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문학] <개봉영화> 어설픈 감동 실화 판타지 <킹메이커>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 기사승인 : 2022-03-22 00: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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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작가의 동명소설 <킹메이커>(2007, 포북)는 작가의 다른 작품들처럼 판타지적이다. 지난 1월 말에 개봉한 영화 <킹메이커>(2021, 변성현)도 치열한 정치판을 생각하면 판타지에 가깝다. 수려한 미장센과 쉬우면서도 캐주얼한 전개가 순진하다. 한 마디로 현실을 너무 미화(美化)했다. 성공한 쿠데타, 승리가 정의, 라는 말들이 범람한다. 혹하면 설득될 지경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델로 한 김운범(설경구 분)은 서창대(이선균 분)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플라톤의 말로 기용했다가 같은 이유로 잘라낸다. 마키아밸리즘의 양날이다.

 

▲ 포스터

만 여덟 살에 모친에게 종아리 맞아가며 천자문을 뗐다. 덕분에 어릴 때부터 한자가 섞인 세로줄 신문을 잘 읽었고, 특히 관심 가지던 곳이 정치면이었다. 부모님은 아직도 필자가 정치인이 되길 희망하지만 정치는 게으른 자가 들어갈 영역이 아니다. 2019년 늦가을, 21대 총선의 어느 캠프에 합류했다. 학교에서 홍보 ‧ 마케팅 경험이 있고, 평생 절반 이상 영화판과 학교에서 해온 일이 미리 예측해서 기획하는 일인 데다, 원래 정치계에 관심이 컸기에 흥미가 있었다. SNS 관리자로 들어갔다가 일주일쯤 지난 후부터 각종 원고 작성부터 일이 무한정 늘어났다. 6주 만에 자서전, 홍보영상, 북콘서트를 쳐내고 나니 멀쩡했던 왼쪽 아래 어금니 두 개를 임플란트로 갈아치우느라 몇 달을 고생했다. 약속한 일까지만 마무리하고 돈 한 푼 안 받고 선거일 한 달 전에 캠프를 나왔다. 돈이든 정치입문이든 취업이든 명예든 혹은 호기심이든, 각자 목적대로 최선을 다해 역할하면 될 일인데, 개인의 욕망만이 앞선 게으른 자들과 공존하기 힘들었다.


극중 서창대는 김운범으로부터 의심을 받으며 내침을 당하자 김운범의 정적(政敵)인 박대통령(김종수 분) 캠프에서 전략가로 활동한다. 그는 대선 승리 전략으로 국민 갈라치기 전술을 성공해낸 뒤 약속된 현금 가방을 받고 청와대를 떠난다. 서창대가 떠나는 이유로 정의를 강변(强辯)하자 그를 붙잡던 정보실장(조우진 분)은 “당신은 서 있는 위치를 바꿔서 똑같은 일을 했을 뿐”이라고 조소한다. 돈 가방을 든 서창대가 횡단보도를 건널 때 카메라는 서창대의 모습에서 바닥의 그림자로 틸트다운(Tilt-Down)하며 따라가고 서창대의 그림자는 그림자 군상 속으로 섞여든다. 정보실장의 대사와 엉킨 그림자가 이 영화의 정체성이다. 각자의 정의는 주관적 명분일 뿐 궁극적으로 개인적 욕망의 실현이다. 따라서 서 있는 자리가 어딘지 중요하지 않다.

 

▲ 영화 스틸(박 대통령과 참모들)

전략과 전술을 말할 때 자주 소환되는 고전이 <삼국지>다. 필자는 황석영 본보다 이문열 평역본을 좋아하고, 박기봉의 <삼국연의>는 교과서 같아서 집중하기 힘들다.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1982), <사람의 아들>(1987)에서 보이는 그 시니컬함이 그의 <삼국지>에서 유비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님이 좋다. 유비의 황족(皇族) 정통성은 이승만이 주장했던 이씨 조선 적자(嫡子) 정통성과 닮았다. 족보의 끝자락에서 우격다짐으로 짚어내는 그 정통성에 우유부단함이 선정(宣政)적으로 포장되고 권력욕은 대의명분으로 탈바꿈 된다. 개인적으로 지략과 전략에 천재적이었던 조조를 좋아하는데, 황제를 눈앞에 뒀던 조조의 천재성 맞은편에 결코 황제가 될 수 없는 제갈량이 있었다. 조조가 전략가라면 제갈량은 전술가다. 조조가 기획자라면 제갈량은 실행자다. 영화 <킹메이커>에서 서창대를 전략가보다 전술가적 모습으로 더 많이 제시한다. 이 전술들이 민주진영에서는 유쾌한 모습으로, 독재정권에서는 살벌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영화가 가진 정치적 편향성이다.


그런데, 정작 서창대가 왕(대통령)으로 만든 자는 김운범이 아니라 독재자 박대통령이다. 이 지점이 이 영화 판타지성의 근원이다. 의도된 아이러니처럼 보이진 않고, 킹메이커라는 판타지적 용어를 차용했을 뿐이다. 영화는 박대통령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이어가려는 독재자임을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고 명확하게 묘사하지도 않았다. 김운범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기수임을 분명히 하지 않았다. 박대통령과 김운범의 주변 정치인들과 참모들도 정치적 입지와 개인적 영달을 위해 야합하고 타협하는 모습만 나타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을 어느 포인트에 둬야 할지, 감동해야 하는지 분노해야 하는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중심을 잡지 못한다.

 

▲ 영화 스틸(김운범의 유세 연설)

박근혜 씨가 탄핵된 이후 보수정권 전략가들이 소멸한 것처럼 보였다. 이번 대선에서 정치적 권모술수는 빠르게 배양됨을 확인했다. 전략가가 사이비 종교 법사건 정치적 천재건 중요하지 않다. 전술이 정정당당하건 치졸하건 상관없다. 선거는 이기는 것이 목적이고 정치는 바르게 하면 된다. 이 영화가 불편해지는 지점이 전략과 전술이 혼용되고 올바른 사람의 기준이 없으며 추구하는 바른 세상이 무엇인지 판단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정치와 인간성에 염증을 느낄 무렵 어느 웹툰에서 ‘올바른 사람이 올바른 세상을 만드는 게 아’니라는 대사를 읽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판단이 빠르게 유연해진 적이 있다. 정치판에서 놀 생각이든 정치를 스토리텔링 하려든 설득력 있는 명분이 필요하다. 이 명분은 최소한이자 최후의 보루이며, 게으름이 허용돼선 안 되는 영역이다. 현실 정치는 판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영화는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적극 활용하여 전체적으로 미장센과 카메라 워킹이 좋고, 주연 배우들은 물론 조 ‧ 단역 배우들도 연기가 훌륭하다. 감독의 연출력이 중요한 부분들이다. 특히 재밌는 장면은 김운범이 낙선한 뒤 기자회견에서 부정선거였음을 성토할 때 당 총재(박인환 분)가 고개를 빼꼼 내밀어 돋보이려 하는 장면으로, 웃기면서도 한심한 정치인들의 일면을 희화화 한다.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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