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삼국지’란

백성현 글 쓰는 아빠 / 기사승인 : 2021-11-09 00: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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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일기

아직 그림책에 익숙한 7살 아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실은 삼국지를 읽는다는 것이 어린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지부터 생각해야 했다. 책이 전하는 무거운 글과 아이가 읽기엔 몹시 난해한 이야기 전개가 걸림돌이었다. 흥미는 이해로부터 생성된다. 글에 대한 이해 없이 몰입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해 없는 전진은 몰이해로 귀결된다. 과연 아이가 잘 따라올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리고 삼국지 한 질이 무려 스무 권, 과연 우리가 그 끝을 볼 수 있을까.


책만한 스승은 없다. 한창 아이의 뇌가 폭발적으로 커갈 무렵 아내와 난 무분별한 책수집을 감행했다. 아이가 읽을만한 책이라면 일단 확보하는 데에 총력을 다했다. 훌쩍 커버린 자녀를 둔 지인들로부터 수십 아니 수백 권을 얻었다. 중고사이트를 통해 얻은 책들도 상당했다. 당시 아이의 책장을 채워갈 때마다 마치 재산이 불어나는 것마냥 흐뭇하기도 했다. 물론 얻은 만큼 추려내어 버린 책들도 많다. 쓰레기 분리수거의 날이면 나눠서 버리기도 잦았다. 지금은 아이의 시기에 맞춰 앞으로 읽을 만한 책들로 책장을 채웠다. 그렇게 수집된 책 중에서 삼국지는 아직 살아남았다. 양장으로 된 삼국지가 책장 한 켠에 버젓이 자리 잡았으니 그 명성만큼이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그것은 책장 속 한 편의 그림이다. 책들 중의 영웅이다. 하지만 아이가 그것을 읽게 될지 미지수였다.


과거 20대 시절 내 책장에도 10권에 이르는 삼국지가 꽂혀 있었다. 우리가 알만한 작가의 작품이었다. 다 읽었는지 기억할 순 없었다. 그저 주요 인물만 떠올랐을 뿐이었다. 그 어떤 감흥이 남지 않았던 걸 보면 당시 내 독서력이란 형편없었던 모양이었다. 어느 날 난 아이의 책장에 꽂혀 있는 삼국지를 읽고 말았다. 책의 수준은 문제 되지 않았다. 삼국지만의 독특한 이야기 구조는 나의 ‘갬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읽을 수 없었던 걸 읽었다고나 할까. 삼국지는 남자들의 이야기지만 그것은 남자들만의 것은 아니다. 남자들만의 얄팍한 감성을 넘어서는 그 무언가가 분명 존재했다.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다. 삼국지를 아이랑 함께 읽어보면 어떨까. 지금 생각하면 무모한 도전이었다. 읽기 시작했던 당시엔 다소 실험적인 시도인 셈이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책을 그대로 읽어줄 순 없었다. 이 일로 아이가 책과 담을 쌓을 수도 있다. 아이의 의사가 중요했다. 일방적인 아빠의 생각만으로 시작하는 것은 독이 될 수 있었다. 책을 읽기에 앞서 삼국지에 대한 흥미를 돋우는 것이 먼저였다. 책 속엔 그림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해하거나 흥미를 유발하는 데 그닥 도움 되진 못했다. 재미있는 부분만 요약해서 읽어줄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미리 읽고 편집하고 요약하는 과정이 더 힘든 일이었다.


우선 드넓은 중국 땅을 보여줬다. 책에선 그나마 지도가 많았다. 지도는 위치 정보를 넘어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었다. 인물의 탄생지, 사건이 벌어진 장소, 전략상 요충지, 이동 경로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도와 함께 인물을 들어 설명하는 사이 아이는 아빠의 목소리에, 삼국지에 몰입하고 있었다. 유비, 관우, 장비, 제갈량, 조자룡, 조조, 여포 등 뛰어난 영웅과 장수들의 짤막한 이야기로도 아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아이는 질문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책을 읽어도 될 듯했다. 아이에게 “삼국지를 읽어줄까?” 물었다. 다행히 아이도 오케이! 삼국지 한 권은 서너 개의 장으로, 그 한 장 역시 서너 개의 소제목과 본문으로 구성됐다. 아이가 보기엔 상당한 분량의 글이었다. 그리고 문장의 옛스런 언어는 우리가 쓰는 일상어와 거리가 있었다. 내겐 익숙했지만, 아이에겐 달랐다. 등장하는 인물과 지명이 왜 그리도 많은지 아이나 나나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나는 반신반의로 아이에게 되물었다. “정말?” 아이의 답은 역시 오케이!


우리는 매일 밤 자기 전에 소제목 두세 개의 분량을 소화하기로 했다. 20~30분이면 충분했다. 난 좀 더 입체감 있는 읽기를 위해 인물에 따라 목소리를 바꿔가며 들려주었다. 때론 가늘거나 굵게, 높거나 낮게 아이부터 노인의 목소리까지 내어가며 열연했다. 아이도 귀담아듣기 시작했다.


4월 말경부터 시작했던 책 읽기, 현재 18권을 읽고 있다. 지금까진 아이가 잘 따라와 줬다. 다만 삼국지의 후반부를 걸으면서 약간 더딘 느낌이다. 아이가 졸음에 겨워 돌아눕는 일이 많아졌다. 실은 영웅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현재 유비, 관우, 장비, 주유 그리고 조조도 죽고 없다. 제갈량과 조자룡만이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 그마저도 사마의의 등장으로 사라질 운명이다. 이제 삼국시대의 종지부를 찍는 일만 남았다.


당시 아이는 무슨 마음에 삼국지를 읽겠다고 시작한 것일까. 이제 와서 다시 드는 의문이다.


백성현 글 쓰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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