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속살해, 비극은 끝날 수 있나 <엘렉트라>

최미선 시민인문학교 교장 / 기사승인 : 2021-11-29 00: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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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숲 시즌3-그리스 비극
▲ 김미경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회원(왼쪽)과 최미선 인문숲사회적협동조합 대표(오른쪽)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의 엘렉트라

최미선 인문숲사회적협동조합 대표=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를 같이 읽어볼 예정인데요. 간단하게 줄거리를 소개해 주세요.


김미경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회원=엘렉트라는 아가멤논과 클리타임네스트라의 1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어요. 아버지가 신탁에 따라 딸을 재물로 바치고 전쟁에 승리했지만 딸을 죽인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던 어머니가 그녀의 정부와 함께 전쟁에서 돌아온 날 아버지를 살해하게 됩니다. 다른 자식들의 복수가 두려운 정부는 엘렉트라를 가난한 농부와 강제로 결혼시켜 구차하게 살아가도록 하고, 오레스테스도 죽이려고 했지만 오레스테스는 늙은 하인에 의해 빼돌려져 다른 도시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10여 년이 지난 후 재회한 두 사람이 아버지를 죽인 아이기스토스와 그의 어머니를 죽인다는 이야기입니다.


최미선=그리스 3대 비극 작가가 모두 엘렉트라를 주제로 비극을 썼어요. 이 세 작가의 엘렉트라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김미경=3대 비극작가가 모두 엘렉트라를 극화했기 때문에 누구의 엘렉트라 이렇게 소개됩니다. 그리스 비극은 극이라는 형식을 통해 그 당시 사회를 계몽하고자 하는 교육의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먼저 이 세 작가의 특징을 말하자면 아이스킬로스는 엘렉트라라는 이름의 극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오레스테이아 3부작 중 제주를 바치는 여인(코에포로이)에서 언급하고 있어요, 여기서는 복수를 바라지만 자신이 아니라 오레스테스를 독려하는 주변인으로 그려지고 있어요. 오레스테스가 복수를 결심한 이후로는 역할이 없어요. 이는 그 당시 여성에게 기대하는 전통적 여성상인 소극적이면서 남성의 조력자 형태를 나타낸 거죠. 반면에 소포클레스는 복수에 성공한 엘렉트라를 통해 좀 더 적극적이고 자유로운 여성상을 제시하죠. 정의의 집행자로 그리고 여성들에게 강요됐던 관습적인 윤리관과 현실적 제약, 유약함에서 벗어나 정의를 위해 남성적인 격정과 합리성을 갖기를 지향합니다. 


여기서 소개하는 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는 앞의 두 작가의 작품에서 엘렉트라가 공주의 신분을 유지하는 데 비해 가난한 농부와 강제 결혼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어요. 세 명의 작가 중에 가장 냉철하고 현실성이 강하고 신들의 세계를 인간 생활로 끌어와 비극을 보편화하고 세속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는 신을 인간의 감정과 격동적인 복수심을 표출해 인격화하고 탈영웅화한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엘렉트라를 적극적이고 추진력이 뛰어난 행동가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농부와 결혼한 엘렉트라

최미선=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는 농부와 결혼했습니다. 다른 이의 작품에서는 미혼으로 나오는 것과는 대비가 됩니다. 이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김미경=영웅 전설의 지평을 일상으로 끌어내린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어요. 엘렉트라라는 단어는 여성의 결혼 침상이 없는 상태, 즉 미혼 여성을 의미하기 때문에 미혼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도 결혼은 했지만 부부관계를 하지 않고 처녀성을 유지한다는 의미에서 미혼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 농부도 몰락한 귀족 가문의 자손으로 나오는데 강제로 결혼하기는 했어도 존중하는 의미로 엘렉트라를 지켜주는 역할을 하죠. 하지만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리게 되는 것으로 보면 이름이 주는 의미는 모순일 수도 있습니다.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

최미선=이 집안에 드리운 존속살인의 그림자가 너무 무겁습니다. 조상 때부터 끔찍한 가족 살해사건이 끊이지 않습니다. 가장 가깝게는 죽임을 당한 아버지의 딸 이피게니아를 제물로 바친 것이 있고,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아가멤논 살해가 있습니다. 또 다시 엘렉트라는 그런 어머니를 죽이려고 합니다. 엘렉트라의 입장은 어떤 것일까요? 


김미경=공주의 신분에서 가난한 농부와 결혼해 생활고에 시달리며, 궁핍한 생활과 부부관계가 없다는 점은 매 순간 복수를 다짐하고 지켜나가는 계기가 되죠. 자신의 지위와 자존감을 한순간에 빼앗긴 사람은 절대로 가해자를 용서할 수가 없죠. 그것도 어머니가 다른 사람과 통정하고 아버지를 죽인 부당한 일의 결과라면 더욱 그렇겠죠. 아마도 한순간도 잊지 않고 복수를 다짐했을 것입니다.


사실 이 집안의 존속살인은 아가맴논의 할아버지인 펠롭스에게 내려진 저주로부터 시작됩니다. 펠롭스는 아버지인 탄탈로스에 의해 살해돼 신들에게 음식으로 대접되고 이 일에 분노한 신들은 탄탈로스를 저승인 타르타로스에서 영원히 굶주림과 갈증으로 고통당하는 형벌을 받게 합니다. 신들은 펠롭스를 동정해 살아나게 하고 아버지의 왕위를 물려받게 합니다. 그런데 펠롭스는 아내를 얻기 위해 장인을 살해하고 자신을 도운 미르틸로스마저도 바다에 던져 죽입니다. 미르틸로스는 헤르메스 신의 아들이기도 한데 죽어 가면서 펠롭스와 그 자손들에게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이 저주가 존속살인의 시작이 됩니다.


펠롭스가 죽자 그의 두 아들은 서로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싸웠습니다. 장남인 아트레우스는 당연히 제 차지인 줄 알았던 왕위가 아내(아에로페)의 배신으로 동생에게로 돌아가자 증오에 찬 복수를 다짐합니다. 나중에 제우스의 도움으로 왕위에 오른 아트레우스는 화해하자며 동생을 초대한 다음 그의 두 아들을 죽여 동생에게 먹였습니다. 탄탈로스가 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두 아들을 죽이게 됩니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잔혹한 방식으로 두 아들을 잃은 티에스테스는 델포이의 신탁에 복수할 방도를 물었고, 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만이 복수할 수 있다는 신탁을 받습니다. 그 아들이 바로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정부 아이기스토스입니다. 아이기스토스는 장성해 신탁이 예언한 대로 큰아버지 아트레우스를 죽이고 나중에는 아트레우스의 아들인 아가멤논도 죽이게 됩니다. 


최미선=죽음의 연쇄고리를 잡고 있었다는 측면에서 클리타임네스트라도 이 살해사건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녀의 입장은 어떤 것이었나요? 


김미경=클리타임네스트라가 남편을 살해한 원인은 자신의 딸을 살해한 남편에 대한 복수와 자신의 불륜을 감추기 위한 것, 그리고 아가멤논의 외도(카산드라와 아들)입니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가멤논의 아내가 되기 전에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해 아들까지 두고 있었는데 아가멤논이 그녀의 남편과 아들을 죽이고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강제로 결혼했다고 합니다.


아가멤논의 아내가 된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네 자녀 이피게네이아, 엘렉트라, 오레스테스, 크리소테미스를 낳았습니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다시 맏딸 이피게네이아가 남편의 손에 의해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제물로 바쳐지는 것을 보아야 했고, 남편 아가멤논을 살해한 후에, 결국에는 딸 엘렉트라와 아들 오레스테스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남편 살해자인 것보다 아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즉 존속살해의 희생자로서 더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증오심 외에도 아가멤논의 집안에 이어지는 핏줄 간의 뿌리 깊은 원한과 저주가 작용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미선=오빠인 오레스테스와 함께 결국 어머니를 살해하고 맙니다. 오레스테스의 입장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아버지의 죽음, 그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 살해라는 구도에서 오레스테스의 입장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김미경=오레스테스가 엘렉트라의 오빠라고도 하고 동생이라고도 합니다. 에우리피데스는 동생으로 본 것 같아요. 오레스테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마저 죽이려고 했던 아이기스토스에 대한 복수는 정당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존속살인하는 것에 대해서는 망설이는 면이 나옵니다. 이때 엘렉트라가 “어머니를 죽이는 일은 내가 준비하겠다. 어머니의 정부인 아이기스토스를 죽이는 첫 번째 살인은 너의 몫이다”라고 살인을 종용합니다. 오레스테스는 아이기스토스를 죽이고, 엘렉트라는 자신이 아이를 낳게 됐다고 어머니를 유인해서 살해하게 됩니다.

존속살해의 비극은 끝이 날까

최미선=이 집안의 살해의 비극은 끝이 날 수 있을까요?


김미경=아마도 죗값을 치르고, 용서를 받고 난 뒤에 저주가 풀리고 살해의 비극이 끝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엘렉트라와 오레스테스 둘 다 결혼해 아이를 낳는 것으로 비극이 끝나며 더 이상의 후속이 없는 것으로 보아 끝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비극은 현실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스 비극은 고대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접하는 뉴스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어요. 존속살해, 자녀가 부모를 해치는 경우와 부모가 자녀를 유기하고 살해하는 일, 아버지의 성폭력에 노출된 아이들, 교수가 학생을 괴롭히고, 직장 상사가 부당한 일을 지시하고, 부당해고를 당하고, 최근 뉴스에서 보면 군대 내의 성추행으로 피해자가 자살하는 등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많은 사건이 일어나고 있죠.

엘렉트라 콤플렉스

최미선=엘렉트라 콤플렉스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어요. 어떤 것을 가리키는 말인가요?


김미경=엘렉트라 콤플렉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여성형으로 심리학자 칼 융에 의해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엘렉트라라는 비극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엘렉트라 콤플렉스는 여아가 동성인 모친을 싫어하고 이성인 자신의 부친에게 애착을 느끼는 증상을 말합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프로이트가 처음 연구한 것으로 남자아이가 어머니에 대한 애착을 갖고 동성인 아버지와 경쟁의식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남근기(3~5세)에 나타나는 남아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이런 이론 자체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반박 의견도 많습니다.


이 현상들은 여아는 성장하면서 어머니와 자신을 동성으로서 동일시하고, 남아는 아버지와 동질감을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없어지게 됩니다.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남녀에 상관없이 어린 시절에 보편적으로 겪는 심리라고 주장했으나, 현대에 이르러 이런 주장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현대의 엘렉트라

최미선=우리는 딸로 태어나서 엘렉트라의 입장을 어느 정도는 갖고 있어요. 아버지 편에 서서 어머니를 적대하는 경우가 있을 텐데요. 본인이 엘렉트라가 됐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읍니까? 


김미경=어렸을 때 기억은 정확하게 할 수 없지만 자라면서 오히려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사사건건 부딪히고 아버지 편에 선 적도 없었던 거 같아요. 늘 어머니가 고통받는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머니가 워낙 미인이셔서 어머니와 함께 외출하면 저는 조카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으면서 자랐죠. 여자로 태어난 것을 억울하게 생각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생각은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아버지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학교 교사의 박봉으로 2남 2녀의 자식을 교육시켜야 했고, 외벌이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경제에 도움이 되고자 야간수업을 하는 등 혹사하는 바람에 60세가 되기도 전에 지병으로 별세하셨습니다. 좀 더 일찍 아버지를 이해했더라면 사이좋은 부녀가 됐겠죠?


최미선=엘렉트라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김미경=저는 그리스 비극을 읽는 동안 운명이라는 단어를 많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말하자면 신탁이라는 것인데 심지어 신들조차도 하나 같이 신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신의 위대함을 강조하고 인간의 나약함을 주지시키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운명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선택하는 모든 일이 신탁으로 이미 정해져 있는 길을, 그 길을 가게끔 운명지어져 있는 것일까요? 인간의 자유의지는 없는 것일까요? 


인간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갖고 삽니다. 바로 앞에 닥치는 일도 잘 모르기 때문에 불행한 일을 겪게 되죠. 이 모든 잘못도 어떨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운명이었을까요?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슬기롭게 살아가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운명으로 정해져 있는 것, 신탁에 의한 저주라고 하더라도 잘못된 부분을 자신의 노력으로 끊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고 복수로 갚으니까 복수가 이어지는 것이죠. 비극을 보면서 역설적으로 용서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악의 순환고리를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독자들에게 계속 생각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나쁜 행동을 했다고 나도 같은 행동으로 대응하면 끊을 수가 없죠. 그렇다고 피해자가 무조건 가해자를 용서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에 대한 적합한 죗값을 받게 하는 또 다른 방법을 강구해 보자는 것입니다. ‘이에는 이, 칼에는 칼’로 대응하는 함무라비 법전을 적용하기보다는 같은 일이 재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이 비극도 오레스테스가 마땅한 죗값을 치름으로써 끝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미래를 궁금해합니다. 그래서 운세를 점쳐보고 꿈을 해석하지요. 그런데 그 꿈의 해석도 제각각 다르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쩌면 운세를 점쳐보고 그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을 선택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는 지나간 과거에 머물 수도 없고, 오지 않은 미래에 있을 수도 없어요, 오직 현재 오늘 이 순간 이 자리에 존재하는 것인데, 매번 선택의 길에 서 있죠.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 지혜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스 비극은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를 매번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엘렉트라를 보면서 부모와 내 관계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내 안의 엘렉트라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정리=최미선 인문숲사회적협동조합 대표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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