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김윤경 글 쓰는 엄마 / 기사승인 : 2021-11-15 00: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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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기

집으로 돌아온 작은애가 어린이집 가방을 열어 뭘 꺼내준다. 원장님으로부터 온 편지 한 통이다. 여기 어린이집은 원장님이 원아와 1대1로 티타임을 갖는다. 원아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내가 애들을 유치원에 안 보내고 어린이집을 고집하는 이유는 선생님들이다. 건물은 오래됐지만 원장님을 비롯한 선생님들의 사랑과 열정이 한결같기 때문이다. 


티타임을 마친 친구의 후기를 듣고 작은애가 자기 순서를 무척 기다렸다. 예쁜 찻잔에 주스도 마시고 초콜릿도 먹었다 하니 귀가 번쩍 뜨인 거다. 엊그제 원장님이 “00이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잘 말하더라구요”하신 인사가 떠오른다. 무슨 대화가 오고 갔을까 궁금해서 편지를 얼른 열어봤다. 담임 선생님도 평소 작은애가 부모님 이야기를 자주 한다고 하니 궁금증이 더해졌다. 


먼저 아빠다. “아빠는 나를 안아줘요. 아빠가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는데 나는 모른 척해줘요.” 아빠는 무난했다. 그 다음 엄마부터 까기 시작했다. “엄마는 발바닥을 때려요. 발바닥을 감추면 손바닥을 때려요.” 원장님이 수습한 흔적도 있다. 엄마가 어떨 때 화를 내시니 묻자 작은애가 “언니랑 내가 싸우면 그래요” 대답한다. 그 뒤에 내용은 화가 났을 때 말로 표현하자는 교육이다. 


언니 차례다. “언니가 청소하는 찍찍이로 때려요.”, “언니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어요.” 작은애 말에 원장님이 당황하지 않으셨을까. 이것도 수습에 애쓰신 흔적이 보였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샜다. 부끄러운 건 나의 몫이겠지. 내 예상보다 티타임에서 수위 높은 대화를 나누었다. 작은애가 원장님에 대한 신뢰가 컸나? 우리 집을 이렇게 까발리다니. 옆에서 큰애가 편지를 같이 보다가 발끈한다. “야! 나 찍찍이로 안 때렸어~” 큰애는 싸울 때 도구를 쓰지 않고 머리채를 잡거나 꼬집는다. 이런 지점에서 억울해하는 것도 어미로서 고개를 못 들겠다. 


원장님이 티타임을 마무리하면서 작은애한테 꿈을 물어보셨다. 작은애 꿈이라면 나도 알고 있다. 처음엔 택배기사가 되고 싶어 했다. 기쁨을 주는 일이라며. 그러다 올해 들어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담임 선생님의 좋은 영향을 받은 듯했다. 그런데 편지엔 ‘요리사’다. 엄마가 고기반찬 안 해준다고 투덜대더니 “엄마처럼 맛있는 요리를 하고 싶어요”라고 적혀있다. 뜬금없다. 작은애한테 “왜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했어?” 물었더니 “그냥”이란다. 선생님 되고 싶다고 말하기가 쑥스러웠나? 아니면 요리사도 되고 싶은 걸로. 


편지를 통해 작은애 입장에서 느끼는 가족을 알게 됐다. 편지를 보니 웃음도 나고 창피하다. 한편으론 작은애가 어린이집에서 잘 생활하고 있구나 안심도 된다. 집에 와서 어린이집에서 어땠는지 이야기하듯이 어린이집 가서는 집 이야기를 이렇게 하는구나. 원장님이 가족회의에서 같이 규칙을 정하고 적절한 보상을 해주는 걸 제안하셨다. 큰애가 편지를 보다가 ‘보상’ 단어를 짚으며 폭풍 공감을 한다. 여태껏 우리를 스쳐 갔던 칭찬 스티커들이 생각난다. 효과가 있었는데 오래 가진 못 했다. 다시 소환해야 하나 싶다.


여섯 살, 거짓이 없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우리 집 이렇다”고 말할 수 있는 마지막 동심 생존자다. 


김윤경 글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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