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앓이

김윤경 글 쓰는 엄마 / 기사승인 : 2021-12-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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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기

명치 안에서 주먹을 꽉 쥐고 있는 듯한 통증이 생겼다. 안 아프던 곳이 탈이 나면 근래 내가 어땠는지 돌아본다. 스트레스가 신체화 증상으로 나타난 걸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금방 이유를 알아챘다. 계획이 틀어지는 것과 이별 감정에 취약한데 이 두 가지가 손을 잡고 내게 찾아왔다.


나는 내향적이고 계획적인 사람이다. MBTI 성격유형 검사를 하면 ‘매우 분명함’이라고 뜬다. 소수의 사람과 깊게 사귄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관찰을 조용히 오래 한다. 말 많은 무리에 있으면 피곤하다. 본인에 대한 얘기면 그나마 나은데 누구누구까지 나오면 더 피곤하다. 마음에 없는 말은 잘 못 한다. 때로 돌직구를 날려서 문제일 정도다. 진솔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람을 가린다. 깊은 친밀함을 누리다가 이별하게 되면 타격이 크다. 인연이 닿아서 만났다가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것이 인생인데 나는 어렵다. 속앓이를 한다.


계획 세우는 것도 좋아하고 실천도 잘한다. 그래서 성실하고 결과가 좋다. 돌아보면 차근차근 이룬 것들이 많다. 일상에서는 외식을 한 번 하더라도 맛집을 찾는다. 검증된 코스로 여행 일정을 짠다. 나랑 여행 가면 몸이 편할 거다. 착착착 해나가는 뿌듯함이 큰 나의 구멍은 융통성이다. 그때그때 상황과 사람에 대처하는 게 유연하지 않다.


내가 몸 담고 있는 센터가 최근 물갈이에 들어갔다. 센터장이 바뀌더니 그 밑으로도 줄줄이 나가게 됐다. 아쉽고 섭섭했다. 내년 계획의 밑바탕이 여기였는데 나도 몇 달 안으로 정리할 예정이다. 계획도 틀어지고 이별 감정도 흥건하다. 작년 3월에 들어온 여기도 적응하기까지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 초기에 “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요?” 질문을 많이 받았다. 2년 사이에 말이 제법 늘었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그곳에서 함께한 시간들이 금싸라기 같았다.


내년 계획을 다시 세우고 있다. 여기저기 찔러 보다가 ‘에라 모르겠다. 1년 놀지 뭐’ 생각도 들고 왔다 갔다 한다. 낯선 공간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울리려면 또 오래 걸리겠구나. 콧구멍에서 뜨신 긴 바람이 나온다.


작년에 개인상담을 받았다. 상담자로부터 들었던 인상적인 말이 있다. “어릴 적 주양육자인 엄마와의 애착 형성이 불안정해서 어른이 된 지금도 타인에게 비현실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다.” 뭔 말인지 느낌은 알겠는데 이해가 쏙 되진 않는다. 인간관계에서 막힐 때 이 말이 생각나곤 한다. 종결할 때는 상담자가 나의 이별 감정을 걱정했다. 그러고 보니 이별 감정에 취약해서 안 좋게 끝난 사이도 있다.


‘내가 이래서 명치가 아팠구나. 이런 부분에 취약했네. 두 개가 겹쳐서 더 스트레스 받았나 보다.’ 내가 나를 알아봐 줬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통증이 사라졌다. 나의 취약점을 인정했을 뿐이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도대체 왜 그럴까, 뭐가 문제야.’ 밑도 끝도 없는 땅굴 파기는 이제 안 한다. 제 살 깎아 먹는 버릇은 개나 줘버려라. 나는 이렇게 생겨 먹은 거다. 이대로도 나름 잘 살아왔다. 내 삶을 살아온 경력자이고 누구보다도 전문가다. ‘내가 또 이런 부분에서 아프네.’ 알아주면 그걸로도 잘한 거다. 나는 그렇게 속앓이를 지나가는 중이다.


김윤경 글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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