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리고 또 다른 나

정재화 연극배우 / 기사승인 : 2021-07-20 00: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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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하마당

회의실 입장에 대한 여러 절차를 거치고 나면 참석자들과 대면할 수 있고 간단한 인사를 나눈다. 여느 회의 때보다 조금 더 감성적인 인사말들이 오고 간다. 여러 참석자의 얼굴들 속에 내 얼굴도 떠오른다. 분명 여러 참석자와 함께 있으나 현실은 노트북 앞에 덩그러니 혼자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그리고 모니터에 떠오른 또 다른 나와 대면한다. 이제는 일상화된 온라인 비대면 회의이지만 그럼에도 모니터 속의 나와 만나는 것은 아직도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온라인 공간 속에 함께 존재하지만 실제는 함께하고 있지 않은 타인과의 만남에서 어색함을 피할 수는 없다.


뛰어난 배우이자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스승이기도 한 여배우의 일화가 떠오른다. 그녀는 일생 연극 무대만을 고집했다. 그러다 후배 감독의 끈질긴 출연 요청에 못 이겨 정말 모처럼 영화를 촬영하게 됐고, 그녀는 무대에서와 마찬가지로 관록의 연기로 스텝들을 매료시켰다. 촬영장에서는 그녀의 빛나는 연기만큼이나 특이한 습관이 회자됐다고 한다. 영화 촬영 시 한 테이크가 끝나면 배우와 감독을 포함한 스텝들은 모니터 앞에 모여 장면이 의도한 대로 촬영됐는지 점검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좋은 장면에 대한 고민을 녹여 다음 테이크를 준비한다. 하지만 그녀는 감독의 컷과 함께 모니터링이 진행됐음에도 여전히 감정을 유지한 채 연기 공간에 머무를 뿐 모니터링을 거부한 것이다. 


그녀가 모니터링을 거부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녀의 대답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대략적인 그녀의 모니터링 거부 사유는 이렇다. 대본이 제시한 상황에 놓인 한 인물을 연기함에 있어 작가와 감독 그리고 배우가 수많은 고민과 논의를 통해 한 인물의 삶을 구축하고 현실의 내가 아닌 극적 상황 속 인물이 돼 그 인물의 정서로 말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모니터 속의 내 연기를 대면하면서 극적 인물이 아닌 배우인 나가 돼 내 연기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극적 인물로서의 정서가 흔들리게 되고 배우인 나의 이성이 정서를 압도하게 됨으로써 연기의 흐름을 방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같은 배우로서 충분히 공감하는 부분이다. 비대면 콘텐츠가 자연스런 지금, 필자 역시 영상화 작업에 참여하고 있지만 영상 속의 내 연기를 될 수 있으면 보지 않으려 한다. 마치 현실의 내가 모니터 속의 나를 감시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기에.


화면 속 나와의 어색한 만남 그리고 불편함은 역설적으로 나에 대한, 내 행위에 대한 각성의 시간으로 나를 이끈다. 자연인으로서 내 삶에 대한 각성, 배우로서 나에 대한 각성은 바쁘다는 핑계로 놓고 있었던, 들여다보지 않았던 ‘나’라는 인간의 삶에 태도에 관하여 또는 ‘난 왜 연기를 하고 있는가?’ ‘연기를 포함한 연극 예술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존재에 대한, 행위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말이다.


몸에서 매체로 옮겨진 현재적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이런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받아들일 수 없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온라인으로 진행된 세미나에서 던져진 질문이다. 아직 대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좀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중이다. 나에게 그리고 나의 연극에게.


정재화 연극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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