봇대, 케이블망 때문에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즉, 미국처럼 각 건물마다 여유 공간이 있지 않는 이상 우리나라의 좁은 도로환경과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여건에서는 여러 대의 사다리차 활용이 어렵다는 얘기다. A씨는 “실제 사다리차의 작업반경은 생각보다 넓고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삿짐 사다리차와는 작업반경의 범위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울산에 30층 이상 건물 32곳으로 파악
30~49층 사이 피난층 강제규정 없어


지난해 울산에서 발생한 화재는 737건으로 2010년 이후 매년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인명피해는 전년에 비해 2배 이상, 재산피해는 590여억 원가량 증가했다. 특히 염포부두 선박화재와 농수산물도매시장 화재 등 큰 화재가 발생해 피해액이 컸다. 울산소방본부에 따르면 울산에는 30층 이상 건물이 32곳으로 파악됐다. 이번 울산 주상복합아파트 화재의 경우 다행히 15층과 28층에 피난층이 마련돼 있어 인명피해를 최소화했다. 만약 피난층이 없었다면 인명피해가 더 났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현행 건축법상 50층 이상 초고층 건물에만 피난층을 설치하도록 의무화 했고 ‘준초고층’으로 분류된 30~49층짜리 아파트는 피난층을 두는 강제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건축업계에 따르면 이번 달 전국에 35층 이상 초고층 아파트가 1만여 가구 이상 공급된다고 한다. 새롭게 공급되는 준초고층 아파트들에 피난층을 만드는 것은 건설사의 재량인데 이번 화재로 인해 고층 아파트에 대한 국민들의 시각이 얼마나 달라질까도 두고 볼 대목이다. 

 

울산소방본부 관계자는 “외부 장비만으로는 불을 끄고 사람을 구출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고층 건물이 늘어나는 만큼 불이 났을 때 건물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진화하거나, 또는 사람이 신속하게 대피할 수 있는 개념의 시스템을 갖춰야 할 것”이라며 고층건물 방재대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울산은 광역시임에도 70미터 이상의 사다리차가 없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현재 국내에는 최대 23층까지 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 70m 고가사다리차가 10대뿐인데 서울과 경기, 인천 소방본부에 총 6대와 부산·대전·세종·제주 소방본부에 총 4대다. 이날 화재로 울산은 부산으로부터 70미터 고가사다리차를 지원받았다. 

 

송철호 시장은 10일 열린 브리핑에서 “70미터짜리 고가사다리차가 부울경 지역에는 부산밖에 없는데 이 상황이 잘못됐다”며 “정부와 협의해 어떻게든지 울산에서도 내년에 이 장비를 보완할 생각”이라고 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30층 이상 초고층 건물이 전국 4700여 곳이나 되지만 70m 고가사다리차는 전국에 10대뿐”이라며 “초고층 화재 진압 장비 마련 대책을 정부와 신속히 협의해 정기국회 예산안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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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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