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 무림의 태산북두, 숭산 소림사

박종범 자유여행가 / 기사승인 : 2019-02-20 19:2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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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8대 고도를 가다

 

 

소림사에 가기 위해 덩펑(등봉)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로 하남성 낙양시에서 등봉까지 약 1시간가량 소요된다. ‘탐구 소림무술학교’는 소림사 근방의 20여 개에 이르는 무술학교 중 제일 오래된 무술학교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학생 수가 무려 7000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들은 졸업 후 대개 공안, 군인, 경비원이 되며 일부지만 영화계로 진출하는 졸업생도 종종 있다.


탐구 소림무술학교까지 가려면 등봉에서 30분을 더 들어가야 한다. 무술학교들이 모여 있는 인근에 방값이 저렴한 도미토리 숙소를 찾았지만, 인터넷에 나오질 않아 할 수 없이 등봉에 숙소를 잡았다.


저녁식사 후, “무대가 산과 산 사이다”, “한 마을 전체 주민이 출연한다”, “계곡 사이로 와이어 줄을 매달아 사람들이 날아 다닌다”는 등, 과장된 소문만 들어왔던 소림사 공연, ‘선종소림 음악향연’ 티켓을 호텔에서 구매해 공연장을 찾아갔다. 결론적으로 공연은 큰 감동이 없었고 밋밋했다. 공연 무대는 산과 산 사이에 세트장을 설치해 놓은 것까지는 맞지만, 등장인물은 200여 명에 불과했고 ‘와이어 씬’은 애초부터 없었다. 가장 황당했던 것은 299원을 주고 구매한 티켓 값이 현장에 와서 보니 88원에 판매되고 있었다는 것. 외국인에게 '이중물가'를 적용한다는 점을 감안 하더라도, 중국인들의 얄팍한 상술에 바가지를 쓰고 놀아난 것 같아 못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소림사는 입구에서 100위엔의 입장료를 받으며, 이 입장료에는 ‘탑림’과 ‘달마동’ 등의 모든 구역이 포함된다. 탐구 무술학교에서 매표소까지 약 2킬로미터, 매표소에서 소림사까지는 채 1킬로미터도 되지 않았다.


매표소 앞에서 만난 벽안의 유럽 청년이 갖가지 무술 동작을 선보이는데 제법 폼새가 그럴 듯했다. 일반적으로 서양인들의 무술 실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술의 본고장인 동아시아 3국, 중국, 일본, 한국인들은 자질이 뛰어나고 수련을 하면 누구나 쉽게 고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왕왕 덩치가 산만한 서구인들이 소림사를 찾아와 도전장을 내민다고 하는데, 무림에 몸담고 있지 않아서인지 그 결과를 들어본 적은 없다.


천년고찰 소림사의 본래 모습은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소림사 가는 길 주변에 사설 무술학교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고, 비좁은 운동장에는 시루단지 속 콩나물처럼 빼곡히 들어찬 학생들이 무술 수련중이다. 봉을 잡고 돌리기도 하고 다른 한쪽 편에서는 덤블링 연습을 하고 있다. 네다섯 살로 보이는 꼬마 아이들부터 10대 후반까지 연령층도 다양하게 섞여 있다.

 


1978년, ‘이연걸’이 열여섯 살 때 첫 출연한 영화가 ‘소림사’인데, 그때 진짜 소림사의 전경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영화의 주제가, 노랫말 가사는 무척 유치했던 것으로 기억되지만, “쑹~산”으로 시작되는 노래 가락은 자못 우수에 젖고 ‘중원의 혼’이 담겨있는 듯 비감했었다. 소림사 입구에서부터 탑림에 이르기까지 영화 소림사의 주제가가 연속해서 들려온다.


산문을 지나 대웅전 입구까지 길 양쪽으로 비석들이 늘어서 있다. 비석 중, 청나라 건륭제가 내린 비문이 있다고 해서 대웅전 입구에 있는 비석을 살피는데 왼쪽 편에 대만 출신 무협지 작가 ‘김용’의 비석을 발견했다. 그의 대표작인 소설 <영웅문>을 아직 읽어 보지 못했다. 무심코 이번에는 오른쪽의 비석을 둘러보다가 놀라운 발견을 했다.


‘대한민국 소림사 30대 주지 소희 대선사’. ‘조동종 종도 일동’. 우리나라 출신 가운데 ‘소희 대선사’라는 분이 있었나? 게다가 소림사 30대 주지 스님을 역임하신 분이라면 충분히 알려졌을 텐데. 그리고 ‘조동종’도 처음 들어보는 종파였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대웅전 뒤 건물은 ‘방장’이다. 소림 무술은 주방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는데, 진짜 소림사와 관련이 있는지 역사적 고증이 제대로 이루어진 건물인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맨 뒤채에 있는 ‘장경각’은 ‘시바성인’이라는 제목으로 간판만 바꿔 놓았다. 소림사 장경각도 기존에 있던 돌바닥 위에 전각을 새로 지어 올렸는데, 바닥에는 움푹 팬 자국이 그냥 있었다. 지난 수백 년간 이곳에서 진각 훈련을 하다 보니 바닥이 패었다고 하는데, 실제의 모습을 보니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 수백 년간 진각 훈련으로 바닥이 패였다.


장경각 앞에는 ‘입설정’이라는 작은 건물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달마 대사’에게 법을 구하러 온 ‘혜가’가 자신의 한쪽 팔을 잘라 던진 곳이라고 한다. 지금도 소림사의 승려들은 혜가 대사를 추모하여 한 손으로 합장하는 관습이 남아 있다.

▲ 한 손 합장. 필자.


소림사를 나와 우측으로 조금 걷다 보면 ‘탑림’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탑은 주로 석탑인데 반해 중국의 탑은 벽돌을 쌓아 세워 놓았다. 총 246개의 탑마다 사리를 넣어두는 감실이 있는데, 각 감실의 입구에는 독특한 조각이 새겨져 있다. 500년대 북위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입적한 고승들의 사리를 모신 곳이다 보니 각 시대별 건축양식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곳이다. 현재는 일반인의 접근을 막기 위해 철책으로 막아 놓았다. 사람이 없는 뒷길로 해서 빙 돌아 앞길로 나왔다. 오래된 돌탑 사이를 돌다보니 수백 년 전 세상을 풍미했던 무승들의 이야기가 들려오는 듯했다.

 

▲ 탑림


소림사에서 탑림을 오다가 오른편으로 꺾어지면 바로 ‘달마동’으로 가는 길이다. 이곳은 달마대사가 9년간 면벽 수도를 했던 곳이다. 소림사 경내에서는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곳인데, 일반 중국인 관광객들은 거의 찾지 않는다.

 

▲ 달마동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


기연을 얻기 위해 1.9킬로미터를 올라탔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돌계단에 깎아지른 듯 가파른 길을 오르다 보니 몇 번이나 포기하고 내려갈까 망설여졌다. 숨이 턱에 차고, 비 오듯 땀을 쏟고 나서야 달마동이 나타난다.

▲ 달마동


달마동에는 잔뜩 기대했던 무공 비급도 없었고, 기연은 더더욱 만나지 못했다. 유명한 ‘달마동에 올라와 봤다’는 올림픽 정신을 위안 삼아 내려오는 길, 다섯 시간 전에 매표소에서 만난 서양인을 다시 만났다. 그러고 보니 중국인들도 잘 찾지 않는 달마동을 지구 반대편에 사는 서양인들이 어떻게 알고 꾸역꾸역 찾아오는지, 꽤 많은 양이들이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동양 무술을 가르치는 사범들이거나 동양적인 것, 소위 ‘오리엔탈리즘’에 푹 빠져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우리가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을 흠취하거나 선망하듯이 서구인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갖지 못한 것, 동양에 매료되고 갈증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 선종소림 음악향연

 


박종범 자유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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