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김윤경 글 쓰는 엄마 / 기사승인 : 2021-12-13 00: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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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기

연말이다.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연락이 온다. 검진을 아직 안 받았다고 알려준다. 일반과 자궁경부암 검진 대상인데 굴욕의자에 앉기 싫어서 미루던 중이었다. 이제 12월이니 더 미룰 수 없다. 생리 주기를 피하면서도 전날 밤부터 금식할 수 있는 날이 좋겠다. 공복으로 아침에 갈 수 있는 요일을 찾다가 여의치 않아 토요일에 갔다. 마음 먹고 갔지만 역시나 토요일이라 2시간이 걸렸다. 접수하고 내 이름이 불리기까지 한참을 기다렸다.


어떤 임산부가 검진받으러 왔다. 직원이 임신 주수를 물으니 12주 2일차라고 대답한다. 순간 부럽다는 생각이 몇 초 지나간다.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이성을 돌린다. ‘이제 셋째는 접었지 않느냐, 자식 욕심은 그만 부리자, 옆에서 남편이 얼마나 고생하겠냐, 출산은 또 얼마나 고통스럽겠냐’ 등등 줄줄이 소시지처럼 나온다. 동네에 유모차 밀고 다니는 엄마를 봐도 먼저 부럽다, 그 다음이 힘들겠다 생각이 든다. 이러다 마흔 살에도 부러워하면 어쩌지.


혈압 기계에서 자꾸 에러가 떠서 5분 쉬었다가 재기를 반복했다. 고혈압이나 저혈압인 경우에 기계가 못 읽나 보다. 결국 다른 간호사가 와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기계 없이 혈압을 쟀다. 최고혈압 70, 최저혈압 50 좀 걱정스러운 수치다. 그래도 고혈압보다 저혈압이 나은 거 같다. 저혈압을 검색해보니 물을 많이 마시라고 적혀있다. 간단해서 안도했다.


내게 신체의 신비가 있다, 그건 바로 키가 계속 자라고 있다는 거다. 키가 조금씩 자라서 이번엔 164cm로 측정됐다. 애들이 엄마는 채소를 많이 먹어서 그렇다고 말한다. 30대 중반인데 키가 자라고 있다니 나로서도 신기하다.


피검사 하러 지하로 내려갔다. 주사기는 언제 봐도 적응이 안 된다. 마지막 관문이 산부인과다. 주사기보다 더 적응이 안 되는 게 굴욕의자다. 자궁경부암 검사를 2년마다 받고 있는데 할 때마다 싫다. 여의사는 나을까 싶어도 경직되는 건 마찬가지다. 허벅지에 힘을 빼라는데 쉽지 않다. 자궁 경부에서 세포를 떼어 갈 때 그 ‘뜨끔함’이란. 머리가 삐죽 선다. 오전에 검진을 마치고 나왔는데 하루를 다 보낸 듯 벌써 지친다. 올해가 가기 전에 숙제 하나를 끝낸 기분이다.


요즘 김장철이라 수육을 삶았다. 애들도 김장 체험으로 반 포기씩 받아 온다. 맵지 않고 맛있다. 나는 매년 시댁에서 얻어 먹는다. 어머님은 시골 큰언니댁에 형제들과 모여 김장을 하신다. 굴김치 조금에 갈치김치는 많이 담그신다. 나는 굴김치를 좋아한다. 물론 갈치김치도 맛있지만 갓 담근 김치에 더 젓가락이 간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냄비에서 두 번째 수육이 삶아지고 있다. 양파와 대파를 두둑이 깔고 무수분으로 약불에 오래 둔다. 작은애 표현에 의하면 수육은 미끄러운 고기다. 김장철에 김장은 안 하고 수육만 해 먹어도 되는 복을 누리고 있어 감사하다.


연말이라 한 게 또 있다. 교회에 트리를 장식했다. 1층부터 3층까지, 층마다 트리를 하나씩 세웠다. 나는 지금껏 집에 트리 장식을 해 본 적이 없다. 나중에 치울 거 생각하면 굳이 왜 하나 싶다. 등산은 내려오더라도 올라가고 싶던데 트리는 영 아니다. 그런 나에게 교회 트리 장식이 맡겨졌다. 그간 트리 장식 안 해 본 거 한꺼번에 쏟아붓는 느낌이다. 나무를 세워 잎을 펼치고 장식을 달아 전구로 감는다. 이 한 문장에 여러 명의 손길이 담겨있다.


연말을 돌아보니 크리스마스 선물 준비가 남았다. 해리포터에 빠져 있는 큰애는 헤르미온느의 마법 지팡이가 갖고 싶단다. 작은애는 움직이는 로봇 강아지를 원한다. 이것까지 하면 연말도 끝날 거다. 새해가 오미크론과 오고 있어서 반갑진 않지만 2021년도에게 잘 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김윤경 글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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