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저널 인문학강좌 2번째 시간 ‘연암사상과 열하일기’

이기암 기자 / 기사승인 : 2019-11-18 17: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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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 시인 “이용후생면에 중점을 둔 열하일기, 많은 연행록 중 백미로 꼽혀”

▲ ‘울산의 정체성을 찾아서’ 2번째 인문학 강좌, 문영 시인의 ‘연암사상과 열하일기’가 13일 울산저널 교육관에서 열렸다. ⓒ이기암 기자
 

[울산저널]이기암 기자=‘울산의 정체성을 찾아서’를 주제로 한 독자와 함께하는 울산저널 2번째 인문학 강좌가 13일 울산저널 교육관에서 열렸다. 이날 강의는 문영 시인이 ‘연암사상과 열하일기’의 주제로 강의했다.


문영 시인은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이 44세던 1780년(정조 4) 삼종형인 금성위 박명원을 따라 청나라 건륭제의 만수절(칠순잔치)에 사절로 북경에 가면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견문가”라고 설명했다. 문 시인은 “‘열하일기’는 발표 당시 보수파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했다”며 “하지만 이 책은 중국의 신문물을 망라한 서술로 그곳 실학사상을 소개하는 등 매우 실용적이며 유용한 견문록”이라고 전했다. 또한 “열하일기는 중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예술, 역사, 생활풍습 등 전 범위에 걸쳐 상세히 기술됐는데, 이용후생(利用厚生)면에 중점을 둬 연암 작품 중에서 뿐 아니라, 많은 연행록 중에서도 백미로 꼽힌다”고 말했다.

문 시인은 박지원의 생애에 대해 “연암의 가문은 노론의 명문가였지만 청렴했던 조부의 영향으로 가난을 면치 못했고, 처갓집 역시 ‘청렴’을 가훈으로 삼는 집안으로 청렴고결한 선비였던 장인 이보천은 연암에게 ‘맹자’를 가르쳤다”고 설명했다. 또한 “연암은 처삼촌인 홍문관 교리 이양천에게 문장 짓는 법을 배우게 됐으며, 반고와 사마천과 같은 글솜씨가 있다고 평가받았다”고 덧붙였다. 문 시인은 “열하일기가 불러일으킨 당시 최대의 사건은 영조 임금에 의해 ‘문체반정’의 주범으로 지목된 것이며, 그 결과 당대의 금서이자 베스트셀러가 되는 영광을 누렸다”고 전했다.

울산저널이 주관하고 지역신문발전위원회가 후원하는 ‘울산의 정체성을 찾아서’는 울산저널 교육관(중구 장춘로 114, 3층)에서 열리며, 20일(저녁6시30분)에는 백무산 시인의 ‘울산의 정체성과 문화 이데올로기’강의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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