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로 무장한 거짓 속 진실 추적 <시민 케인>, <라쇼몽>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 기사승인 : 2022-03-15 00: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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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문학

[시론]

이번 호 영화인문학 텍스트는 개봉영화였으나 대선 결과를 보고 한가하게 현학적 수다를 떨 마음의 여유가 없다. 블랙리스트였다며 영웅 놀이하던 그 유명하신 감독님들과 배우님들은 그동안 카게무샤 놀이 잘하시더니 어떻게 소회 한 마디 없는지 모르겠다. 대중의 찬사와 인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영광과 부를 누리시는 당신들은 이제 더는 진보를 논하지 말라. 지금 나의 친일 가족사를, 미투를 터뜨리면 한국 영화 시장에 어떤 쓰나미가 일겠냐고 했다는 여러분들, 완벽하게 유리할 때만 빼꼼 기어 나와 해대는 대한민국 ‘국뽕’ 장사 그만해 먹어라. 예술은 현재의 관점에서 통찰력으로 새로움을 창조해내는 직업이다. 생활이 곧 정치인 세상에서 예술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예술이 부정과 타협하면 부(富)와 욕을 함께 먹고 산다. 예술이 부정의 반대편에 서 있으면 빈(貧)과 정신승리로 살 수 있다. 예술인이 정의롭다면 부정함에 입 꾹 닫고 타협할 수 없다. 예술인이 양심이 있다면 피해자 코스튬플레이 따위로 영웅 놀이할 수 없다. 이것으로 장사하는 예술인, 정치인이 있다면 그놈이 수박이다.


100년도 더 된 초창기 영화시장에도 노이즈마케팅이 있었다. 유명 여배우가 사망했다는 기사가 타블로이드 신문을 통해 확산하면서 팬들은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는데, 며칠 뒤 신문에서 사실은 극중 내용이었다더라, 하며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는 기록이 있다. 노이즈마케팅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자들이 연예인과 정치인들이다. 그들이 들으면 기분 나쁠 소리지만, 영화인들끼리는 ‘분칠하는 것들은 다 똑같다’는 말을 종종 한다. 페르소나가 가장 익숙한 직업들이기 때문이다. <다크 나이트>(2008, 크리스토퍼 놀란)의 히스 레저는 악역인 조커를 연기한 뒤 자아와 극중 페르소나 간 괴리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했다. 양심이 너무도 순결해 정치인으로서의 페르소나를 극복하지 못한 이들이 노무현, 노회찬, 박원순이다. 판타지 장르에서 자주 등장하는 클리셰 중의 하나가, 막강한 힘을 얻기 위해 부정한 방법을 쓰는 경우 그 힘에 잠식돼 자아를 잃어버리고 폭주하는 레퍼토리다. 중국 무협에서 주화입마(走火入魔)라고 하는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은혼>에서 칼에 잠식되는 사무라이처럼 도구에 이성을 빼앗기기도 한다. 욕을 먹으면서도 스테디셀러로 생산되는 막장 드라마들, 극우 유튜브 방송들, 자신의 부고(訃告) 외에는 모든 이슈를 환영한다는 정치인들, 모두 노이즈마케팅으로 축적된 부와 권력으로 자위하는 것들이다. 이번 대선 결과는 노이즈마케팅의 완성형이다. 페르소나에 잠식된 자들의 간사한 승리다.


진실을 추적해가는 대표적 고전으로 <시민 케인>(1941, 오손 웰즈)과 <라쇼몽羅生門>(1950, 구로사와 아키라)을 꼽는다. <시민 케인>이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면 <라쇼몽>은 객관적 사실을 기반으로 각자의 욕망과 인식에 따라 어떻게 진실이 왜곡되는지 보여준다. 인터넷과 스마트기기의 발달로 우리는 속도 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다. 매체철학자 폴 비릴리오는 빠른 속도는 공간을 소멸시킨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완행열차로 울산에서 서울을 가면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은 시각적 경험을 충분히 제공하고 수십 개의 기차역은 지각적 경험의 공간이자 때로 정차 연장시간을 통해 실제 경험의 공간이 된다. 고속열차를 이용하면 이동시간이 약 1/3로 줄어들면서 시각적‧지각적‧실제 경험은 소거되고, 최대 일고여덟 개의 정차역은 출발지 또는 목적지로서의 역명(驛名)만 인지 경험의 대상이 된다.

 

▲ <라쇼몽> 포스터

<시민 케인>에서 거대 부호 케인이 유언으로 남긴 ‘로즈버드’의 정체가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을 제시한다. <라쇼몽>은 강간당한 부인의 남편 살해범이 누군지 밝혀내는 과정에서 피의자, 목격자들의 증언 가운데 무엇이 진실인지 판별하고 있다. 증인 가운데 죽은 남편의 영혼이 빙의된 무당도 등장한다. <시민 케인>이 진실이 무엇인지 찾고 있다면 <라쇼몽>은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해야 한다. 정보의 양과 유통 속도가 빨라진 공간소멸의 시대에서 <시민 케인>은 고독사(孤獨死), 엄청난 유산, 스캔들이란 키워드만 남고 진실 추구의 도정은 생략된다. <라쇼몽>은 살인, 강간, 도둑, 거짓말, 불신이란 부정적 키워드만 인식된다. 20대 대선은 원인과 결과의 도정이 생략된 채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키워드만 난무하는 언론, 검찰, 재벌, 사이비의 ‘종합투견장’이었다.

 

▲ <시민 케인> 포스터

다중 페르소나로 본질을 확인하기 어려운 당선인 배우자의 첫 공식 행보가 본인에 대한 탐사보도를 해온 열린공감TV에 대한 1억 원 소송이다. 고작 0.73%로 당선인이 된 전직 검찰왕국 수장은 경쟁 후보에게 수고했다는 한 마디 페어플레이 피날레도 없다. 한 가지 소망과 한 가지 희망이 있다. 치망순역지(齒亡唇亦支)라고, 그래도 제대로 해주겠지 하는 허망한 소망 하나. 3개월, 2년, 5년, 생각보다 시간은 빨리 흐른다. 키워드만 남은 채 생략된 맥락들과 진실을 철저히 밝혀내 5년 뒤라도 명백히 청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간절한 희망 하나. 와신상담의 결실을 위해 최전방에서 싸워온 정치인들과 이슈 파이터들을 시민의 힘으로 지지하고 보호해야 할 것이다.


이민정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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