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국보(國寶) 마을, 천전리

글 이민정, 사진 이민정, 성경식, 손방수 / 기사승인 : 2022-01-25 00: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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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울산-울산365경

2021년 3월 21일 일요일, 반구대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던 중 민물어업권 때문에 수자원공사 관계자를 인터뷰하러 오전에 안동으로 취재를 갔다가 천전리 이장 인터뷰 요청이 있어 오후에 천전리를 찾았다. 천전리 첫 방문이었다. 당시 대곡리는 의견대립으로 마을 주민들이 둘로 나뉘어 있었다. 이장을 중심으로 명승 지정을 적극 지지하며 마을 발전을 기대하는 원주민들이 한 축, 외지인과 지주들을 중심으로 토지 보상 등을 앞세운 이들이 한 축이었다. 토지 보상을 요구하는 쪽에서는 천전리 주민들을 편입시켜 그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려 했고, 천전리의 말도 다큐멘터리에 담아주길 희망했다. 당시 기억을 더듬어보면 천전리 이장은 동조는 하지만 적극적이진 않은 인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터뷰 내용의 주된 골자는 천전리각석이 더 빨리 국보가 됐는데 왜 우리는 명승 지정을 하지 않냐 하는 것과, 반구대암각화와 직선 거리상으로 대곡리 한실마을보다 천전리 마을이 더 가까운데 왜 보상 범주에서 벗어나 있냐는 것이었다.

 

천전리각석은 1973년에 국보 제147호로, 반구대암각화는 22년 늦은 1995년에 국보 제285호로 지정됐다. 많은 이들이 국보와 주변 풍광, 대곡댐과 사연댐에 관심을 가졌고,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수많은 자료가 나온다. 필자는 영화를 찍을 만한 신선한 장소 발굴이 필요했고, 대곡리 다큐멘터리를 찍는 중에도 사람들에만 집중하고 반구대암각화 그 자체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각석 인근 초소의 문화해설사들은 빛이 좋을 때 다시 와서 촬영해가라고 조언했지만 각석을 찍기 위해 다시 찾을 것 같진 않다. 반구대암각화는 바로 앞에 대곡천이 있고 제법 거리를 두고 철제 울타리가 있어 접근이 어렵지만 천전리각석은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다. 이 엄청난 역사 흔적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인근에 굳이 돌에 새겨놓은 낙서들이었다. 오죽하면 전 세계 유명 관광지에 한국 사람들의 낙서를 금지한다는 푯말이 있을까.


천전리로 진입해 외길로 가다 보면 장천교가 나오고, 70미터 남짓한 장천교 좌우로 마을이 각각 형성돼 있다. 다리를 건너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왼쪽으로 가면 대곡박물관과 대곡댐, 오른쪽으로 가면 천전리각석 방향이다. 대곡댐의 위용은 멀리서 봐도 대단했다. 1999년 늦가을, 시나리오 작업 차 춘천 이외수 작가의 한옥 작업실을 소개받아 연출부들과 함께 며칠 빌려 쓴 적이 있었다. 춘천으로 들어가며 제법 어두웠던 중에 엄청난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는데, 우리나라 최대의 소양강댐이었다. 그에 비하면 대곡댐은 높이는 절반, 길이는 3분의 1도 안 되는 크기지만 한겨울임에도 폭신해 보이는 산에 둘러싸인 인공물은 쓸데없이 거대하게 보였다.

 

▲ 천전리 각석으로 들어가기 전의 삼거리. 간판 정리가 필요하다. ⓒ이민정

 

▲ 산 사이로 대곡댐이 보인다. ⓒ이민정

 

▲ 국보 각석 옆 부분에 이끼 흔적. ⓒ이민정

 

▲ 사람이 그립지만 사람이 무서운 개. 찌그러진 양푼이의 밥과 물은 모두 얼었다. ⓒ이민정

 

▲ 천전리 경로당, 어깨동무. ⓒ이민정

 

▲ 천전리 경로당 어르신. ⓒ이민정

 

▲ 천전리 경로당 어르신. 벽 윗부분에는 경로당에 기여한 인물의 이름들로 가득하다. ⓒ이민정

 

▲ 부끄러워하던 어르신들이 빗으로 머리를 매만진 뒤 자세를 잡았다. ⓒ이민정

 

▲ 지구를 구하겠다는 천전리 흉물. ⓒ이민정

한참이나 댐을 바라봤는데, 반구대 다큐멘터리를 찍던 중 어느 부부의 찰랑거리던 눈물이 그 댐에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민물어업권을 받지 못해 (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도둑질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중, 너무 추워 속눈썹에도 서리가 끼던 어느 한겨울 밤 대곡댐으로 원정을 왔다고 한다. 겨울 한 철 장사다 보니 예약이 들어오면 거절할 수 없었다. 사연댐 쪽에는 물이 얼고 너무 추워 물고기가 없어서 대곡댐 쪽으로 넘어왔는데, 그물을 치자마자 고기들이 마구 걸려들었고, 그날은 물고기가 참으로 많이 잡혔다. 그런데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관리인들이 그 새벽에 모두 나와 물고기와 그물, 배를 모두 압수해갔다. 허리를 기역자로 꺾고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예약받은 만큼만 가져간 뒤 벌금을 내겠다고 했지만 신고가 들어왔으므로 매몰차게 거절했다고 한다. 후일담에 따르면 그 물고기들은 누군가가 나눠 가졌고, 그물과 배는 압수 대상이 아니었다. 인터뷰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러한 강제와 통제가 비판할 일만은 아니다. 지역 사람들이야 그러려니 눈감아줄 수 있다손 쳐도 타 지역 사람들까지 들어와 마구잡이로 잡아가다 보니 수원(水原) 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댐이 생기기 수십 년 전부터 가업(家業)인 이들에게는 정확한 법 해석과 융통성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천전리각석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바로 위쪽에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나온다. 절이나 ‘전통 굿 하는 집’이라는 팻말들이 잔뜩 있다. 이 길의 이름은 천전각석로이고, 이 길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연화산로와 갈라지는 지점이 있다. 지도상으로 확인하면 연화산로는 연화산, 사연호, 두동면 은평리로 연결되는 길로 다시 나뉘고, 천전각석로를 계속 가다 보면 대곡호 방향의 곁길이 네 개, 반대 방향의 짧은 길이 한 개 있고, 지방도인 인보구미로와 만나는 삼정교차로에서 길이 끝난다. 지도상으로 천전리각석 진입로부터 삼정교차로까지의 천전각석로는 약 6킬로미터쯤 되지만 고도가 점점 높아지고 길이 꼬불꼬불해서 체감하기에는 훨씬 길게 느껴진다. 약 2킬로미터쯤 촬영을 하며 차량으로 이동하고 내려오는 데 두 시간 정도가 걸렸다.


일요일 정오 무렵 지나친 차는 한 대도 없었다. 가는 길에 ‘굿 하는 집’으로 보이는 건물들이 연이어 몇 채 있었는데, 승용차가 한두 대, 석 대씩 마당에 주차돼 있었다. 아래쪽의 철문 앞에는 백구 한 마리가 눈물이 시커멓게 흘러내린 몰골로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겁에 질린 모습이 애처로웠다. 안쪽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소각장으로 보이는 대형 구조물이 있었다. 찌그러진 커다란 양푼에는 국물 가득한 짬밥과 물이 얼어 있었고, 주인이 갈아줬는지 양푼이 모양의 얼음덩어리가 옆에 있었다. 좀 더 위로 올라가니 붉은색 옷을 입은 갈색 중형견과 눈물자국이 별로 없는 백구가 함께 있었는데, 집 지키는 개 치곤 겁은 많아도 아래쪽 한 마리 백구보다는 덜 안쓰러웠다. 귀가 먹먹해진 걸 보니 천전각석로의 정상인가 싶은 곳에서 울타리를 치고 밭을 일궈놓은 장면을 보고는 만주벌판과 발해를 일군 우리 민족의 땅임을 확인하며 피식 웃었다.


내려와서 마을로 들어올 때 거슬렸던 커다란 비닐 돔을 찍었다. 지구를 구하겠다는 간판의 글씨가 있었지만 찢어진 채 방치된 대형 조형물은 흉물 그 자체다. 분명 공공의 지원을 받았을 텐데, 간섭은 않아야겠지만 관리‧감독은 필요해 보인다. 자비로 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 천전리 각석 쪽에서 바라본 풍경 ⓒ성경식

 

▲ 각석 윗길로 가다 보면 삼거리가 나온다. ⓒ성경식

 

▲ 각석 윗길로 계속 직진하면 거의 정상 무렵에 밭을 일구어 놓았다. ⓒ성경식

 

▲ 장천교 너머로 보이는 천전리 마을. ⓒ성경식

 

▲ 장천교 너머로 보이는 천전리 마을. ⓒ성경식

 

▲ 농한기의 트랙터. ⓒ성경식

 

▲ 농한기의 경운기. ⓒ성경식

 

▲ 400년쯤 된 나무 한 쌍. 보호와 관리가 필요하다. ⓒ성경식

마을을 바로 벗어나려다 엄청나게 커다란 나무가 보이기에 한 컷 담은 뒤 바로 앞의 경로당으로 들어갔다. 어르신들 사진을 찍어드리며 다음 주에 인화해서 갖다 드리마 했다. 영정사진 찍어주는 것이냐기에 가장 예쁘고 멋진 모습 담아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처음엔 낯선 사람이 들어와 사진을 찍는다니 경계하시다가 한두 분 찍는 모습을 보더니 나도, 나도 하신다. 누운 채로 찍다가 굳이 불편한 몸을 일으켜 어깨동무도 해 보이셨다. 검지와 중지를 펴서 ‘브이’도 하고, 햇빛 아래에서 가장 예쁘게 나온다니 그럼 밖으로 나가자며 친구 손을 잡고 나와 앉는다. 빗이 있으면 좋겠다기에 차에 있는 커다란 브러시를 내드리니 열심히 빗고는 자세 잡으신다.


어르신들 말씀으로, 경로당 앞의 나무 수령이 360년 또는 그 이상일 거란다. 그런 나무를 왜 관리 않냐 했더니 무슨 팻말 하나 심어 놨는데 잘 안 보일 거란다. 이름은 ‘노거수’로, 2000년에 고유번호 2000-67을 받았다. 왕버드나무 두 그루는 당시 추정수령이 350~400년이었는데, 4세기나 살아온 이 나무를 관이나 청에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관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 각석을 오르내리는 돌담길. ⓒ손방수

 

▲ 돌에 새긴 개인의 이름, 대중에게는 낙서. ⓒ손방수

 

▲ 돌에 새긴 개인의 이름, 대중에게는 낙서. ⓒ손방수

 

▲ 각석 인근 풍경. ⓒ손방수

 

▲ 각석 진입로 입구 사유지의 출입금지구역. ⓒ손방수

 

▲ 각석 인근 삼거리. 왼쪽 윗길로 계속 올라가면 봉계와 범서로 이어지고, 가는 길목에 무당집이 여럿 있다. ⓒ손방수

어르신들이 타주신 믹스커피를 들고 차에 올랐다가 튀어나온 돌에 덜컹하니 커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럼 어떠랴. 신선한 장소들을 낚았고 유쾌한 촬영을 끝냈으니 한나절 잘 보냈으면 됐지. 다음 촬영 일정은 봉계로 잡았지만 천전각석로의 끝까지 가봐야 할 것 같아서 봉계는 다음 기회로 미뤘다. 다만 에피소드가 없고 인물사진을 건지지 못할까 봐 걱정될 뿐.


글 이민정, 사진 이민정, 성경식, 손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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